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의 기억을 모으러 다니는 ‘기억수집가’를 아시나요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6.08.17 16: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풍백화점 참사 기록 구술집 등 2차 창작물로도 이어져

"그길로 평상복을 입은 채 뛰어나가서 버스를 탔어요. 기사 분께 “제가 강남성모병원 응급실 간호산데, 삼풍이 무너져서 지금 응급실을 가야 한다” 그랬어요. …분당에서 강남성모병원까지 그 버스가 논스톱으로 갔어요. “고맙다” 인사드리고 (병원으로) 막 들어왔더니 난리,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죠." 

(강남성모병원 간호사 조윤미씨)


"장비를 가지고 왔다는 사람들도 배낭 열어보면 구조 장비가 아니고 소사 옷,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어요. 또 훼손된 시신, 잘린 손가락도 들어 있었어요. 사망자가 끼고 있는 반지를 빼가려는 거죠. 도저히 구조대라고 볼 수 없었어요."
(서울소방본부 구조구급과 구조주임 이일씨)

서울의 곳곳을 찾아가 기억제공자의 이야기를 듣는 기업수집가들의 모습
21년 전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참사가 기록된 구술집에 실린 ‘기억제공자’들의 이야기다. 한 번도 한데 모인 적 없는 참사 당사자들의 기억이었다. “이러다 백화점 무너지는 거 아냐?”하며 농담을 주고받았던 직원부터, 무너진 건물 속에서도 금고를 지켰던 경비원의 이야기, 좁은 틈에 끼인 몸집이 큰 매몰자를 구조하기 위해 식용유를 들이 부은 사연, 피범벅이 된 유니폼을 입고 집으로 돌아온 생존자의 이야기까지 당시 상황을 말하는 것, 그 자체가 고통인 사람들의 기억을 마음과 귀를 열고 모은 결과다. 구술집을 위해 2014년 10월부터 10개월 동안 108명을 인터뷰했다. 그 중 59명의 구술이 책에 실리면서 기록된 적 없는 개인들의 아픈 기억이 ‘역사’로 남았다. 

이 작업은 서울문화재단이 서울에 관한 기억을 채록하는 ‘메모리인(人) 서울 프로젝트’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역사가 되는 목소리, 예술이 되는 스토리’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 1700여개의 에피소드가 모였다. 서울과 관련한 일상적인 얘기부터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의 기억, 사고 현장을 담은 가슴 아픈 목소리도 포함됐다. 

이렇게 모인 이야기들은 책, 판소리, 팟캐스트 등 2차 창작물이 된다. 삼풍백화점 붕괴를 기억하는 창작판소리 ‘유월소리’(안숙선 작창, 오세혁 연출), 동대문 운동장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 ‘나는 조명탑입니다’(내레이션 문성근), 삼풍백화점 붕괴 당사자의 구술집 ‘1995년 서울, 삼풍’ 등이 바로 그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 속에서 잊혔던 기억들이 재탄생되는 과정이다. 지나간 기억들을 역사로 만들고, 그 역사가 창작물이 될 수 있게 기록하는 사람들은 이름도 생소한 ‘기억수집가’들이다. 이들은 직접 녹음 마이크를 들고 ‘기억제공자’들을 찾아간다. 그렇게 서울 곳곳을 누비면서 기억제공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기록된 목소리들은 서울시청 서울도서관의 ‘메모리 스튜디오’ 청취 부스나 <메모리인 서울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아카이브 돼 있어 누구나 들을 수 있다.

지난 4월 선발된 29명의 4기 기억수집가들은 8월 말부터 새로운 기억을 모은다. ‘외국인에게 기억되는 서울’, ‘피맛골 이야기’, ‘오래된 상점과 상인 이야기’, ‘1997년 IMF, 서울’이라는 네 가지 주제다. 이야기를 듣는 데에도 충분한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기억수집가들은 각 주제별로 COP(실행공동체)를 구성해 사진 지식을 습득하고 접근 방식과 질문을 논의한 뒤 인터뷰를 진행한다. 

기억수집가들이 모은 '기록'은 2차 창작물로 가공되기도 한다. 삼풍백화점 붕괴를 기억하는 창작판소리 ‘유월소리’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사람들의 목소리 들으며 아픔도 치유”

서울에 대한 전 방위적 기억을 수집하는 기억수집가들은 누굴까. 이들은 나이도, 직업도 다양하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역사를 기록한다는데 의미를 찾으며 모였다. 

기억수집가 유재영(36)씨는 지난 2013년 등단한 단편소설 작가다. 작가로 일하며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익숙했던 터라 사람들을 통해 서울의 역사를 듣는 것에 관심이 갔다. 계속 소설을 써왔지만 픽션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 4월 4기 기억수집가 모집에 신청했고, 8월 말부터 기억 수집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유재영씨가 맡은 주제는 ‘1997년 IMF, 서울’이다. 유재영씨는 “처음에는 IMF를 굳이 다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도 ‘헬조선’이라고 불릴 만큼 삶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 시작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 IMF를 돌아봐야 하나 싶었다”며 “그러나 그때의 어려움을 딛고 20년이 지났다. 그 시절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지금을 받아들이는 것도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료 조사를 하면서 20년이 지나 바라보는 IMF의 의미를 다르게 깨달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당사자의 구술집 ‘1995년 서울, 삼풍’
김선주씨는 고등학교 때 이민을 가 미국에서 오래 살다 돌아왔다, 기자 경력을 가진 40대 기억수집가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안타까움을 갖게 됐다. 역사가 짧은데도 기록과 역사적 가치가 다양한 방법으로 보존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역사를 기록하는데 무관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을 기록으로 바꾸는 일에 동참하기로 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그 자체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상담심리를 공부한 김선주씨는 “기억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적인 사건이나 사고에 기억이 중점이 되는 경우도 많다. 말하는 사람들도 당시 사건∙사고에 대해 정리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아픔을 씻어내고 치유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선주씨는 ‘외국인에게 기억되는 서울’이라는 주제로 기억을 수집한다. 일정 기간 이상 한국에 거주한 외국인들을 통해 서울과 관련된 기억을 모으는 것이다. 

한국의, 서울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고, 서울 사람들이 직접 음성파일을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인터뷰지만 한국어로 진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기억수집가들이 기억을 듣고 기록하는데 정해진 방향은 없다. 좋은 기억일 수도 있고, 나쁜 기억을 담은 과격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기억제공자가 갖고 있는 기억을 그들의 표현 그대로 수집한다는 것이 기억수집가들의 1차적인 원칙이다. 

이번에 모인 기억들도 삼풍백화점 발간집처럼 2차 컨텐츠로 생산될 예정이다. 김선주씨는 “내용에 따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아야 할 기억들도 있을 것이다. 아카이브로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깊고 심도 있는 기억들을 2차 가공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유재영씨 역시 “2차 가공에는 기억수집가들도 동의한다. 작품으로 기억을 보존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같이 공유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IMF와 관련된 모든 기억들도 하나로 묶여 당시를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