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이 물러나고 싶어도 물러날 수 없는 이유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8.3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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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8일, 아키히토 일왕의 비디오 메시지가 전파를 탔다. 생전 퇴위를 시사하는 발언을 담고 있었다. 고령이 돼 후대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왕의 모습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하지만 일왕의 이런 자기결정권을 두고 찬성 혹은 반대를 물어야하는 상황이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다.

 

신화의 시대까지 포함하면 일왕의 역사는 2600년 125대에 걸쳐 내려온다고 한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이중 생전에 왕위를 물려주고 물러난 일왕은 58명으로 대략 46.4% 정도, 즉 절반에 가깝다”고 전했다. 생전 퇴위 자체가 아주 새로운 일은 아니며 일왕의 적통에 문제될 만한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가장 마지막 생전 퇴위가 1817년이었다. 고카쿠 일왕이 마지막이었는데, 그 이후 약 200년 동안 이루어진 적이 없던 일이다. 그래서 생전 퇴위가 일본 사회에 어떤 영향을 가지고 올지, 어떤 분위기를 낳을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없다. 뭐든 최초의 사건은 두려운 법이다. 처음과 다름없는 생전 퇴위가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번 일왕의 메시지는 일왕 역시 일본의 헌법에 종속된 존재라는 점을 확인시켜줬다. 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는 기자협회보에서 "비디오 메시지에서 일왕은 한 번도 이 단어(생전 퇴위)를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일본 평화헌법은 일왕의 정치적인 기능을 일체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생전퇴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법률개정은 물론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정치적인 활동이 되기 때문이다. 일왕이 자신의 속내를 에둘러 건강과 고령화 문제로 표현한 것도 이같은 이유다"고 지적했다.

 

8월8일, 아키히토 일왕은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생전 퇴위'를 시사하며 일본 사회에 파장을 낳았다.


생전 퇴위는 왜 그렇게 민감할까. 일왕의 생전 퇴위에 관한 고민은 비교적 최근에도 있었다. 현 아키히토 일왕은 히로히토 쇼와 일왕이 서거한 1989년 1월에 즉위했다. 그의 서거 5년 전인 1984년 당시 80세의 고령인 쇼와 일왕의 생전 퇴위에 관한 물음이 국회에서 논의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야마모토 사토루 궁내청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생전 퇴위를 둘러싼 세 가지 문제점을 언급했다.

 

하나는 상왕이 생긴다는 점. 만약 생전 퇴위가 이뤄지면 새 일왕이 탄생하고 물러난 부친은 상왕이 되는데, 자칫 일왕 이상의 영향력을 불러올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둘째는 생전 퇴위를 인정하게 되면 오히려 일왕의 자리가 외압에 시달릴 우려가 생길 개연성이 있다는 점이다. 일왕 스스로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외부세력에 의해 물러날 수도 있다.

 

셋째는 생전 퇴위가 왕위의 안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어서다. 일왕은 상당히 많은 제약을 받는다. 일본 국적을 포기해서도 안 되며 따라서 해외 거주의 자유도 없는 것과 다름없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도 안 된다. 왕이지만 법이나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할 수도 없다. 안 되는 것들이 많은 자리이기에 만약 "나 왕 그만 두겠다"고 할 경우 왕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생전 퇴위를 인정하게 되면 절차도 바꿔야 한다. 평화헌법과 왕실전범의 개정이 필요하다. 그동안 일본의 왕위 계승은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왕실전범에 따랐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뒤 1946년 7월 일본 국회 임시법제조사위원회 소위원회에서는 새롭게 만들어야 할 왕실전범에 생전 퇴위에 관한 조항을 넣어야 하는지를 두고 논의가 벌어졌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일왕이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에 전쟁 책임을 추궁당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왕실전범에 생전 퇴위를 인정할 경우 "왕에서 물러나 전쟁의 책임을 지겠다"는 식의 상황을 막지 못한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래서 당시 궁내청을 중심으로 생전 퇴위 도입을 강하게 반대했다.

 

막상 맥아더 장군을 중심으로 한 GHQ도 생전 퇴위에 반대하는 기류가 강했다. 여전히 일본 국민에 영향력이 강한 일왕이 자리에서 물러난 뒤 '전직 일왕'의 자격으로 정치 활동에 나설 가능성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1947년 5월3일 새로운 일본 평화헌법과 새로운 왕실전범이 동시에 시행됐다. 이후 일왕은 일본의 상징으로만 존재했다. 이전에는 강력한 통치권을 가진 ‘인간 이상의 존재’였다면 이때부터는 ‘인간’으로 국민 사이에 존재했다.

 

일부는 헌법 개정까지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일본 평화헌법 제2조는 '왕위는 세습이며 국회가 의결한 왕실전범이 정하는 바에 따라 승계한다'고 규정돼 있다. 헌법 조문에서 '세습'만을 조건으로 내걸었을 뿐 계승되는 계기나 시기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왕실전범 개정만 해도 충분하다는 얘기다. 왕실전범은 다른 법률과 동일한 절차로 개정이 가능하다. 국회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과반수 의원의 찬성을 얻으면 된다.

 

일왕이 물러날 경우 왕위를 물려받을 나루히토 왕세자는 1960년 생으로 56세다. 다른 사람이 정년퇴직할 나이에 새로운 중임을 맡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그 뒤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아들이 없고 딸 아이코 공주(15) 한 명 뿐이다. 왕실전범은 왕위 계승자를 남자로만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나루히토의 동생인 후미히토의 아들인 히사히토(10)가 1순위가 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이왕 개정 논의가 나왔을 때 '여성 일왕' 문제까지 도마에 올리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생전 퇴위 하나로 시작된 논의거리는 이처럼 많다보니 물러나고 싶어도 물러날 수 없는 일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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