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부상 방치로 난치병자 된 형제 사병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23 10:14
  • 호수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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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부상 불구, 치료시기 놓친 데다 치료비 폭탄까지 부담해야

군 의료체계의 허술함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동안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잘못된 처방을 받아 장애가 생기거나 후유증을 앓는 장병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지금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6월 제대를 한 달 정도 남겨둔 김아무개 병장은 목 디스크 시술을 받으러 경기도 가평에 있는 국군청평병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간호장교가 의료장비 소독용 에탄올을 주사해 한쪽 팔을 못 쓰게 될 지경이 됐다. 김 병장은 신경 손상으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 판이다. 

 

군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난치병에 걸린 형제도 있다. 형인 육진훤씨(22)는 2014년 11월, 동생 육진솔씨(21)는 4개월 후인 지난해 3월 군에 입대했다. 그러나 형제의 군생활은 불운했다. 형 진훤씨는 상병 때인 2015년 5월 5분대기 비상근무 중에 부상을 입었다. 이에 앞서 동생인 진솔씨는 논산훈련소에서 행군을 하다 돌부리에 넘어지면서 코뼈가 골절되고 무릎 부상을 입었다. 당시 진훤씨는 무릎에 금이 갈 정도였지만, 군 의료진은 파스 한 장 붙여준 게 전부였다고 한다. 육 상병의 부상은 점점 심해졌다. 다리를 펼 수조차 없게 됐고, 통증의 강도도 높아갔지만 군 병원은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진통제만 투여했다. 

 

육진훤 상병이 난치병인 CRPS 진단을 받고 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타박상이라던 다리, 3주 후 골절로 판명

 

아들의 상태가 걱정됐던 육 상병의 부모는 국군고양병원을 찾아갔다. 여기서 큰아들의 부상당한 다리를 본 순간 깜짝 놀랐다. 살갗이 이미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고, 다리를 펴지도 발을 바닥에 딛지도 못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어머니 유선미씨는 “군의관은 진훤이 다리도 보지 않고 컴퓨터로 자료를 보면서 ‘단순 타박상이다. 아들의 엄살이 심한 편이다’라고 말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육 상병의 부모는 군 병원 측에 MRI(자기공명영상) 촬영을 요구했으나 환자가 많아서 통상 1~3개월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육 상병의 부모는 불안했다. 아들의 증상이 점점 악화되고 있어서 하루빨리 정밀진단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군 병원 측은 그리 협조적이지 않아 보였다.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겠다고 했더니 군의관은 “소견서나 진단서를 써달라고 해서 갖고 오라”고 했다. 육 상병은 가까스로 2시간 외출증을 끊고 고양 삼성정형외과에 갔다. 병원에서는 당장 입원해서 정밀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소견서를 써 줬다. 

 

육 상병의 부모는 중대장을 찾아가 아들의 병이 심상치 않다며 항의했다. 그리고 며칠 후 고양병원에서 MRI를 찍었고, 촬영 CD를 받아 인천의 한 병원에서 내용을 판독했다. 그랬더니 ‘혹시나’ 했던 것이 ‘역시나’로 나타났다. 단순 타박상이라고 했던 군 병원의 진단과는 달리 ‘골절’이라는 진단이 나왔던 것이다. 

 

육 상병의 어머니는 “일주일 후 검사결과가 나왔다. 진훤이에게 ‘엄살이 심하다’고 말한 군의관이 ‘무릎에 실금이 갔는데, 군병원에서는 이것을 타박상으로 본다’고 해서 기가 막혔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때가 돼서야 육 상병은 발에 반 깁스를 할 수 있었다. 처음 부상당한 후 골절 진단이 나올 때까지 약 3주의 시간이 흘러갔다. 

 

같은 해 5월말쯤 육 상병은 휴가를 내고 외부 진료를 받았다. 민간병원에서 치료받을 때는 그나마 상태가 호전됐다. 약 일주일 후 부대로 복귀했고, 부대 의무실에서 이틀 정도 있다가 환자가 없다는 이유로 생활관에서 지냈다. 얼마 후 육 상병은 다시 휴가를 받아 인천 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이곳에서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 병은 바람결 같은 미세한 자극에도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난치병’이다. 슬쩍 스치기만 해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옷이나 양말을 걸칠 수도 신을 수도 없다. 고통은 24시간 내내 지속된다. 

 

 

강제 의병제대 후 자살 기도까지

 

의학계에서는 통증을 시각화해 묘사한 통증척도(10점 만점)를 사용하고 있다. 주사를 맞을 때 따끔한 정도가 3이라면 치통이 4.5, 출산의 고통이 7.5,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극심한 고통을 8로 수치화하고 있다. 손발을 자를 때가 8~9인데, CRPS는 거의 10에 가깝다. 그야말로 극한의 통증이다. 워낙 아프기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15% 정도나 된다고 한다. 

 

육 상병도 부모에게 “제발 죽여달라”며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육 상병의 경우 치료만 빨랐어도 CRPS는 피할 수 있었다. 전문의들은 군이 약을 빨리 쓰고 신경차단 치료를 했으면 CRPS로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육 상병의 부모도 아들의 치료시기를 놓친 군이 못내 원망스럽다.

 

항생제 부작용으로 육진훤 상병의 얼굴과 목 등에 물집이 잡히고 염증이 생겨났다.

육 상병의 통증은 부대에 복귀한 후 점점 심해졌다. 7월15일쯤 부대에서는 육 상병을 데리고 고양 삼성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봤다. 이곳에서도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가야 한다’는 소견서를 써줬다. 부대에서 육 상병의 부모에게 전화해 어느 병원에 갈 것인지를 물었다. 부모는 서울대병원 본원을 얘기했지만, 군에서는 성남에 있는 국군수도병원으로 데려갔다. 부대에서는 이곳에서 2~3번 정도 시술해 보고 진전이 없으면 큰 병원으로 위탁진료를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수도병원에서의 시술이 시작됐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육 상병의 부모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서울대병원에 급히 예약을 잡았다. 이 자리에는 육 상병의 동생인 육진솔 일병도 동행했다. 육 일병도 부상을 당한 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한동안 방치됐다. 

 

부모는 이날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형에 이어 동생 육 일병도 CRPS 증세를 보인 것이다. 그래도 형보다 증세가 덜 심한 것을 위안 삼아야 했다. 부모는 두 아들을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겠다고 했으나 군은 부정적이었다. 위탁은 안 되니 민간병원 치료를 원하면 자비로 치료하라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한다. 이때부터 형제는 수도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서울대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았다. 육 상병은 신체조직의 틈 사이에 조직액이 괸 상태, 즉 ‘부종’이 아주 심했다. 발톱도 내성발톱(발톱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 염증과 통증이 발생하는 질환)으로 고생하면서 하루하루가 힘든 상황이었다. 

 

육 상병과 동생 육 일병은 각각 3월과 1월에 몸속에 척추자극기를 설치하는 시술을 받았다. 군에서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월14일자로 동생 육 일병을 상병으로 의병제대시켰다. CRPS는 난치병으로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군의 이런 조치는 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 6월부터 육 상병의 얼굴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얼굴은 물론 목과 등에 물집이 생기고 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수도병원에서는 피부트러블이 와서 염증이 생긴 것으로 진단했다. 이에 반해 서울대병원에서는 ‘항생제 부작용’이 원인이라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것이다. 

 

 

“군이 치료비 전액 부담해야”

 

지금도 육진훤·진솔 형제의 부모는 이중삼중의 고통을 계속 받고 있다. 두 아들이 난치병을 얻은 것도 모자라 ‘치료비 폭탄’을 맞아야 했다. 군은 치료비 전액을 책임진다고 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척추자극기 삽입 수술비용 등 자비로 치료에 들어간 금액이 수천만원에 달한다. 

 

진솔씨는 군에서 강제 전역당한 후 실의에 빠졌다. 국방의 의무를 위해 군에 입대했지만 난치병인 CRPS를 얻은 데다 막대한 치료비 부담까지 부모에게 떠안겼다는 부담감이 컸다. 그는 5월30일 밤 10시쯤 유서를 써놓고는 손목을 그어 자살을 기도했다. 그는 어머니 유씨에게 전화해 “엄마, 군대에서 다쳐서 미안해. 나 때문에 너무 힘들었지. 먼저 (하늘나라로) 가서 기다릴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너무 후회된다”는 말을 남겼다. 

 

진솔씨는 지나가던 택시기사에게 발견돼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이런 와중에 형인 육 상병은 8월9일자로 만기 전역했다. 사실상 의병제대다. 현행법상 사병이 복무 중 부상 등을 입으면 전역 후 6개월까지만 군 병원에서 무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동생 진솔씨는 9월14일까지, 형 진훤씨는 내년 2월9일까지다. 그다음부터는 오로지 본인들이 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어머니 유씨는 “군에서는 두 아들의 척추자극기 삽입 수술비용만을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걸 받으면 나머지 비용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가 돼서 지금까지 들어간 금액 전액을 주면 받겠다며 거부했다”고 말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도 “군은 ‘치료비 전액을 군에서 책임지고, 해당 장병들의 빠른 쾌유를 위해 끝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두 형제의 치료비 전액을 책임져라”라고 촉구했다.

 

국가는 젊은이들에게 국방의 의무를 다하라고 요구한다. 그렇다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 다친 사병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가 아닌지 묻고 싶다. 

 

 

“두 아들 고통 생각만 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육진훤·진솔 형제 어머니 유선미씨

 

 

육진훤 상병과 동생 진솔씨가 건강했을 때의 모습. 왼쪽이 육진훤 상병, 가운데는 여동생, 오른쪽이 진솔씨

두 아들의 상태는 어떤가.

 

진훤이는 수도병원에 입원해 있고, 진솔이는 퇴원해 매주 금요일 형과 서울대병원 진료를 간다. 진훤이는 상태가 좋지 않다. 무릎도 문제지만 항생제 부작용까지 와서 심각하다. 그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기가 너무 힘들다. 솔직히 엄마로서 내 다리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다. 

 

 

지금까지 얼마 정도의 치료비가 들어갔나.

 

지난해 5월21일부터 11월말까지 들어간 치료비만 1500만원을 넘었다. 자세한 금액은 계산해 봐야 알겠지만, 진훤이 통장으로만 계산된 금액이 2800여만원에 달한다. 여기에다 부모의 통장에서 나간 금액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많다. 앞으로 들어갈 병원비도 상상을 초월한다. 

 

 

국방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까지 들어간 병원비를 모두 지급하고, 앞으로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지금 어떤 심정인가.

 

우리 아들 형제는 이제 20대 초반의 나이다. 다른 친구들처럼 자유롭게 운동도 하고 싶고, 마음껏 뛰고 싶어 한다. 그런데 어디를 가나 몸속에 있는 기계를 신경 써야 한다. 충전기가 들어 있는 가방도 들고 다녀야 한다. 또 CRPS를 고치는 약이 나오기 전까지는 마약류로 버텨야 한다. 이 고통을 생각만 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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