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머리 싸맨 젊은이들의 ‘초식화’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8.2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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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 성관계 과거보다 2배나 줄어

결혼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두고 국가는 머리가 아프다. 이런 이야기를 문제 삼을 때 등장하는 단어가 '초식남'이다. 일본에서 시작돼 한국으로 전파된 이 단어는 연애에 소극적이고 외부활동보다 혼자만의 시간에 탐닉하며 이성과의 스킨십과 성관계도 자주 없는 남자를 뜻한다. 풀 뜯어먹는 남자란 얘기다. 여기에 대응하는 여성용 단어가 '건어물녀'다. ‘초식남’과 ‘건어물녀’. 마치 동북아시아 젊은이들만의 전유물 같은 이 단어가 이제는 글로벌화 돼 가는 것 같다. 

 

왜냐면 미국도 같은 고민에 빠져서다. 젊은이들의 '초식화'는 지금 미국에서도 진행 중이다. 미국 3개 대학의 교수들이 진행한 연구 결과에서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섹스리스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태어난 미국의 젊은이들(20~24세)들 중 18세 이후 성관계를 해본 경험이 없는 비율은 15%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들의 부모세대인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같은 연령대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6%만이 성경험이 없었다. 두 배 이상 초식동물이 늘어난 셈이다.

 


이 연구는 진 토웬지 샌디애이고 주립대 교수(심리학), 라인 셔먼 플로리다 애틀랜틱대 교수(심리학), 브룩 웨일스 와이드너대 교수(사회심리학)가 주축이 돼 이루어졌다. 미국 시카고대 전국여론조사센터(NORC)가 18세 이상 미국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대규모로 실시하는 '종합사회조사'(GSS)의 1989~2014년 결과를 참고했다. GSS에서는 '성관계 상대'를 묻는 질문이 있는데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출생자가 각각 20~24세일 때의 답변을 비교했다. 그 결과 1990년대 생이 성관계에 가장 빈곤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1970년대~80년대 출생자는 같은 나이 대에 성경험이 없는 비율이 12% 정도였다. GSS 조사에서 묻는 '상대'란 지속적인 관계만 뜻하지 않는다. 하룻밤 상대처럼 가벼운 관계도 포함했다.  

 

 

밀레니얼 세대, ‘가벼운 이미지’는 허구였다

 

기성세대보다 1980~90년대에 태어난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에서 ‘동정’이 많다는 건 정말 의외의 결과다. 오히려 부모 세대보다 인스턴트식 관계가 더 잦을 거라는 이미지가 있는 게 요즘 세대다. 채팅이나 데이트앱 등을 이용해 가벼운 성관계도 자주 생길 건데 이게 무슨 소리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이번 연구를 보면 성관계 경험에서 이탈하는 젊은이들 중에는 남성보다 여성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성관계를 하지 않은 젊은 여성의 비율은 1960년대생 중에서는 2.3%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생은 5.4%로 두 배 이상 높았다. 

 


물론 여러가지 경우의 수는 있다. 예를 들어 18세 이전에 성경험을 했지만 18세 이후에는 하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성경험이 없다”고 GSS에 답한 설문자들을 모두 동정이라는 확신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연구진 중 한 사람인 셔먼 교수는 이를 두고 "옛날보다 성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라고 단정했다.

 

왜냐면 셔먼 교수의 주장을 돕는 데이터도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실시한 조사를 보면 성경험이 있는 고등학생의 비율은 1991년 54%에 달했는데 2013년에는 47%로 감소했고 2015년에는 41%로 확 떨어졌다. 이 두 가지 여론조사를 합쳐보면 18세 이전의 성경험 없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고, 그 이후에도 역시 무경험자의 비중이 커진 셈이다. 

 


“외모 중시하는 어플 만남, 대부분 배제된다”

 

이번 연구에서는 성경험이 줄어든 이유에 대해서 따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연구진은 이런 감소 추세에 수많은 요인이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게임이나 인터넷의 이용이 늘어난 것도 하나의 이유다. 과거와 비교하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달라졌고 젊은이들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토웬지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친구들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데 쓰는 시간이 늘어나고 실제로 만날 시간이 줄어들면 성관계의 기회가 더욱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다. 철이 들었을 때부터 컴퓨터와 인터넷이 너무나 당연하게 자기 주변에 존재한 최초의 세대다. 토웬지 교수는 "직접 대면하는 것보다 화면 너머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게 익숙한 점도 이런 (초식화) 현상에 기여한 것 같다. 또 데이트앱 등을 사용하면서 외모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해진 점도 원인이다"고 지적했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은 외모가 좀 떨어져도 다른 매력으로 어필할 수 있지만 앱 등을 통할 경우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게 외모다. 외모가 거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토웬지 교수는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할수록) 사람들 중 대부분은 제외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주 적은 선택지 밖에 주어지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상대를 찾는 일이 점점 내키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제적 상황과 연결 짓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에서도 젊은이들은 성인으로 경제적 자립을 하는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성관계의 첫 경험도 점점 늦어진다. 토웬지 교수는 "현대의 젊은이는 과거 청소년보다 취업률과 결혼율이 낮다. 그 때에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국제 성과학연구학회가 펴내는 성적행동 아카이브(Archives of Sexual Behaviour)에 게재돼 온라인에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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