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석 변호사의 생활법률 Tip] 책임의 강조와 형벌만능주의
  • 박현석 변호사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1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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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글에서는 ‘해운대 교통사고’와 관련해 형법상 책임원칙에 대해 살펴봤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운대 교통사고와 같이 다른 사람들이 당한 불행한 사건을 깊이 연민하는 좋은 성품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가해자가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하는 경우에는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양 분개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나아가 이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가볍게 처벌받으면 법원의 판결을 앞뒤 가리지 않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래서 형법상 ‘책임 없으면 형벌 없다’는 책임원칙이 일반인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는 개념이기도 하다. 

 

이런 우리 사회의 특성이 반영돼서인지 우리 형사법정에서 책임조각사유(해운대 교통사고처럼 약을 먹지 않아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니라는 주장과 같은)를 주장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필자도 형사사건을 맡아 변론을 할 때 조울증과 같은 정신병증이나 생리 전 도벽과 같은 책임조각사유를 주장한 경험이 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조울증의 경우 피고인의 입장을 잘 살펴 주는 재판장을 만나 법원의 정신감정을 허락받았으나 정상판정이 났고, 생리 전 도벽 주장에 대해서는 책임조각사유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우리 법정에서 책임조각사유를 잘 주장하지 않는 이유는 법원이 책임조각사유를 아주 좁게 인정하기 때문이고 그 근저에는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존재라는 확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이 이와 같이 완전한 존재일까. 미국의 경우 형사법정에서 산후우울증(post natal blues), 월경전긴장증(premenstrual tension), 약물남용, 프로작과 같은 항우울증 약복용, 어린 시절 학대경험 등 다양한 책임조각사유가 주장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모두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책임조각사유가 주장된다는 것은 그만큼 법원이 전향적으로 책임에 관한 주장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든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만큼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어떤 처벌을 결정할 때는 책임을 질 수 없는 행위에 대한 것이 아닌지 보다 섬세한 판단이 필요하다. 

형벌도 이와 같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 근거하고 있다. 인간이 보다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할수록 가혹한 형벌이 가해질 가능성이 크다. 뻔히 모든 상황을 알고 있고 범죄를 피할 충분한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악마 같은 존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악마 같은, 또는 마녀 같은 존재를 이 세상에서 제거하거나 정상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고 믿고 가혹한 형벌을 가했던 것이다.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가 행한 결과이므로 ‘행위자인 네가 고생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 과거 재소자에 대한 처우는 매우 열악했다. 

이와 같은 일반적인 인식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일군의 학자들이 범죄사회주의학파이다. 이들은 범죄인론이나 범죄포화이론과 같이 범죄라는 것이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범죄인론은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범죄를 저지를 요소를 많이 가지고 태어났고 생김새에서 그와 같은 특징을 알 수 있다는 것이고, 범죄포화이론은 아무리 우수한 집단도(예를 들어 하버드 법대생들만으로 어떤 사회를 구성한 경우) 그 속에 2~3%는 문제아가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물론 이 이론들이 모두 맞는 것도 않고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지만, 적어도 인간이 그렇게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형사법체계에 적용시킬 수 있도록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평가할만하다.

이와 같이 범죄인을 이해하게 되면서 처벌(형사정책)에도 범행에 대한 응보로써 범죄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보다는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요소를 낮추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특별예방적 요소를 도입하게 됐다. 물론 우리 형사법도 이런 정신에 입각해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책임이라는 것은 아주 뼈아픈 개념이고 누구나 피하고 싶다. 그런 욕망이 앞에서 열거한 많은 책임조각사유를 만들어 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나친 책임의 강조는 인간존재 본연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형벌만능주의로 우리 사회를 이끌 수 있다. 범죄피해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사회 전체의 질서와 인간의 불완전성 사이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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