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그래도 민심은 천심이다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press.com)
  • 승인 2016.08.26 14:25
  • 호수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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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 너무 더워서 힘드시죠? 무더위를 식히는 퀴즈로 이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유교적인 국가는?” 답은 짐작하시겠지만 ‘대한민국’입니다. 여기에는 북한도 물론 포함됩니다.

 

조선은 유교 중에서도 가장 근본주의 계열인 성리학(性理學)을 500여 년간 국교로 신봉했습니다. 시대에 따라 양명학·고증학 등으로 변신을 꾀한 중국과, 유교를 편의상 통치이념 정도로만 활용한 일본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유교의 가장 기본 경전은 《논어(論語)》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교를 중흥시킨 공자의 사상을 정리한 책이죠. 논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군군신신(君君臣臣)’.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당위론 성격의 좋은 말입니다.

 

여기서 문제 제기를 하나 해 보겠습니다. 이 말이 지켜지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신하의 경우는 간단합니다. 임금이 신하를 응징하면 간단합니다. 임금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맹자가 출현하기 전까지 유교는 이 경우 꿀 먹은 벙어리였습니다.

 

맹자는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폭군(暴君)이고 폭군은 임금이 아니니 천명(天命)을 받들어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해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이른바 ‘역성혁명론(易姓革命論)’입니다. 이 같은 맹자의 사상은 유교의 치명적 단점을 보완했으나 이 때문에 맹자는 명태조 주원장 등 역대 제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맹자가 군주와 폭군을 구분한 기준이 뭘까요. 천명과 민심입니다. 민심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오죽하면 ‘민심은 천심이다’는 표현까지 있을까요.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의 흐름을 보면 우려되는 대목이 바로 민심입니다. 민심을 무시하는 상층부의 언행이 적지 않습니다.

 

해방 후부터 따져보면 자유당 때는 민심을 무시하다가 4·19혁명이 발생했고 정권이 교체됐습니다. 5·16 이후는 군부정권과 문민정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군부독재라는 말이 통용됐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군부정권 때 오히려 여론을 존중했습니다.

군부정권이 정통성 면에서 취약해서 여론에 신경을 많이 썼던 데다 한국은 조선시대 이래 문민지배 전통이 확고했던 것이 배경에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 성공 후 군복을 벗고 형식상 민간인 신분이 된 후 집권했는데, 이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입니다.

 


군부 출신 대통령 시대가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대중정치인 출신의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당시 항상 여론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이들은 심지어 자기 자식도 법을 어긴 것으로 드러나자 감방에 보냈습니다. 이것은 민심을 받든 것입니다.

 

이처럼 민심은 어느 시대든 받들어야 하는 대상입니다. 그러나 작금의 대한민국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듯합니다. 저도 이 나라 국민의 한 사람이지만 정권이 민심을 존중하기는커녕 무시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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