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의 귀순, 통치자금 누수로 고민 깊어진 김정은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6.08.1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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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금과 공포정치는 현재 북한 정권을 떠받치고 있는 두 기둥이다. 이 중 통치자금에 문제가 생길 경우 공포정치는 더욱 강화될 텐데 그렇게 되면 균형이 무너진다. 비자금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 잠재적 배신자 취급을 당하지 않을 것 아닌가. 이는 김정은 정권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태영호 귀순을 간단히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인민군 상좌 출신 탈북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태영호 귀순이 가지는 의미를 무겁게 설명했다. 이 탈북자의 말처럼 태영호 주영 북한공사의 귀순을 국내외 언론이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북한 고위급 외교관이어서만은 아니다. 언론은 그가 김정은의 체제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통치자금을 관리해왔던 인물이라는 점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그가 통치자금을 가지고 귀순했다는 것은 북한의 통치자금 관리에 균열이 생겼다는 의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일보를 비롯한 몇몇 국내 언론은 대북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태 공사가 주영 북한 대사관에서 재무 업무를 담당했으며 대사관이 관리하던 580만 달러(약 64억원)을 갖고 탈북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확인해주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태영호 주영 북한공사의 귀순은 김정은 통치자금의 균열과 관련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통치자금을 가지고 탈북했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는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유럽 내 북한 대사관 중 영국을 비롯해 독일, 스위스는 주요 외교·첩보 거점 역할을 수행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영국은 유럽 금융의 중심지여서 북한이 통치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금융 투자를 하는 곳으로 통한다. 

특히 15살 때부터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되는 ‘조니워커 블루’를 즐겨 마셨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위해 별도의 사치품 구입조가 영국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1995년에는 최세웅 당시 북한 대성총국 유럽지사장이 북한의 비자금을 가지고 한국으로 귀순한 적이 있다. 당시 최 지사장은 영국 대사관에 근무하면서 김일성, 김정일에게 전달할 양주, 담배, 양복 등의 사치품 공급을 책임졌다. 이처럼 영국이 북한의 주요 비자금 운영 지역인 만큼 태 공사가 580만 달러(64억여원)의 거액을 갖고 탈출했다는 주장을 허황된 이야기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향후 김정은의 대응이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대북 제재라는 외부적 압박 외에도 ‘통치자금 누수’라는 내부적 균열과 맞닥뜨렸다. 지금 이런 상황을 통제하지 못할 경우 정권 붕괴는 순식간에 일어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외교관 자녀들을 북한으로 불러들이고, 공포정치를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공포정치가 거세질수록 그에 따른 반작용으로 고위급 인사들의 잇따른 탈북 내지 귀순이 이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렇게 될 경우 더는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 될 수도 있기에 김정은이 갖고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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