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상상력 어른의 ‘동심’ 깨우다
  • 이규석 일본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06 11:18
  • 호수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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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위대한 영화’ 4위 오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8월23일 영국 BBC는,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5)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년)을 ‘21세기의 위대한 영화 100선’ 중 4위로 선정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10세의 소녀 오기노 치히로(荻野千尋)를 통해 ‘인간 세계’의 습속과 ‘신(神) 세계’의 판타지를 병렬적으로 공존시키며, 근대사회의 인간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 했던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아버지의 낙향 길에, 치히로 일가는 호기심에서 터널 저편에 있는 ‘이상한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그곳은 인간들의 세계와는 분리된, 800만에 달하는 가지각색의 신(神)들이 살고 있는, 열심히 진지하게 일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세계였다. 여기서 치히로의 양친 오기노 아키오와 오기노 유코는 어느 음식점에 들러 함부로 음식을 포식한 덕분에 신들 세계의 룰에 따라 돼지로 변신하게 된다. 치히로도 이름을 치히로(千尋)에서 센(千)으로 ‘강제개명’ 당하며 노(老)마녀와 여러 악마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나 어린 소녀 치히로의 놀라운 용기와 헌신과 생존력으로 신들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굴복시키며 치히로라는 이름을 회복하고 양친을 사람의 모습으로 복귀시켜 일가가 ‘인간 세계’로 넘어오는 휴먼 스토리다. 이 애니메이션의 원제목인《千と千尋の神隱し(Spirited Away)》는 신들 세계의 영역을 넘나든다고 하는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인간의 욕망과 탐욕 그리고 죄와 벌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큰 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에서 지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비결은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유럽과 미국에서는 자국(自國)의 전통적인 사고와 습속과 문화를 작품 속에서 얼마나 잘 녹여 냈는가를 심사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일본 고유의 전통과 사상, 종교의식을 고스란히 담아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서구의 입장에서 보면 신선했을 것이다. 

 

둘째, 분명 이 애니메이션은 신학적이고 종교적인 테마이자 인류 공통의 테마인 인간의 욕망과 탐욕, 거기에 수반되는 죄와 벌,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인의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치히로의 양친이 무전(無錢) 포식해 돼지가 되는 ‘벌’을 받았고, 치히로의 천신만고 노력 끝에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셋째, 결코 어려운 소재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겪을 수 있는 ‘꼬맹이’들의 소재를 휴머니즘에 입각해 알기 쉽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는 평가다. 미야자키는 어른들까지 추억에 잠길 수 있게 하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릴 때 누구나 꿈꾸었을 소박하고 사소한 일들을 휴머니즘에 기초한 작품 속에 녹여, 누구든 위화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일상 속에서 다 찾을 수 있는 ‘꼬맹이’들의 소재로, 어른들까지 추억에 잠길 수 있게, 어른들 마음 한구석의 허전함까지 채워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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