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탄 속에서도 축구는 계속 된다”...시리아 축구의 질긴 생명력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9.0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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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축구 때문에 힘들었다. AFC(아시아축구연맹)가 대륙을 대표해 어떤 팀이 월드컵에 나갔으면 좋을지 잘 생각했으면 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안티풋볼’을 거론하며 시리아 대표팀의 지연 전술을 비판했다. 물론 인터뷰 말미에 “득점하지 못한 건 우리 대표팀 탓”이란 말을 덧붙였지만 말이다.

 

시리아는 약했지만 또 강했다. 점유율은 한국에 압도적으로 밀렸지만 번뜩이는 역습을 했고, 수비진은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우리 공격진에게 이렇다 할 찬스를 허용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을 ‘침대 축구’라고 비판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지연 전술’이라고 말했고 분명 효과적이었다. 

 

“강한 팀인 한국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했다. 팀으로서는 한국 같은 강팀을 상대하려면 시간을 지연시키는 부분도 필요하다. 이 역시 축구의 전술 중 하나다.” (아이만 하킴 시리아 감독)

특히 ‘좋은 결과를 내야한다’는 멘탈이 강했다.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지지는 않겠다는 팀 정신이 경기 내내 운동장에서 느껴졌다. “내전에 지친 시리아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겠다.” 한국전을 앞두고 이들이 던진 출사표였다. 

 

 

시리아 대표팀의 아이만 하킴 감독은

시리아 대표팀의 아이만 하킴 감독은 "지연 전술도 강팀를 상대할 경우 축구 전술의 하나"라며 침대 축구라는 세간의 평가를 일축했다. ⓒ연합뉴스

 

시리아 대표팀이 시리아 땅에서 국민들의 성원 속에 마지막으로 경기를 한 때가 2010년 12월의 일이다. 내전과 IS(이슬람국가)의 등장으로 생존이 위협받게 되고, 그 이후부터는 도처를 방랑하며 홈경기도 마치 원정경기처럼 중립국에서 치러야 했다. 이번에 말레이시아에서 벌어진 한국전도 원래는 시리아의 홈경기였다.

 

한국 대표팀의 경기력 비판은 잠깐 접어두자. 유럽을 곤란한 지경에 만든 난민의 상당수는 시리아인들이다. 마치 대탈주극처럼 국민들이 국외로 탈출하고 있는 곳이다. 어찌보면 전쟁 중인 시리아가 월드컵 도전을, 그것도 다른 나라들을 누르고 최종예선을 현재 치르고 있다는 그 자체가 더욱 신기한 일이 아닐까. 

 

시리아 축구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시리아라는 나라는 꽤나 유명해졌다. 아사드 정부와 반군과의 대립이 내전으로 확장됐다. 여기에 주변 아랍국가가 개입하고 미국과 러시아까지 시리아를 두고 외교적으로 충돌했다. 설상가상으로 IS가 시리아 영토의 상당부분을 잠식한 상태다. 

 

이처럼 전혀 축구를 할 수 없을 것 같은 곳이 시리아지만 선수들은 여전히 축구를 계속하고 있다. 시리아가 아닌 타국에서 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의외로 국내파가 많다. 대부분 시리아 프로팀에서 뛰고 있다. 한국전에서 각종 부상으로 경기를 지연시키며 악역을 맡았던 시리아 골키퍼 이브라힘 알마는 시리아의 알-와흐다에서 뛰고 있다. 스트라이커로 나선 크리빈 오마르(알-다프라, UAE)처럼 인접국에서 뛰는 선수도 있지만 알-와흐다, 알-자이시, 자호 등 시리아 프로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도 이번 대표팀에 포함됐다. 다시 말해 총탄과 포탄으로 국토는 황폐해지고 있고, 포로를 참수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극성을 부려 어떻게든 시리아가 국내 축구리그를 꾸려가고 있다는 얘기다. 

 

시리아와 2차 예선에서 맞붙었던 일본 언론들은 시리아의 국내리그에 관해 이렇게 전하고 있다. "국내리그는 규모를 줄여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종종 중단하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 경기는 그나마 안전하게 여겨지는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열린다. 유력 선수들은 카타르나 아랍에미리트 등 해외로 나가 경기를 뛰고 있는데, 특히 내전이 시작된 이후부터 선수들의 이적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시리아 대표팀 내 적지 않은 수의 선수들은 내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시리아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 하고 있다. ⓒ 연합뉴스

 

BBC의 보도에 따르면, 시리아 축구협회는 경찰이나 군에서 보유하고 있던 프로팀을 민영화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시리아 리그의 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TV중계권을 유치하기로 한 결정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아마 시리아 대표팀 입장에서는 당연히 치러야 할 A매치를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점이 곤혹스러웠을 거다. 재정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선수 소집이 쉽지 않다보니 대표팀을 담금질할 수 있는 친선 경기조차 잡기란 쉽지 않았다. 2차 예선까지 감독을 맡았던 파이르 이브라힘 감독은 “적지 않은 시리아 선수들이 해외에서 프로선수로 뛰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팀에 추가하는 것도 쉽지 않고 국제축구연맹(FIFA)의 A매치데이 때도 친선 경기를 짤 수가 없다. 물론 AFC가 아시아 각국 축구협회에 시리아와의 친선전 개최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긴 한다"고 말했다. 

 

때로는 전쟁의 잔혹함에 선수들이 영향을 받기도 했다. 공습으로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는 선수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황폐한 전장에서 볼을 쫓으며 축구를 계속하려는 선수들은 있었다. 그런 선수들이 모인 팀이 한국대표팀이 상대한 시리아 대표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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