[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비정상의 일상화…퇴물이 된 전기요금 누진제
  •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1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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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 제도는 시대 상황에 맞게 철폐해야
국내 경영학 교과서에 모두 언급되는 공통된 내용이 있다. 세상이 급변하기에 시대 상황 및 환경에 맞게 제도 및 절차, 제품도 새롭게 개선하지 않으면 소비자 또는 고객에 의해 차갑게 외면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43년 전 당시 상황을 감안해 도입된 제도가 지금도 아무 비판 없이 관행처럼 실행되고 있다. 바로 대한민국 고유의 독특한 전기요금 누진제도이다. 사실상 ‘비정상의 일상화’라고 해도 무방할 만한 제도이다. 

2016년 현재 대한민국은 이른바 염천 더위 속에 빠져 있다. 1994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할 정도로 더웠던 폭염 이후 22년만의 더위다. 낮 최고 기온이 35도가 넘는 것은 물론 저녁 최저 기온조차 연일 26~27도를 오가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들은 에어컨 등 냉방기 가동을 지금도 주저하고 있다. 바로 공포의 전기요금이 서민들에게 폭탄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벌금과도 가까운 누진세는 올해만 가장 뜨거운 이슈로 부각되었던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주택용 전력 누진세 이슈는 이미 2년전 국내 일간지에서 주요 이슈로 제기된 적이 있고 국내 방송 및 언론에서 몇 년 전부터 지속적인 고질적 문제로 언급된 사안이기도 하다. 2014년에는 시민 21명이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문제 삼아 한국전력을 상대로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벌인 적도 있다. 그렇다면 모든 국민에게 피해를 주고 있고 여름철 폭염보다 더 불쾌감을 주는 전기요금 누진제의 기본 목적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자.

전기요금 누진제는 대다수 국민이 알고 있다시피 1973년 석유파동을 계기로 시작됐다. 말 그대로 1970년대 오일쇼크가 전기요금 누진제의 본격적 도입 계기였다. 그 이후 줄곧 한전은 저소득층 보호 및 사회적 형평성을 이유로 누진제 요금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 및 일본, 호주 등 선진국들도 이미 전기요금에 관해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더욱이 재계는 제품의 원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2011년 9월11일 대규모 정전상태로 온 국민이 불편을 겪었던 상황도 전기요금 누진제를 찬성하는 이들이 단골처럼 거론하는 사례이다. 즉, 전력을 과소비하면 나라 전체가 다운될 수 있다는 게 전기요금 누진제 도입론자들의 주장이다. 

2012년 전력부족 사태 대비 민방위 훈련, 2013년 과잉 냉난방 규제 등 그야말로 불필요한 규제를 남발하면서 전력 위기를 부채질하면서도 정작 국내에서 사용되는 전기의 상당 부분이 산업체에서 쓰이고 있다는 이야기는 절대 강조하지 않는다. 하긴 그 당시만 해도 정부 차원에서 워낙 ‘친기업 정책’을 표방했으니 불편한 진실을 굳이 들춰내고 싶진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봤을 때 전기요금 누진제는 현재 상황이나 환경에 뒤떨어진 시대착오적인 규제와 다름없다. 전기요금 누진제를 찬성하는 이들이 거론하는 주장을 차례대로 반박해보자. 

첫째,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적용하는 나라는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자체가 없는 나라가 훨씬 많다. 특히 선진국의 모범 사례라고 항상 대한민국이 벤치마킹하는 국가 중 하나인 프랑스와 독일은 누진제도 자체가 없다. 그 이유는 아무리 주택이 전기를 많이 쓴다고 하더라도 수십만 개의 법인이 쓰는 전기에 비하면 그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전기요금 누진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그들이 거론하는 미국․대만․일본․호주가 도입한 누진제 적용구간도 국내의 6단계보다 훨씬 적다. 폭염이 한국보다 더욱 강력해서 전기 사용이 여름에 집중되는 미국이나 일본도 누진 단계는 2단계와 3단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과 일본의 누진제는 왜 낮은 걸까? 그들 역시도 전기를 대규모로 사용하는 산업 부문에 비해 주택에서 전기를 사용하는 개인의 사용량은 미미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기업 수출에 상당한 애로사항이 존재해 원가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전기요금을 낮춰줘야 한다는 재계의 일부 논리 또한 타당하지 않다.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해 원가경쟁력이 중요하다는 논리는 여전히 기술혁신이나 제품혁신이 아니라 타 국가 대비 제품의 낮은 원가로 승부하겠다는 낡은 방식이다. 미국의 구글․애플․페이스북은 이미 국내 수많은 대학에서 경영혁신의 모범 사례로 교육되고 있다. 그리고 전략경영 분야에서도 마이클 포터가 내세운 ‘저원가 전략’은 더 이상 현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전략으로 통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3년전부터 ‘상상력과 창의력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라’는 창조경제 지침을 부르짖고 있는데 유독 여름철에만 ‘원가경쟁력 확보’를 운운하며 산업 부문의 전기요금 인상에 난색을 표명하고 모든 짐을 전 국민에게 떠넘긴다. 참고로 kwh당 요금은 교육용이 113.22원인데 산업용은 107.41원에 머물고 있다. 교육보다 더 중요한 게 산업이라면 필자는 할 말이 없다. 

셋째,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적 형평성이라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이미 우리나라 전기 사용량의 절반 이상은 산업 부문에서 사용하고 있다. 특히 국내 주택용 전기 사용량은 전체 전기 사용량의 13%밖에 되지 않고, 이마저도 누진제도가 우리보다 훨씬 낮은 비율로 실행되고 있는 OECD 국가의 평균 사용량의 절반 이하에 불과하다. 즉 대한민국 국민은 스스로 절제해서 전기 사용량을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절약해서 쓴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가정용 전기요금에 누진제를 적용해서 소득 재분배 효과를 낸다는 변명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득 재분배 효과를 낸다는 취지로 가정용 전기료에 누진제를 적용해놓고, 올해 초 한전은 13조 4000억원이 넘는 사상 최대의 성과를 창출하고 2조원에 가까운 배당을 추진했다. 특히 해당 배당금의 최대 몫인 6500억을 산업은행이 가져갔다. 정말 가관이 아닐 수 없다. 

가정용 전기 누진제 논란 속에도 활짝 문을 열어 놓고 손님을 맞는 명동의 상점들.

현재 우리나라 전체 전기 사용량을 살펴보면 산업 부문이 55%를 차지하고 대기업이 전체 전기의 24% 가량을 사용하고 있다. kwh당 107원을 적용 받는 산업용 전기요금도 물론 누진제를 적용 받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이너스 방향의 누진제를 적용 받고 있다. 많이 쓰면 많이 쓸수록 산업 부문의 전기요금을 더 많이 깎아주는 논리는 전기를 더 많이 쓰더라도 국민과 국가를 위해 고성과를 내라는 나라의 배려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언론에서는 해마다 감소하는 국내 산업체의 성장 침체 및 잠재성장률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의 대응도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미 다른 선진 국가는 산업 구조혁신을 통해 원가경쟁력이 아닌 진정한 창의성․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혁신 경쟁으로 기업들을 독려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정책적으로 창조경제를 외치지만 실제 제도는 기업의 원가경쟁력을 독려하고 있는 역설에 빠져 있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이미 시대착오적인 퇴물과 같은 제도로 전락한지 오래다. 기업의 원가경쟁력을 이끌어내지도 못하고 있고 저소득층을 위한 재분배 효과도 미미하다는 점은 수많은 연구와 분석을 통해 밝혀져 왔다. 특히 국회 자료에 의하면 OECD 34개 국가 중 산업용 전력 소비는 세계 4위지만 주택용 전력 사용은 26위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현명하게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명확한 근거이다.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해 국민적인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누진제도 개편은 무리’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명하게 전기를 사용하는 국민에게 적용되는 전기요금 누진제는 일종의 폭력이자 벌금에 가깝다. 이 부분이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기요금 누진제도를 고치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라는 용어의 뜻을 산업통상자원부만 모르는 것 같다. 탁상공론(卓上空論)식 변명은 이제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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