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청와대 안의 웃음, 청와대 밖의 분노
  •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2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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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이 결핍된 언행, 국민에게 더 큰 상처와 고통이 될 뿐

영화 《부산행》과 《터널》은 재난 상황에 직면한 개인에게 철저히 초점을 맞춘다. 두 영화 속에서 국가는 거의 유명무실한 존재에 그친다. ‘안전하다’, ‘문제없다’는 말만 반복할 뿐 재난의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전략이나 지혜를 보여주는 국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지난해 《베테랑》이 흥행 열풍을 일으키며, 타락한 재벌 2세들의 부패한 일상을 비꼬는데 대중이 열광했다면 올해는 희한하게 철 지난 재난 영화에 대중이 또 다시 열광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 《부산행》, 《터널》등이 과연 단순한 재난 영화였을까.

 

과거 재난 영화와 달리 영화 《부산행》과 《터널》은 재난 앞에서 무력한 개인이 아닌 무기력한 정부를 꼬집고 히어로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혼신 어린 외로운 투쟁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미 보수언론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영화 《부산행》에서 “국민 여러분의 안전에는 이상이 없을 것입니다”의 대사나 영화 《터널》의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 구조하겠습니다”의 대사는 지난 날 우리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을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영화 《부산행》에서 등장한 좀비가 우리나라 부정부패한 일당들의 본 모습과 다름없다는 음모론적 의견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으니 씁쓸하기만 하다. 

 

이 와중에 지난 8월15일 대통령의 경축사가 있었다. 이번 리우올림픽 펜싱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박상영 선수의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강조하며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에서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대통령은 일침을 가했다. 최근 2~3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이른바 헬조선, 3포세대 등의 신조어를 대통령도 들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헬조선, 3포세대 또는 더 나아가 ‘개한민국’이라는 부정적 표현을 훈계하기에 앞서 이러한 사태를 촉발한 위정자들의 책임 결핍이나 부족한 역량을 먼저 국민 앞에 사과하면 안됐던 걸까. 이번 경축사에서 대통령은 ‘할 수 있다’, ‘자신감’과 ‘자긍심’, ‘공동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강조한 자신감과 자긍심이 어찌된 영문인지 국민들의 가슴에 크게 울리지는 않았다. 

 

G20 국가로 2년 만에 경제규모 세계 11위 재부상, 한류를 통한 문화융성의 실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노력과 선전 등을 강조하며 모든 국민이 자신감과 자긍심을 갖고 할 수 있다는 노력을 갖길 바랬는지 모르지만, 사실 국민들의 동기부여와 자신감을 박탈시킨 건 국가를 이끄는 정치인들에게 있고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걸 청와대는 애써 외면한 듯하다. “국민에게 할 수 있다, 자긍심을 가져라”라고 조언하지 않고 “그간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국민들의 눈높이를 충족시켜 드리지 못했다,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 잃어버린 국민들의 자긍심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발언이 보다 정직한 대통령의 메시지가 아닐까.

 

경북 성주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겠다면 대통령이 직접 성주 국민을 대상으로 사드의 필요성 또는 입지 선정에 관한 의사결정을 설명하고 성주 군민들에게 그 어떤 피해도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직접 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사드 배치에 관해서는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의 모습만 보일 뿐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논란은 지속적으로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이에 대해 그 어떤 한 마디의 논평도 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법을 불신하고 경시하는 풍조 속에 떼법문화가 만연해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는 우려 섞인 얘기를 하니 도대체 국민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할지 모르겠다. 

 

새누리당 신임대표 이정현과 대통령의 점심 메뉴는 두고두고 언론에 화제가 됐다. 당 대표 및 당 최고위원들이 참석한 식사 메뉴에는 샥스핀․바닷가재․캐비아샐러드․송로버섯 세트까지 등장했다. 당장 국민들은 SNS 및 인터넷을 통해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이 논란을 두고 만약 청와대가 “국민들이 송로 버섯 가격에 왜 이렇게 민감 하느냐”라고 판단했다면 정말 오산이다. 국민들에게 에어컨을 켜지 말고 인내하며 여름을 보내라던 메시지는 어디로 갔는가. 그리고 김영란법을 통해 모든 공직자의 접대 문화, 호화식사를 규제하겠다던 호기로운 정부의 태도는 어디로 갔는가. 일관성 없는 정부의 언행에 국민들이 실망을 보내자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송로버섯이 비싼 건 맞지만 가루를 내 향신료로 쓰는 음식재료”라며 금액으로도 얼마 안 된다는 망언을 쏟아냈다. 이 정도로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을 읽지 못하니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현직 우병우 민정수석은 연일 본연의 업무를 다하지 못하고 국내 언론과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검찰과 국정원, 경찰을 모두 관리하고 모든 공직자의 검증을 도맡기에 그 어떤 공직자보다 도덕적으로 모범적이어야 할 민정수석은 자신을 고발한 언론사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모든 신문과 방송이 지적하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눈을 감고 침묵하며 관대하던 그가 지난 날 얼마나 상대에게 가혹하고 위압적 태도를 보였는지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 텐데도 그는 자신의 과오를 지금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특히 국민에게 ‘할 수 있다’를 끊임없이 강조했던 대통령은 정작 국민의 요구나 불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말이 없었다. 자신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아 국민들이 헬조선을 언급하니 이제 와서는 국가를 비하하지 말라며 다그친다. 전기세가 비싸다고 항의하니 정작 청와대는 고급 요리와 함께 두터운 옷감을 입고 대통령이 등장한다. 공감이 결핍된 이러한 언행들을 통해 받는 상처는 오로지 국민 몫이다. 

 

글로벌 베스트셀러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21세기 기업가 및 정치가는 성직자에 준하는 고도의 도덕성을 가져야 하며, 도덕성이 기업 및 국가의 성패를 좌우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국민은 지도자 또는 리더의 도덕성을 언행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지도자의 언행에 영혼이 없거나 일관성이 결여돼 있으면 그 피해는 모두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토록 많은 학자가 리더에 대해 다양한 자질을 요구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리더의 정직성과 일관성이다. 가장 간단하게 보이지만 가장 실행하기 힘든 것이 바로 리더의 일관된 언행을 통한 신뢰 형성이기 때문이다.

 

최근 새롭게 새누리당 대표에 오른 이정현 의원은 취임 일성으로 국민들에게 변화된 모습을 보이겠다고 당당히 밝혔지만 문제가 된 우 수석 건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오히려 그는 민심이 아닌 청와대의 복심임을 자처하고 있다. 새로운 모습과 희망을 국민에게 주겠다는 그의 당당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송로버섯 앞에서, 그리고 시원한 청와대 안에서 웃음을 터뜨린 그의 모습이 과연 국민들에게 얼마나 공감과 희망을 줄지 의문이다. 국민들에게 위로가 되지 못할망정 또 다른 분노를 불러오게 해서야 되겠나.

 

사드 배치에서도, 전기세 누진제 문제에 관한 국민들의 불만에도 청와대는 말이 없다. 하긴 지난해 메르스가 전국을 강타하며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을 때도 청와대는 국민들에게 용기 있고 결단력 있는 모습을 결코 보여주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송로버섯 논란이 발생했고 경축사에서는 대한민국을 비하하지 말라는 일침을 대통령이 보내니 이를 지켜본 국민들이 받는 상흔은 너무 짙고 깊다. 줄 오로몽은 “위대한 리더는 책임 질 때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경우에도 추종자보다 자신을 더 높은 곳에 두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다나카 전 일본 수상은 ‘리더는 책임을 지는 자리’라며 리더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했다. 누군가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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