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K건설, 주상복합 개발 과정 1000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8.23 09:01
  • 호수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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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회계·허위채권·대출금횡령 등 불법행위 정황 포착, SK측 “소송 중 사안이라 설명 불가…재판과정서 밝힐 것”

SK건설이 지난 2004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주상복합 건물을 신축·분양하는 과정에서 10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사업부지 토지주와 채권자 사이 추심금과 관련한 제3의 소송에서 사업비와 관련한 수상한 돈 흐름이 발견된 것이다. 개발 수익금을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SK건설과 금융권 등이 법원에 제출한 증거물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사용처가 불분명한 돈 상당액이 현금으로 인출돼 은행계좌와 회계장부에서 사라져 어디론가 흘러갔다.

 

 

분양수입금 최소 491억원 사라져

 

영등포 타임스퀘어 인근에 지상 40층, 연면적 9만9986㎡ 규모로 지어진 주상복합 ‘SK 리더스뷰’. 시공사였던 SK건설은 3000억원대의 분양수입금과 1000억원이 넘는 금융기관 대출금 등을 실질적으로 관리했다. 이 과정에서 공사비·기타사업비 등을 제외하고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1000억원대의 자금 흐름이 포착된다. 계좌와 서류에도 남아 있지 않은 비공식 자금, 이른바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정황이다.

 

법원에 제출된 관련 자료 등에 따르면 SK건설은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상당수 불법적인 행위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SK건설은 개발 과정에서 분양수입금 등을 신탁계정을 통하지 않고 사실상 직접 관리했다. 금융권으로부터 받은 대출금을 신탁계좌에 입금하지 않은 뒤, 나중에 신탁계좌에서 갚도록 하는 방식도 동원했다. 또 SK건설은 금전소비대차약정서나 어음도 없이 채권을 회수한다는 명목으로 분양수입금을 빼가거나 준공 이후 100억원이 넘는 규모의 새로운 공사 계약을 체결해 수익금을 챙기기도 했다.

 

SK건설이 입주해 있는 서울 종로구 관훈동 관훈빌딩과 비자금 조성 정황을 담고 있는 서류들


시사저널이 입수한 4개의 분양수입금 통장을 분석한 결과, 영등포 SK 리더스뷰의 분양수입금은 3178억원에 달했다. 국민은행 명의로 개설된 오피스텔 및 상가 분양수입금 계좌 2개에는 2913억원이 입금됐다. 2007년 준공 이후 한국자산신탁과 신탁계약을 새롭게 체결한 뒤 통장 명의가 변경되자 SK건설은 별도의 외환은행 계좌 2개를 통해 160억원의 분양수입금을 관리했다.

 

이 돈은 어떻게 쓰였을까. KB국민은행이 거래내역서를 제출한 2014년 11월 현재 분양수입금 계좌에는 3억원가량만 남아 있다.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으로 SK건설 및 한국자산신탁 측 변호인이 제출한 문서에 따르면, 분양수입금 가운데 2723억원은 사업비에 쓰였다. 공사비(1039억원), 직발주공사비(231억원), PF대출금상환(351억원) 등이다. SK건설은 나머지 455억원에 대해서는 사용처를 밝히지 않았다. 법원에서 사업비로 인정받지 못한 제주도 사업비 36억원까지 포함할 경우 사라진 돈은 491억원으로 늘어난다.

 

 

금융권에서 빌린 606억원은 어디로

 

SK건설이 구상금 변제에 썼다고 주장하는 142억원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구상금과 관련한 서류상 근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탁사업과 관련해 자금 흐름이 적혀 있어야 할 신탁계정 대차대조표에는 이 금액이 포함돼 있지 않다. 또 당시 신탁계정에 자금 여유가 충분해 SK건설에서 대신 변제해 줄 이유가 없었다. 이 금액이 허위 채권에 의한 구상금 변제로 드러날 경우 출처 불명의 돈은 633억원까지 늘어나게 된다.

 

문제는 돈 흐름의 상당액이 현금으로 거래돼 추적조차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SK건설은 분양수입금 계좌에서 1024억원을 현금으로 인출했다. 통상적으로 법인 명의 계좌에서 현금을 뽑아 거래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계좌이체 등을 통해 거래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법인 명의 통장의 경우 회계 기록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현금 거래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영등포 SK 리더스뷰를 개발·착공하는 과정에서 우리은행·외환은행·현대스위스저축은행 등 12곳의 금융기관은 1553억원을 빌려줬다.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사업에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담보로 자금을 지원받은 PF(Project Financing) 대출이다. 기존 대출을 갚기 위해 돈을 빌린 대환대출 금액(795억원)을 빼면 실질적인 대출금은 758억원으로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606억원은 어디로 갔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SK건설과 한국자산신탁 측이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석명준비명령에도 불구하고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SK건설 측은 대출금 가운데 152억원 규모의 자금 집행과 관련된 증빙서류만 제출했다. 돈을 빌린 토지주가 신탁사와 시공사 측에 자금 용도를 밝히고 집행해 달라고 요청하는 공문 형태였다.

 


사용처가 불분명한 606억원은 대부분 SK건설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토지주의 외환은행 통장 내역을 보면, 2007년 8월28일 외환은행 인사동지점에서 320억원의 대출금이 입금된다. 이 돈은 같은 날 SK건설로 입금된다. 그해 9월28일에 대출받은 40억원의 경우 대출이자를 뺀 38억원이 또 SK건설로 흘러들어갔다. 이후 이듬해까지 6차례에 걸쳐 같은 방식으로 80억원이 SK건설 명의의 계좌로 넘어갔다. 

 

더욱 큰 문제는 대출금 가운데 대부분을 분양수입금에서 갚았다는 점이다. 분양수입금 계좌 4개에서 대출금 상환에 쓰인 돈은 641억원(토지비 관련 대출금 포함)이다. 하지만 신탁계정의 회계장부를 살펴보면 PF대출금이 들어왔다는 흔적이 없다. 신탁계정만 놓고 보면 돈은 들어오지 않고 제3자에게 흘러간 대출금을 대신 갚은 꼴이 된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사 관계자는 “개발사업을 명목으로 PF대출을 받았으면 신탁계정의 채무로 잡는 것이 정상적”이라며 “대출금이 신탁계정으로 흘러들어오지 않았을 경우 명백한 회계부정”이라고 밝혔다. 또 “회계상 돈이 신탁계정에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분양수입금에서 대출금을 갚는 것은 명백한 횡령·배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허위공사 발주, 헐값 분양 사례도

 

SK건설은 분양수입금 계좌에서 더 많은 돈을 가져가기 위해 허위공사계약을 맺기도 했다. SK건설은 2007년 7월 ‘마감 및 기타 부대공사’ 명목으로 281억원 규모의 공사를 별도로 체결했다. 준공(2007년 8월30일) 직전 작성일자도 기재돼 있지 않은 한 장짜리 계약서를 통해 추가 공사계약을 맺은 것이다. 하지만 SK건설이 2007년 7월24일께 작성한 ‘향후 집행 예정 사업비 내역’에는 직발주 공사분에 대한 공사대금으로 13억원가량이 적시돼 있다. 불과 며칠 만에 예정 사업비보다 20배가량 부풀려진 공사계약서가 작성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고등법원은 “281억원 상당의 추가 공사대금 채권을 가지고 있다는 SK건설 등의 주장은 이유가 없다”고 판결했다.

 

특혜 혹은 이면계약을 의심할 만한 헐값 분양 사례도 나왔다. 한국자산신탁은 2014년 6월 미분양된 상가 215개를 일괄 매각했다. 매각대금은 46억8000만원. 이는 당초 원분양가격(386억원)의 12%에 불과한 규모였다. 공매 한 달 전 실시한 감정평가액(132억5000만원)에 비해서도 3분의 1에 불과했다. 상가 한 곳당 2177만원에 팔아버린 셈이다. 이를 위해 한국자산신탁은 공매 일주일 전 신문사 한 곳에 공고한 뒤 하루에 4차례씩 공매를 시도해 10차례나 매매가격을 낮췄다.

 

지상 40층 규모의 영등포 SK 리더스뷰

그렇다면 헐값에 상가 215개를 사들인 사람은 누굴까. 당시 74세의 나이로 공매 상가 가운데 9개를 임차했던 김아무개씨(여)였다. 김씨는 상가 9곳의 임대보증금 43억원(임대료의 환산보증금 포함)에 3억원가량을 더해 나머지 상가 206개를 손에 거머쥘 수 있었다. 김씨는 소유권 변동 직후 곧바로 상가 전체를 국제자산신탁에 위탁했다. 김씨가 지급한 매매대금 대부분은 이전 소유주인 한국자산신탁을 거쳐 곧바로 SK건설로 입금됐다. 이면계약이나 위장매각 가능성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사저널은 취재 중반인 8월12일부터 SK건설 측의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다. 분양수입금을 관리하는 계좌가 추가로 나타나거나 금융권 대출금을 정당하게 사용했다는 증거 자료가 존재한다면 얼마든지 소명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SK건설 측은 “재판 진행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기 어렵다”며 “재판 과정에서 명확히 밝힐 것”이라는 답변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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