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가 ‘부르키니’ 논란에 시끄럽다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29 16:38
  • 호수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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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 종교 표시 금지” vs. “종교 자유 침해”

유난히 무더운 2016년 여름, 프랑스의 해변은 ‘부르키니’ 논란으로 더 뜨겁다. 부르키니(Burkini). 사전에 아직 등재되지 않은 이 단어는 무슬림 여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전신을 가린 수영복을 일컫는 말이다. 부르카와 비키니를 합쳐놓은 신조어다. 부르카는 니캅, 히잡, 차도르와 같은 무슬림 여성들의 복장 중 가장 보수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눈 부위를 망사로 처리하고 나머지 모든 신체 부위를 가린다. 역설적으로 신체를 가장 드러내는 수영복인 비키니와 합성어가 됐다.

 

8월13일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인 코르시카에서 바로 이 부르키니로 인해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코르시카 북쪽 시스코 해변에서 부르키니를 입고 피서를 즐기던 현지 무슬림 여성을 다른 지역에서 온 주민이 사진을 찍으며 촉발됐다. 사진 촬영에 분개한 가족과 이웃 주민들의 폭력사태는 현지인들과 무슬림들의 대결 국면으로까지 확대됐다. 폭력사태의 발단이 부르키니라고 전해지자 사건 지역의 관할 시청인 시스코시(市)의 앙쥐 피에르 비보니 시장은 해변에서 부르키니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부르키니 금지에 대한 문제가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되며 찬반 논란이 가열된 것이다. 시스코에 이어 프랑스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칸도 부르키니 금지를 선언했다. 그리고 지난 7월 ‘트럭 테러’로 충격에 빠졌던 니스도 금지 대열에 동참했다. 프랑스 민영방송인 TF1은 8월24일까지 프랑스 연안의 24개 시에서 부르키니 금지령을 선포했으며, 위반사례는 22건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8월4일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해변에서 부르키니를 입은 여성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부르키니, 올여름 40% 이상 판매 상승

 

프랑스 내에서 ‘부르키니를 금지해야 한다’는 논리의 표면적인 이유는 ‘공공장소에서의 종교적 표시 금지’라는 정교분리 원칙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것이 유독 무슬림 여성들의 복장 문제와 관련해 ‘개인의 종교적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비치며 논란이 돼 왔었다. 2005년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될 때의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에 부르키니 논란이 빠르게 과열된 것은 프랑스 정치인들의 잇따른 강경 발언 때문이다. 마뉘엘 발스 총리는 8월17일 프랑스 한 지역지와의 인터뷰에서 “공공질서의 혼란을 야기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며 부르키니 금지를 천명한 시장들의 조치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아울러 부르키니에 대해서는 “수영복의 새로운 형태도 아니고, 패션도 아니다”며 “여성에 대한 억압에 기반한 반사회적인 정치적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발스 총리의 이러한 초강경 발언은 같은 사회당 내부에서조차 반발을 불렀다. 차기 대권 주자 중 한 사람인 브누아 아몽 전 교육부 장관은 “부르키니가 그렇게 위협적이라면 차라리 법률로 제정하라”며 “해변의 부르키니마저도 도발로 간주한다면, 이제는 해변가에서 젤라바(아랍 남성의 겉옷)에 수염조차도 도발로 간주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이번 금지 논란 이후 프랑스의 누리꾼들 사이에선 “이젠 해변가에서 청바지만 입어도 벌금을 내는가”라는 조롱 섞인 주장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부르키니는 2004년 레바논 출신의 디자이너인 아헤다 자네티(48)에 의해 처음 고안됐다. 호주에 거주하고 있는 자네티는 어린 조카가 히잡을 두르고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 간편한 복장을 찾던 중 자신이 어린 시절 제대로 수영이나 운동을 하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녀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수영을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옷이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04년 아히다(Ahiida)라는 상호의 회사를 개업해 2006년 부르키니(BURKINI®, BURQINI®)란 이름으로 상표를 등록했다. 자네티는 부르키니에 대해 “무슬림 여성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며 해수욕과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목적”이라며 “종교적 이유를 떠나서 수영복과 같은 재질이어서 건조가 빠르며, 자외선(UV50)까지 차단된다”고 덧붙였다.

 

자네티의 고객 중 40%는 비(非)무슬림이다. 창업 이후 지금까지 70만 벌 이상 팔려 나갔으며, 2016년 여름에만 40%의 판매 성장을 보였다고 한다. 더구나 이번 금지 논란으로 주문이 폭주했다고 한다. 평소 10벌 정도의 주문이었던 것이 논란이 정점이던 8월20일 하루에만 60벌의 주문이 들어왔으며 흥미로운 것은 모두 무슬림 신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캐나다 총리 “개인 권리이며 선택은 자유”

 

부르키니를 둘러싼 프랑스의 뜨거운 논쟁을 바라보는 다른 서구의 시선은 간명하다. 뉴욕타임스 파리 특파원인 알리사 요한슨 루빈은 “국가가 해변에서 입을 옷을 결정한다는 것은 너무 강압적으로 보인다”며 “프랑스의 라이시테(공공장소의 종교적 표식 금지)는 ‘배척의 방식’을 취하는데, 사회를 통합하려면 다름을 모두 포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같은 프랑코폰(프랑스 문화권)으로 간주되는 캐나다의 저스틴 트뤼도 총리도 “부르키니는 개인의 권리이며 선택은 자유”라고 프랑스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관용을 넘어선 도덕”을 강조하며, 관용의 종주국임을 자처하는 프랑스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서구 언론의 반응에 대해 프랑스 좌파 일간 리베라시옹의 로랑 조프랑 편집장은 “프랑스의 1905년 종교 상징물 금지 법안은 당시 국가 정책에 깊숙하게 관여했던 종교 세력을 철저히 도려내기 위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며 프랑스의 특수한 상황을 강조했다. 또한 개인의 종교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선 “부르키니를 금지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 침해라고 하는 나라들보다 프랑스엔 더 넓은 폭의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지적하며 “(프랑스 시사만평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은 영국이나 미국에선 금지됐었다”고 반문했다.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프랑스의 정치 일정이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 정국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논란이 정점으로 치닫던 8월22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부르키니와 관련된 이번 사태를 ‘공화국의 위기’로 규정하며 법 제정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러한 주장은 프랑스의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입장과 같은 것이다. 부르키니 논쟁은 대선을 앞두고 반(反)이슬람 정서를 통해 극우 지지층을 흡수하기 위한 선거전략으로 전락하고 있는 양상인 것이다. 종교문제 전문가인 라파엘 루와지에는 BFM TV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에선 심각한 이슬람 문제가 너무나 어이없이 ‘정치화’되곤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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