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이 만만한가?
  •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08 18:10
  • 호수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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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국회 첫날인 9월1일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가 화근이 돼 급기야 새누리당 의원들이 의장실로 몰려가 사퇴를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20대 국회 원(院)구성 논의 초기에 새누리당은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여당이니만큼 국회의장직을 새누리당에서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무산됐지만 논리적으로도 전혀 타당성이 없는 요구였다.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에 권력의 분립과 견제가 기본인 대통령제 국가에서 여당이기 때문에 국회의장직을 가져가야 한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었다.

 

한국 정치에서 국회의장직은 독특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권위주의 시절에 여당이 지배한 국회에서 수장인 국회의장은 실질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했다. 따라서 국회의장은 국회의 권위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여당이 국회에서 대통령의 의지를 관철시키도록 조력하는 위상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들의 정상적 국회를 위한 고민과 노력은 국회운영의 변화에 공헌한 바가 크다. 대표적으로 16대 국회 전반기 이만섭 국회의장은 여당이 요구하는 날치기 통과를 거부함으로써 졸속입법을 막는 전통을 세웠다. 그리고 지난 19대 후반기 정의화 국회의장은 청와대가 요구하는 노동 5법 등 쟁점법안에 대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거부함으로써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다. 

 

정세균 국회의장 ⓒ 시사저널 박은숙


국회법 20조2항은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의장은 국회를 공정하게 유지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의장으로 당선된 다음 날부터 의장직에 있는 동안은 당적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규정이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평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오히려 국회의장은 늘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의장의 출신 정당은 국회의장이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상대 정당은 늘 의장의 편향적 국회운영을 의심한다. 역대 국회의장 27명 가운데 15명이 사퇴촉구 결의안의 대상이 됐다.

 

국회를 중립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국회의장의 권한이 강화되고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한국 국회에서 국회의장의 권한은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그 이유는 모든 정당들이 국회의장이 중립적이지 않고 자신들과 반대되는 입장을 취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조건을 엄격하게 규정한 것도 국회의장이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입장을 취하는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국회의장이 자신들의 입장과 다를 때 이를 비난하고 사퇴요구까지 벌어지는 사태는 변함이 없다. 국회 개회사에서 정세균 의장처럼 민감한 정치현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례적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새누리당이 의장에게 유감을 표명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의장실까지 점거하면서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새로 시작하는 20대 국회 운영에 나쁜 관례로 남을 것이다. 국회의장의 중립성 보장은 국회의장의 권위를 존중하고 신뢰할 때 가능한 것이다. 중립성이라는 말은 나에게 이득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좀 더 장기적 안목을 키워야 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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