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져버린 르노삼성과 한국GM
  • 배동주 시사저널e.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01 10:00
  • 호수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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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중형차 시장 평정하겠다던 ‘SM6’와 신형 ‘말리부’,‘시동 꺼짐’ 중대 결함 제보 잇따라

르노삼성과 한국GM이 ‘SM6’와 신형 ‘말리부’를 내세워 국내 중형차 시장 지각변동을 꾀했으나, 예상치 못한 난관에 직면했다. 두 업체가 신차 출시 당시 강조한 차량 품질 향상 주장이 ‘엔진 시동 꺼짐’ 현상 탓에 의심받고 있다. 르노삼성의 SM6 LPG 모델과 한국GM의 말리부 1.5 터보 모델에서 주행 중 시동이 꺼지는 중대 결함이 발생한다는 제보가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SM6에 차별화한 고품질과 특유의 감성 품질을 담았다”는 프랑수아 프로보 르노삼성 사장의 품질 제일주의는 차량 엔진 멈춤과 동시에 휘발되는 조짐이다. SM6는 지난 7월 국내 출시 5개월 만에 기어봉 결함으로 무상 수리를 진행한 데 이어 시동 꺼짐이라는 중대 결함 논란에 휩싸인 형국이다. 쏘나타가 지난 반세기 동안 군림해 온 국내 중형차 시장을 월등한 차량 품질로 공략하겠다고 밝힌 한국GM의 호언도 차량 시동 꺼짐 현상과 함께 힘을 잃고 있다. 신형 말리부 1.5터보 모델 중 상당수에서 기어 변경 이후 가속페달을 밟는 과정에서 힘없이 시동이 꺼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GM, 한 달 새 시동 꺼짐 신고 16건 접수 

 

국토교통부 교통안전공단 자동차리콜센터에는 7월30일부터 8월25일까지 약 한 달 사이 신형 말리부 시동 꺼짐 신고가 16건 접수됐다. 이틀에 한 번꼴로 시동 꺼짐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GM은 이 같은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GM 관계자는 “사내 연구소에 시동이 꺼진다는 신고가 들어오긴 했는데 신고 사유가 일정하지 않아 본사에 알리지 않은 듯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신형 말리부에서 나타나는 시동 꺼짐 현상 대부분이 내리막길 주차 시 후진(R) 변속 과정에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신형 말리부를 운전하는 직장인 박아무개씨(서울 거주)는 8월17일 차량 후진 중 시동이 꺼지는 현상을 겪었다. 박씨는 “언덕에 주차하기 위해 후진으로 변속한 뒤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자마자 시동이 꺼졌다”며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페달이 뻑뻑해지고 더 밟히지 않았다. 인도에 있는 턱에 바퀴가 걸린 덕에 겨우 차량이 멈췄다”고 말했다. 지방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아무개씨도 같은 현상을 겪었다. 김씨는 “후진으로 기어를 넣고 가속페달을 밟자마자 시동이 꺼졌다”고 밝혔다. 그는 곧장 정비사업소를 방문해 차량 점검을 받았지만 “차량 결함을 확인하는 정비 스캐너 확인 결과 문제가 없으니 우선 돌아가시라”는 말만 듣고 돌아왔다. 김씨는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주행 중 시동 꺼짐 현상은 안전과 직결되는 중대 사안이다. 방향을 조종하는 조향 장치인 스티어링 휠이 잠겨 운전대를 돌리기가 쉽지 않은 데다 브레이크 유압 전달이 제한돼 제동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 명장 1호인 박병일 명장은 “엔진 시동이 한 번에 꺼지는 경우 대부분이 제어장치 쪽에서 결함이 발생한 사안”이라며 “이상 현상이 3~4초 동안 지속하지 않는 이상 자가진단 스캐너로 이것을 확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제조사가 차량 전체 무상 수리나 리콜 대책을 하루빨리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시동 꺼짐’ 현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GM의 신형 ‘말리부’(왼쪽)와 르노삼성의 ‘SM6’


르노삼성, 시동 꺼짐에 “원인 모른다” 답변만

 

한국GM의 신형 말리부에 앞서 르노삼성의 SM6 LPG 모델의 품질 논란이 먼저 제기됐다. 시작은 지난 3월이었다. SM6 인터넷 동호회 결함신고 게시판에 ‘LPG 모델 주행 중 시동이 꺼졌다’는 글이 올라오자 곧 수십 명이 같은 문제를 호소하는 댓글을 달았다. 차주들이 겪은 경험은 유사했다. 신호대기 상황이나 주행 중 갑자기 차량 시동이 꺼졌다는 것이다. 이들 모두 르노삼성 사업소에 차량을 입고시켰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으니 그냥 타라”였다. 지난 6월 주행 중 시동이 꺼져 사업소를 찾은 강진명씨는 “사업소에선 점검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만 말했다”면서 “차량 10대를 만들면 그중 몇 대는 이상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으니 그냥 타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동 꺼짐 현상은 생명이 걸린 문제”라며 “너무 화가 나 1인 시위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르노삼성이 품질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브랜드 전 차종 판매에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특히 SM6와 신형 말리부는 해외 시장에서 사전 검증을 마친 뒤 국내에서 출시한 덕에 품질이 탁월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 차량이다. SM6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지난해 처음 공개한 중형차 탈리스만과 같은 모델로, 르노닛산의 글로벌 전략 차종이다. 한국GM은 미국에서 먼저 출시한 9세대 완전변경 모델을 가져와 국내 시장에 내놓았다.

 

오로지 국내에서만 시동 꺼짐 현상이 나타나자 국내 생산 차량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커지고 있다. 신형 말리부가 대표 사례다. 한국GM은 국내 시장에 신형 말리부 1.5 터보와 2.0 터보 모델을 각각 선보였다. 시동 꺼짐 현상은 1.5 터보 모델에서 자주 일어난다. 1.5엔진은 창원공장에서 생산하지만, 2.0엔진은 미국에서 전량 수입한다. 국내 소비자 사이에선 “우수한 품질에 대한 광고는 먼 나라 이야기”라는 냉소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인천에 사는 직장인 장원석씨는 “SM6와 말리부 중 하나를 사려고 했지만 이제는 뭘 사야 할지 모르겠다”며 “시동 꺼짐 현상을 듣자마자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특정 차종에서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면 간과하고 넘어가선 안 된다. 기업이 직접 나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행 중 시동이 꺼지는 중대 결함은 즉각 판매량 감소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지난 5월 7901대를 판매하며 국내 중형차 시장 1위로 훌쩍 뛰어올랐던 르노삼성의 SM6는 지난 7월 3위로 곤두박질쳤다. 5월18일 시판 이후 가파른 판매 상승세를 이어온 한국GM의 신형 말리부도 지난 7월 현대차의 쏘나타 판매량을 넘어서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르노삼성과 한국GM 양사 모두 부랴부랴 결함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SM6 LPG 모델의 시동 꺼짐 현상이 불거진 뒤에도 “결함이 아니다”며 부정해 온 르노삼성은 최근 품질관리 부서를 통해 자체적인 검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문제 원인을 어느 정도 찾아낸 상태”라며 “회사 차원에서 여러 가능성을 두고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GM 관계자는 “시동 꺼짐 현상은 안정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소비자 불만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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