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학교] 매년 해고되는 11개월짜리 계약직, 아이들 앞에 서는 비정규직 강사들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6.08.1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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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비정규직들이 넘어야 하는 ‘차별의 고개’를 말하다 ③ 교실과 운동장
“갑을의 세상, 비정규직의 비참한 세상이란 말을 절감하여 처절합니다. 13년 동안 과학실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했지만, 나름 보람된 삶을 보냈건만, 병으로 인하여 퇴직하는 과정에서 비참함과 황당함에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고, 아무 소용없이 물러나야 하는 날의 삶이 고통의 날을 보냅니다. 학급수가 54학급까지 있을 때 복수감제도 실시했지만 우린 그러지도 못한 상태에서 묵묵히 지친 업무에 말 한마디도 못하고 일했습니다. 행정실은 교무실로, 교무실은 행정실로, 나의 억울한 사정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2013년 8월, 충북 충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과학 보조교사로 근무하던 비정규직이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이 된 보조교사의 주머니 속에서는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제기했던 민원 내용이 나왔다. 업무가 통합돼 노동 강도가 늘면서 당뇨 증세가 악화됐던 고인은 치료를 받기 위해 퇴직하는 과정에서 ‘무급 휴직’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퇴직을 취소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학교 측은 다른 인력을 이미 채용했다고 했다.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이 사정을 호소했지만 고인에게 돌아온 것은 “민원인에 판단에 의해 퇴직원을 제출하였고 이에 따라 퇴직 처리가 된 것이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행정 처리를 되돌릴 수 없다. 약 13년 동안 학교에서 근무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미 퇴직을 한 상황에서는 이제 마음을 추스르시고 건강을 되찾으시길 바란다”는 답변뿐이었다.

전문자격을 갖춘 스포츠강사들은 사실상 체육 수업을 전담하고 있지만 열악한 처우와 불안한 고용에 떨고 있다.
“눈치가 보여 쉬지 못해 병을 키운다”

학교비정규직본부 측은 “학교 비정규직들은 아픈 몸을 치료받을 권리조차 차별받고 있다”며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몸이 아파도 눈치가 보여 쉬지 못해 병을 키우고,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플 때에는 정작 차별적 병가제도 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또 업무와 관련된 정책을 일방적이고 무리하게 추진하고, 비정규직들에게 ‘업무폭탄’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업무를 할당했다고 주장했다. 무기한 비정규직에 불과한 ‘짝퉁 대책’이 아닌, 비정규직들의 차별을 해소하고 실질적인 처우 개선을 할 수 있는 ‘진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보조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비정규직들에 대한 처우가 논란이 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이들에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8월17일 열린 ‘학교비정규직 증언대회’에 나온 보조교사와 비정규직 강사들도 이 사실을 증명했다.

이선영씨는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과학교사의 실험수업을 지원하는 과학실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선영씨는 “정부의 정책이 앞뒤가 맞지 않다”고 말했다. 학교업무 정상화를 위해 새로운 교무업무지원인력 2만 명을 증원하겠다고 공약한 정부가 증원은커녕 오히려 감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는 일하는 교원 수가 많다며 전산 실무원을 타 학교로 보냈고, 그가 맡던 전산 업무는 과학실무원인 이선영씨의 몫이 됐다. 거부 의사를 밝혔더니 학교는 ‘명령불복종’이라며 강압적으로 업무를 맡을 것을 요구했다. 

억울한 징계도 이어졌다. 월드컵 축구 경기를 교내에 인터넷으로 중계하는 과정에서 트래픽 초과로 방송이 나오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근무 시간도 아닌 아침 7시, 과학실무원의 업무도 아닌 ‘교내 중계방송 송출’ 업무였다. 그러나 학교 측은 ‘교사와 학생의 신뢰를 저버렸다’며 당일 인사 위원회에 이선영씨를 회부해 ‘주의’ 조치를 내렸다. 밤마다 심장이 아팠다.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 탈모와 산부인과 질환에도 시달려야 했다. 

단기 계약 반복으로 인한 고용 불안 느껴

2013년 정부는 <학교회계직원 처우개선 및 고용안정 대책> 등을 발표해 1년 이상 상시 지속되는 업무 종사자는 근로계약 기간이 종료되는 시점에 평가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게 했다. 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업무에 대해서는 다시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전혀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이 ‘1년 이상’이라는 조건을 피하기 위해 10개월, 11개월 단위로 계약을 반복하는 일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 강사들은 단기 계약 반복으로 인한 ‘고용 불안’까지 느끼게 됐다. 영어회화 전문강사, 스포츠강사 등 전일제 강사직종이 7~8년째 운영이 돼왔지만 그 긴 시간 동안 그들이 받는 불합리한 처우는 그대로였다.

초등학교 스포츠강사로 근무 중인 박정숙씨도 어려움을 토로했다. 초등학교 스포츠강사 사업은 ‘담임선생님의 업무 부담 경감과 초등학교 체육 활성화’라는 목적으로 시작됐다. 전문자격을 갖춘 강사들이 정규 체육 수업을 지도하면서 교사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게 돼 있다. 그러나 스포츠강사들이 사실상 체육 수업을 전담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들을 ‘체육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이들은 매년 고용 계약을 해야만 하는 ‘기간제 노동자’다. 그것도 1년이 아닌 10개월, 11개월 단위로 말이다.

지난 5월에는 부산시교원단체총연합회(부산교총)가 교직원 배구대회를 열면서 ‘무기 계약직이 아닌 직원은 반드시 후위에 선다’는 내용의 공문을 초등학교들에 발송했다. 대진표를 확정하면서 만든 규칙도 같았다. ‘무기한 계약직을 포함한 정규직이 1선, 혹은 2선에 선다. 기타 무기 계약직이 아닌 경우와 스포츠강사 및 원어민은 모두 3선에 배치해야 한다(기간제 교사도 3선에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부산지부는 부산교총에 공문을 보내 “화합을 도모해야 할 배구대회 조차 차별로 얼룩지고 있다”고 항의했지만 부산교총은 "체격 조건이 월등히 좋은 원어민강사나 스포츠강사가 1선에서 선수로 뛰면 경기력에서 큰 차이가 나 코트 뒤쪽에 서게 한 것일 뿐"이라 해명했다.

경기도에서 영어회화 전문강사로 일하는 안인숙씨는 “2009년 공교육 현장의 영어회화 교육 강화를 위해 영어회화 전문강사 제도가 도입됐다. 도입 당시 정부는 고용 안정을 위해 동일학교 기간제 근무기간을 4년으로 정했고, 고용노동부도 영어회화 전문강사의 업무가 상시지속적 업무라는 사실을 확인해줬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13년 영어회화 전문강사의 교육감 직접고용과 무기계약 전환을 권고했지만 현재 영어회화 전문강사 중 무기계약 전환자는 단 한명도 없다. 안인숙씨는 “정규직∙비정규직 기본급이 3% 인상되는 동안에도 강사직종은 기본급 인상이 되지 않았고, 급식비 등 각종 수당 지원 대상에서도 (강사직종은) 제외됐다”고 호소했다.

비정규직 강사들은 ‘올해 문화체육부 부담 정부 예산이 감원된다’고 들려오는 얘기가 두렵다. 그렇지 않아도 교육청은 매년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비정규직 강사들을 감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비정규직 강사 현황>에 따르면 2014년 16만8666명이던 비정규직 강사 수는 2015년 15만3015명으로 줄어들었다. 단 1년 만에 1만5000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강사들의 일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5427명이던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4552명으로 줄어들었고, 방과 후 학교강사는 12만8938명에서 12만3627명으로 5000여명이 축소됐다. 초등학교 스포츠 강사 수는 2911명에서 2400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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