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재판대 서게 될 위기 맞은 토니 블레어
  •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영국인의 재발견》 저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18 19:51
  • 호수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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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부정확한 근거로 참전 결정했다”
지난 2003년 영국군의 이라크 전쟁 참전 결정 과정을 조사한 ‘칠코트 보고서’(Chilcot Report)가 지난 7월초 발표됐으나 논란이 아직도 식지 않고 있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전쟁에 참여하게 만든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독선과 오만에 대한 영국인들의 분노가 이번 보고서로 인해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2009년 당시 총리였던 고든 브라운의 결정으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 조사는 정책 결정과 실행에 관여했던 관련자 200여 명을 불러 1년4개월 동안 이뤄졌다. 보고서가 작성되는 기간만 조사 과정의 4배가 넘는 5년5개월이 걸렸다. 여기에 투입된 예산만 해도 총 1030만 파운드에 달할 정도로 조사 보고서는 방대하다. 12권의 보고서는 260만 단어로 이루어져 있어 80만 단어로 이뤄진 성경의 3배가 넘는다. 거의 이라크 전쟁에 관한 한 티끌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는 평가다. 보고서를 애타게 기다리던 이라크 전쟁 전상자(戰傷者) 가족들은 너무나도 늦게 나오긴 했지만 그나마 지금이라도 나와서 다행이라고 반색하고 있다. 보고서 발표 즉시 가족들은 당시 국민과 의회를 속이면서 참전 결정을 한 토니 블레어 전 총리를 법정에 세울 수 있는 법적 증거라면서 변호사들에게 검토를 즉각 요청했다. 

2016년 7월6일 시위자들이 영국 런던에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 2세 컨퍼런스 센터에서 이라크 참전 과정에 대한 칠코트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발표를 기다리며 시위하고 있다. © EPA 연합
정부로부터 전권 부여받은 조사위원회

조사위원회는 영국 정부로부터 영국 내 어떤 문서도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영국인 누구도 증인으로 소환할 수 있는 전권을 받았다. 덕분에 위원회는 참전 결정 선상에 있던 거의 모든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불러 올 수 있었다. 당시 내각의 유관 부서 장관, 고위 공무원, 정보기관장, 이라크와 유엔 대사를 비롯한 외교관, 고위군인, 현장 작전지휘관이 출두해야 했다. 직접 당사자인 블레어는 당연히 조사 대상 중 가장 중심인물이었고, 조사를 명한 고든 브라운 당시 총리도 증언대에 섰다. 정말 예외 없는 전방위 조사가 이루어졌다. 

사실 보고서는 블레어의 이라크 침공 결정의 옳고 그름을 조사한 것은 물론 아니다. 조사는 블레어가 어떻게 참전 결정을 하게 됐는지와 함께 영국군 해외파병에 반드시 받아야 할 영국 의회의 승인 절차를 위한 과정과 제출된 정보가 적합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보고서는 이라크 전쟁은 전혀 불필요한 전쟁이었다는, 블레어에게는 극히 치명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전쟁 결정의 주요 명분인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고 그래서 이라크는 전혀 영국의 안위에 즉각적인 위협이 아니었다는 것이 근거였다. 또 보고서는 블레어가 참전 승인을 받기 위해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나 자료가 정확한 근거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는 경고를 사전에 받았음에도 이를 무시했다는 결정적인 지적을 했다. 뿐만 아니라 무력침공만이 마지막 남은 선택도 아니었고 평화로운 해결방안이 분명 남아 있었다고도 했다. 

보고서가 나온 후 블레어는 자신이 이런 불확실한 정보를 좀 더 확인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그러면서도 블레어는 “나의 수많은 실수에 대해 사과를 할 수 있지만 그러나 나는 진정으로 좋은 동기로 결정했고 우리가 만일 그런 쪽으로 행동하지 않았으면 지금 훨씬 더 나쁜 상황에 있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고 변명했다. 

블레어의 변명과 주장은 보고서가 나오기 이전부터 있었던 블레어를 전범재판에 세우자는 움직임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 전상자 가족들을 중심으로 15만 파운드의 재판 비용을 모금하려는 운동이 시작됐고, 보고서 발표 12시간 만에 5만 파운드가 모였다. 15만 파운드를 모으는 데 걸린 시간은 채 2주가 되지 않았다. 블레어를 법정에 세우는 문제를 의회 정식 의제로 채택하라는 국민 청원이 1만 명을 넘어서 여야 의원들에 의해 공동 발의되어 곧 토의가 시작될 전망이다. 

2016년 7월6일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런던 해군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칠코트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있다. © EPA 연합
전범재판 비용 15만 파운드, 2주 만에 모금

영국 언론은 블레어는 자신의 성공에 의해 스스로 무너졌다고 평한다. 이라크 전쟁 전의 코소보, 시에라리온 같은 해외 무력개입이 완벽한 성공으로 끝나자 자만의 늪에 빠졌음을 지적한다. 특히 블레어의 소통부재는 그런 실패를 부채질했다고 보고 있다. 중요 정책 결정을 내각 내에서 충분한 토의도 하지 않았고, 제도상으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자문단과 상의도 안 했다. 그나마 있었던 자문위원들의 개별적인 충고도 무시했다. 전문가들을 불러다 놓고 회의는 했지만 형식적이었고, 주위 인사 몇 명과만 상의해서 결정했다. 문제는 이런 소수와의 내부 협의마저도 전혀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통치행위(the act of state)를 법으로 다스릴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전상자 가족들의 의지가 워낙 강하다. ‘아무리 통치행위라 할지라도 지도자가 국민을 오도(誤導)해 국가에 해를 끼쳤는데도 형사상 처벌이 불가능해서 도의적인 책임만 묻고 지나간다면 세상에는 정의가 없다’고 179명의 전사자 유족들은 주장한다. 이들은 블레어가 전범으로 재판을 받을 때까지는 앞으로 얼마가 더 걸리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현재 영국에는 블레어를 변호하는 목소리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당시 야당이었던 현 집권당 ‘보수당’은 물론이고 우군이어야 할 ‘노동당’마저도 등을 돌리고 있다. 당시 60%가 넘는 국민들이 참전을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고립무원 상태의 블레어에게 영국인들이 등을 돌리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참전의 근거가 된 정보들이 틀린 것이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가지고 국민과 의회를 오도했다는 점 때문이다. 노동당을 세 번이나 총선에서 승리하게 만든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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