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이인원 롯데 부회장과 금복주
  •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31 17: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기업은 왜 젊은이들에게 헬조선의 상징이 됐나

지난주 재계에서 벌어진 가장 큰 이슈는 단언컨대 롯데그룹 2인자인 이인원 부회장의 자살이었다. 그리고 이인원 부회장의 자살로 다소 묻힌 감이 있지만 금복주가 무려 60년간 유지해온 남녀차별 관행 소식은 취업문제로 고심하고 있는 대부분의 여성 취업준비생과 대학생에게는 충격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두 사례 모두 국내 기업이 왜 많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되지 못하고 헬조선으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보여준 가장 극명한 케이스임에는 틀림없다.

 

최근 많은 분들이 젊은이들의 도전정신 부족, 안정된 삶만을 추구하는 자세를 안타깝게 여기거나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과거에는 내가 소속된 조직을 위해, 크게는 조국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들 의대 입학, 로스쿨 진학, 공기업 입사, 공무원 시험 준비 등 안정된 자리만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기업가정신을 독려하기 위해 해외 선진국 대비 국내 창업 비중의 문제점을 강조한 기사도 지난 2~3년간 언론을 도배했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이 젊은이들에게 왜 희망이 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누구도 말이 없다.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 사례부터 먼저 살펴보자. 그는 1973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43년간 롯데라는 한 우물에서 근무했다. 가히 모든 직장인들의 롤 모델로 불릴 만큼 오랜 기간 재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생활을 43년 동안 한다는 건 모든 직업을 망라해도 거의 손가락 안에 꼽힐만한 드문 기록이다. 아울러, 그는 롯데그룹의 실질적 헤드쿼터인 정책본부를 10년째 수장으로 이끌어왔다. 재계 2인자로 그리고 총수의 최측근으로 10년 동안 자리를 유지한 건, 전체 30대 그룹을 통틀어서도 그가 유일하다. 과거 12년간 이병철 회장을 보좌한 소병해 전 삼성 비서실장, 이건희 회장의 오른팔 이학수 부회장과 비견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


속칭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재계 부회장 자리에 오르는 건, 그 어떤 일보다 어려운 일이다. 수만 명의 경쟁자를 물리쳐야 하고 집과 가정을 사실상 포기해야 할 정도로 기업에 모든 열정을 다해야 그 힘든 자리에 도달할 수 있다. 실제로 이인원 부회장이 롯데 정책본부장으로서 얼마나 대단한 위세를 떨쳤는지에 대해서는 롯데그룹 임직원뿐만 아니라 동종업계에서 그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꼼꼼하고 치밀한 일처리, 정확한 업무 파악 능력은 최고 중의 최고라는 말이 경쟁 기업의 귀에 들릴 정도였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끝없이 인내해야 하고 그룹 총수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재직 기간 내내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 재계 2인자의 숙명이다.

 

참고로, 필자가 일부 지인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재계 총수 및 회장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한 과업 지시를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애매모호한 메시지를 던지고 메시지에 담긴 속뜻과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사람에게 승진과 보상을 주면서 끊임없이 충성 경쟁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회장의 모호한 메시지의 의도와 속뜻을 정확히 파악하는 사람이 승승장구하고 언론에 오너의 ‘의중(意中)’을 가장 잘 파악하는 인물로 오르내리게 된다. 이렇게 희한한 국내 기업의 승진 방정식은 결과적으로 능력 있고 소신 있는 전문경영인보다 회장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지침을 잘 실행하는 경영인만 육성해내고 있다.

 

필자가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의 입사 희망 우선순위에 국내 대기업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다. 안정적인 공기업 입사, 공무원 시험 준비, 외국계 기업 입사를 제일 먼저 선호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국내 기업의 경직된 경쟁 문화와 자율성과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없는 업무 환경 때문이다. 20년 전 IMF 때 수많은 우리의 아버지들이 비참하게 해고되는 것을 목도(目睹)했고, 지금도 승진을 위해서는 눈치 보기 야근을 해야 한다. 소신 있는 목소리보다 노예(?) 마인드에 보다 충실하게 임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 국내 기업의 현실이다. 소신과 용기를 갖고 직언을 해서 승승장구하는 스토리는 오직 드라마에만 존재한다. 실제로 자신의 상사에게, 자신이 모시는 임원에게 직언을 했다가 하루아침에 짐을 싸고 떠난 임원 및 간부를 필자는 직간접적으로 숱하게 목격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재계 2인자가 되기 위해 소신을 저버리고 말 못할 스트레스를 받으며 수십 년간 노력하겠다는 젊은이가 과연 누가 있을까.

 

이 와중에 중견기업 금복주에서 60년간 이어져온 ‘결혼한 여직원은 회사를 나가야 한다’는 성차별적 고용관행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2016년인 지금 아직도 1956년식 조직문화 및 관행을 유지해온 금복주의 고집스러운 전통(?)은 충격 그 이상이었다. 참고로, 금복주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주류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지역 강소기업으로 여전히 지역 대학에 재학하는 학생들에게는 괜찮은 이미지로 기억돼 온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주류 기업 문화가 남성 위주라고 해도 이 정도로 비상식일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문제는 이 관행이 일시적으로 발생된 것이 아니라 무려 60년간 이어져 왔다는 점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금복주에 재직 중인 임직원들이 이런 낡은 관행이 갖는 문제의 심각성을 몰랐을 리 없다. 그리고 누군가는 시대착오적 관행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해당 문제를 소신 있게 거론했다가 그날로 밀려나는 조직문화 및 관리방식이 분명히 존재했기에 그 누구도 감히(?) 해당 문제의 심각성을 당당하게 회장에게 제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녀차별 관행이 60년간 이어져온 건 통제와 감시의 조직문화가 여전히 금복주의 경영방식에 강력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미 교과서에는 통제와 감시가 아니라 자율성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조직이 변화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은 아직도 통제와 감시를 선호하는 경영자들이 부지기수이다. 교과서와 현실이 다른 이유이다.

 

국내에 희망이 없기에 해외로 취업을 떠나는 대학생들의 ‘잡노마드(Job Nomad)’ 현상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가 연일 언론을 통해 쏟아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국내 기업을 바라보고 느낀 점은 한결 같다. 디자이너를 선발하는데 토익만 살펴본다거나 회식을 빠지면 평가에서 불이익을 준다거나 직언보다 상사의 말을 잘 듣고 실행하는 직원을 좋아한다는 점 등은 수십 년이 지나도 국내 기업의 특성으로 변함없이 손꼽히고 있다. 지금도 ‘구성원’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부하직원’이라는 용어를 일상처럼 쓰는 리더가 많다. 무더운 여름, 반바지 착용 출퇴근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 반바지를 입고 온 직원에게 눈치를 주는 리더 역시 숱하게 많다. 유연성과 자율성,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한 글로벌 기업 사례는 여전히 우리에게는 먼 나라 얘기와도 같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은 기업의 성패는 전략이 아닌 문화에서 결정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전략을 수립해도 통제와 감시, 명령과 복종만 강조하는 조직 내에서 유능한 인재는 언제든지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조직으로 떠난다는 것이다. 해외 기업들이 저마다 유연문화, 수평문화를 강조하는 건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국내 기업의 잠재력을 평가하는 시가총액이 낮은 이유 역시 국내 기업의 시대착오적인 조직문화 및 조직관리 방식이 한 몫 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최근 개그맨 유상무 회사라고 알려진 ST 기획이 채용 공고문에 ‘야근해도 화를 내지 않고 월급을 자진삭감하고 회사에서 잘 수 있는 사람’을 우대한다는 공고를 내 논란을 일으켰다. 젊은이들이 국내 기업을 헬조선의 일부라고 보는 이유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