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 스코필드 박사 유지 중 하나”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6.08.23 09:53
  • 호수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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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운찬 전 총리 “양극화 해소 위해 어떤 일이든 할 각오 돼 있다”

최근 정치권으로부터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 내한 100주년에 맞춰 호랑이스코필드장학문화재단을 출범시켰다.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 당시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릴 정도로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기도 한 정 전 총리는 “스코필드 박사의 뜻을 이어받아 미래의 지도자들을 발굴하는 것이 장학재단의 목표”라면서 “동반성장 역시 스코필드 박사의 유지 중 하나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어떤 일이든 할 각오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계 복귀에 대해서는 “정치권과 아무런 접촉이 없다”면서 “(정계 복귀를 위한) 아무런 준비가 없다”고 밝혔다.

 

 

스코필드 박사와 남다른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5남매가 어렵게 컸다. 달동네에 살았다. 아침은 옥수수가루로 만든 떡으로 끼니를 때우고,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쌀밥을 거의 못 먹었다. 학업을 포기하고 취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반 친구에게 말했었는데, 다음 날 그 친구 아버지인 이영소 서울대 교수가 찾아오셨다. “좋은 중학교 가면 등록금을 대주겠으니 공부해라”라고 얘기해 주셨다. 이영소 교수의 소개로 스코필드 박사를 만났다. 스코필드 박사가 고등학교까지 등록금을 대주셨다. 재정적으로 도와줬을 뿐 아니라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직해라. 어려운 사람, 특히 선한 사람한테는 비둘기처럼, 정의롭지 못한 사람에게는 호랑이처럼” 이런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 대학 갈 때 어느 과로 진학할지 여쭤보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성장은 이뤘지만 빈부격차가 너무 심하다. 빈부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가르쳐주는 학과에서 공부를 하고 일생을 그런 노력을 하라”고 해서 경제학을 선택했다.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된 유일한 외국인 스코필드 박사


호랑이스코필드장학재단이라는 이름이 특이하다.

 

스코필드 박사가 1916년 한국에 오셔서 한국명을 얻었다. 스코필드 박사의 한글 교사였던 목원홍 선생이 지어줬는데, 돌 석(石), 호랑이 호(虎), 도울 필(弼)을 쓴다. ‘돌과 같은 굳은 의지로 호랑이처럼 강한 사람이 돼서 남을 돕겠다’는 뜻이다. 스코필드 박사가 생전에 이 이름을 아주 좋아하셨다. 그래서 별명도 ‘호랑이 할아버지’였다. 

 

 

스코필드 박사의 가르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스코필드 박사와 산보를 많이 했다. 하루는 국무총리를 지내기도 했던 이한기 서울법대 교수가 인사를 했다. 이 교수가 자신을 소개하며 “국제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하자 스코필드 박사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가르치면서 국립대학에서 봉급을 받느냐”고 다그쳤다.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그 뜻을 물어보자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국력”이라고 잘라 말씀하셨다. “국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제자들에게는 “핑계 대지 마시오”라는 말씀도 많이 하셨다. 또 “한국의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눈곱만치도’ 없다”는 말씀도 종종 하셨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닌 건설적 비판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하셨다. 

 

 

스코필드 박사는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기도 한다.

 

1919년 당시 민족대표 중 한 분이셨던 이갑성 선생이 스코필드 박사에게 국제정세에 대해서 물어와 스코필드 박사가 국제정세 보고서를 만들어줬는데 그 안에는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생생한 현장 사진을 찍어 출국하는 선교사를 통해 해외에 한국의 독립의지를 알렸다. 화성 제암리 학살 사건에 대한 얘기를 듣고는 소아마비의 불편한 몸에도 제암리까지 내려가 경찰들의 눈을 피해 일제의 만행을 사진으로 담았다. 

 

 

1기 장학생으로 34명을 선발한 것도 ‘34번째 민족대표’라는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렇다. 중1부터 고2까지 31명, 대학생 3명 포함해서 34명을 선발했다. 이 중에는 탈북 청소년, 홀부모 아이들, 입양아 등과 공개적인 과정을 통해서 선발된 외고·국제고·과학고 학생들도 포함된다. 국내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중동·동유럽의 미래 지도자들을 발굴해서 키우고자 하는 계획이 있다.

 

은인인 스코필드 박사에게 고마움을 표할 방법은 박사의 뜻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반성장에 대한 사업도 마찬가지다. 양극화 해소 역시 스코필드 박사의 뜻을 이어받은 것이다. 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와 동반성장연구소의 정신은 같다.  

 

8월18일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을 연구소에서 만나 스코필드 박사와의 인연과 장학재단의 운영방향,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었다.


최근 동반성장위원회가 예산과 인력 부족 등으로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안타깝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2010년에 동반성장위가 만들어질 때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내 주장은 묵살됐고 결국 민간자율합의기구 형태로 설립됐다. 자금이나 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대통령에게 예산과 인력을 2배로 늘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자금 지원이 예산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올해부터 전경련이 지원을 중단했다. 예상됐던 결과다. 

 

동반성장은 이제 세계적 흐름이다. 우리나라만 이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한배를 타고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초과이익 공유제를 다시 한 번 고민해 봐야 한다. 대기업이 목표치를 초과 달성할 경우 대기업에 협력하는 중소기업에 기여도 등을 평가해 이익 일부를 돌려줘야 한다. 세계적인 기업인 롤스로이스·크라이슬러·캐리어 등도 모두 이렇게 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도 이익공유제 도입을 공약했다. 왜 우리만 초과이익 공유라는 이야기만 나오면 ‘빨갱이’라고 생각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최근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는데.

 

정치권에 계신 분들과 아무런 접촉이 없다. 전화통화도 없었다.

 

 

이재오 전 의원의 늘푸른한국당에서는 동반성장 및 양극화 해소를 정책 목표로 꼽고 있다.

 

이재오 전 의원과도 접촉한 적 없다. 내가 총리 할 때 이 전 의원이 특임장관을 했을 것이다. 당시에 서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이 전 의원이 특임장관을 하면서 소신껏 행동한다고 느꼈다. 마찬가지로 이 전 의원이 나의 동반성장 아이디어를 좋게 생각해 주는 것 아니겠는가.

 

동반성장 사회 건설을 앞당기는 것이 나의 목표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중요한 것은 자리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하느냐이다. 동반성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지금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정치적 활동을 위한) 아무런 준비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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