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위안부’, 그 생존의 기억》 #5. “애를 미국에 떼어 놓으니 내가 죄인이지”
  • 박준용 기자·이성진 인턴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8.30 14:59
  • 호수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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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촌 생활 이후, 자녀와 이별해야 했던 그녀들

“내가 애를 한 30명 긁어냈나봐.” 

‘미군위안부’ 피해 여성 박경숙씨(가명·71)는 고아였다. 어린 시절 무작정 상경한 그녀였다. 서울역 인근 직업소개소 사장이 그녀에게 짜장면 세 그릇을 사준 뒤, 소개비 1만5000원을 받고 기지촌에 넘겼다. 그녀는 그곳에서 강제구금·폭행 등으로 고통받았다. 

 

포주에게서 빠져나오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도 그녀를 괴롭히는 게 있다.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녀는 남매를 낳았다. 그녀에게 아이는 각별했다. 기지촌 생활을 하며 강제낙태를 경험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군을 계속 받으니까. 애가 자주 들어서서 보건소 가서 많이 긁어냈어. 한 30명 긁어냈나봐. 무슨 약을 먹으면 기계로 펌프질하는 것처럼 다 나오더라고, 옛날에 그랬어. 보건소에 돈을 포주가 내겠지. 그러고 나면 포주가 빚이 올랐다고 해. 그게 빚이지. 애기 쓸어낸 게.”

한때 기지촌 주변은 기지촌 여성과 미군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북적였다. ⓒ두레방


그녀는 기지촌에서 한 미군을 만났다. 그 미군은 “자신과 함께 미국에 가자”고 했다. 경숙씨는 미군과 결혼한 뒤 한국에서 첫째 딸을 낳았다. 그리고 남편, 아이와 함께 미국 시카고로 건너갔다. 하지만 언어·문화가 완전히 다른 타국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미국 사회에서 느꼈던 그녀의 감정은 이랬다. 

 

“편안하지 않아서, 불안해. 금방 누가 찌를 것 같고. (사람들)눈초리가 살벌해.” 

미국에 건너간 뒤 남편은 외도를 했다.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남편과 갈라섰다. 두 남매는 미국에 놔둬야 했다. 양육권을 얻지 못했다. 경제적 어려움도 컸다. 혼혈인인 자녀들이 한국에 오면 차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다. 결국 남매를 미국에 놓아둔 채 홀로 내쫓기듯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경숙씨처럼 기지촌 여성들이 미군과 국제결혼을 한 뒤 타국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은 빈번했다. 1992년 있었던 ‘송종순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미군과 결혼해 미국에 살던 송씨는 1987년 남편의 구타로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송씨는 아이들을 여관에 놔둔 채 이국땅에서 돈을 벌러 다녔다. 그러던 중 아이가 TV에 깔려 사망하고, 송씨는 이를 자책해 경찰조사에서 “내가 자식을 죽인 에미입니다. 모두 내 탓이에요(My fault)”라고 진술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살인범으로 몰렸다. 

 

“미군이었던 남편이 마약 중독이거나 생활 무능력자, 구타자인 경우가 많다. 사회적 연결망이 전혀 없는 아내의 약점을 잘 아는 미국인 남편들의 학대와 돈을 벌어오라는 강요는 다시 여성들을 매춘으로 몰아넣는다. 대부분 기지촌 여성의 국제결혼은 이혼으로 결말을 맺고 미국에서 이혼당한 한국 여성들은 절대적인 빈곤 상태에 놓이게 된다.”

기지촌 혼혈인 인권을 다룬 다큐멘터리 '있다'. ⓒ두레방


정희진, 《죽어야 사는 여성들의 인권》

 

이처럼 기지촌 여성이 국제결혼을 해 해외에서 꾸린 일부 가정은 깨졌다. 기지촌 여성은 자녀와 ‘생이별’했다.

 

뿐만 아니다. 국내에 계속 살던 기지촌 여성도 자녀와 이별을 택해야 했다. 1950~80년대 기지촌 여성과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아버지 얼굴조차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였다. 다수 미군은 한국의 기지촌 여성과 결혼하거나 결혼을 약속한 뒤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그 이후엔 제대로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 동네(의정부 기지촌)에 혼혈아가 엄청나게 많았어. 걔네(미군)들은 무조건 애기 낳으라 그래. 임신하면 결혼한다고. 그래놓고 1년 있다 (미국)가게 되면 여자 혼자 애기 키우게 되는 거지. 혼혈아 많이 낳다 보니까 (여성이) 빚을 더 지는 거야. 왜냐면 (아기를 키우는)유모비 줘야 되잖아. 2중 3중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지.”

위안부 피해자 김숙자씨(가명) 증언 

기지촌 여성과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들은 미국으로 떠나보냈다. 국내에서는 혼혈인들에 대한 사회적·정책적 차별이 컸기 때문이다. 당시의 사회정서는 혼혈인들을 벼랑으로 내몰았다. 

 

“딸이 아홉 살, 아들이 여덟 살, 내일 모레면(아버지인 미군이 미국으로 떠난 지) 10년인지 9년인지 돼가는 거야. 일곱 살에 학교를 넣었거든.…(중략) 아이들이 언문은 다 깨쳤는데 안 되겠어. ‘할로(미국 사람)는 고추가 크다는데 보자’고 아들이 학교에서 놀림 받으니까. 겨울에 애가 오줌이 마려워도 참는 거야. 그러다가 바지에 싸면 동태처럼 얼어서 다리를 비비 꼬면서 그러고 와. …(중략) 아 그러니 맨날 오줌 싸고 그러고 오는데 참 골치 아파.”

햇살사회복지회, 《햇살할머니들 기억으로 말하기》 

홀트아동복지회에서 해외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 ⓒ연합뉴스


혼혈인 문제에 대한 국가의 첫 대책은 뭐였을까. 바로 ‘해외 입양’이었다. 

 

‘정부는 혼혈 아동을 입양 보내기에만 주력했다. 가족이 있어도 고아가 되어 줄줄이 ‘아버지의 나라’로 떠나야 했다. 출생과 함께 예고된 차별과 편견을 피하기 위한 개인의 처지와 국가의 이해가 맞물려 많은 혼혈 아동들이 국외 입양으로 떠나고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혼혈인 인권 실태조사》

 

기지촌 여성들은 눈물을 머금고 자녀를 외국으로 입양 보냈다. 

 

“송탄 (미군)부대 (입양)담당자가 한국 여자가 애들 보내라 이거여. 지금 8, 9살이면 엄마 알고 있다 이거지. 약속 단단히 하고 보내놓으면 스무 살 되면 다 부모 찾는다 이거여 대부분. 다 만날 수 있으니까 보내라고….” 

햇살사회복지회, 《햇살할머니들 기억으로 말하기》

기지촌 여성, 어머니들은 긴 이별 끝에 자녀와 만났을까. 여성들은 최근에야 하나둘 자녀와 연락이 닿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락이 닿더라도 자녀들은 종종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애들 만나봤어. 10년 전에. 걔들이 자기 아버지하고 나하고 사이 어떻다는 거 알아. 그래도 자기네 떼어버린 것만 원망하지. 옛날에는 전화로 하고, 편지 써서 보내고 서로 했는데….” 

‘미군위안부’ 피해자 신숙희씨(가명) 증언

홀트아동복지회에서 해외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 ⓒ연합뉴스

그럼에도 아직 자녀와 재회하지 못한 기지촌 여성이 많다. 살아서 한 번이라도 자녀를 만나길 기다린다. 취재진이 만난 경숙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최근 딸과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다. 경숙씨의 사연을 알게 된 다큐멘터리 감독이 그녀와 딸을 이어줬다. 내년에 딸을 만나러 간다. 

 

“내년에 만나면 딸한테 어떤 말을 하고 싶으신가요?”

“아프지 말고 건강하라고. 보고 싶었다는 말. 아 미쓔(I’v missed you).”       

■참고문헌

김현선, 김정자.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새움터 기획. 한울아카데미, 2013

김현선, 신영숙. 《미군 위안부 역사 자료집》 새움터. 2014 / 캐서린 H.S. 문. 《동맹 속의 섹스》 삼인, 2002

박정미. 《발전과 섹스: 한국 정부의 성매매 관광정책, 1955-1988년》 한국사회학 48.1 (2014)

김환균, 정길화 외. 《우리들의 현대 침묵사》 해냄출판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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