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번의 탑승, 0번의 바가지‘ 외국인 관광객인 척 택시를 타봤다
  • 김헬렌 인턴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1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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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외국인 대상 택시 부당요금 현장 취재해보니...

“헬로, 경복 팔라스 플리즈”

인사동 문화의 거리에서 택시를 탔다. 그리고 영어로 목적지를 말했다. 기사 아저씨는 기자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떨떠름하게 경복궁을 향해 출발했다. 조용히 지도 앱을 켰다. 경복궁으로 제대로 가는지, 예상 택시요금은 얼마인지 확인하려고 하는 찰나 기사 아저씨가 말을 건넨다.

 

“경복궁 맞지?”

아무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 흠칫했다. 나는 오늘 외국인이다. 한국말을 몰라야 한다. 당황한 표정을 애써 지우고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을 지으며 백미러로 기사 아저씨와 눈을 마주쳤다.

 

“웨얼 아유 프롬, 캔 유 스픽 코리안?” 기사 아저씨가 영어로 물어온다. 아는 한국어라고는 ‘안녕’밖에 없고 영국에서 왔다고 조그맣게 말했다. 순간 아차 싶었다. 검은머리의 영국인이라니. 원래 나는 “싱가포르에서 왔다”고 대답해야 했다. ‘들킨 건가?’ ‘내려야 하나?’ 패닉이 왔다. 

 

기사님이 또 공격해 왔다. “유어 마더 파더 코리안?” 

아무래도 전형적인 한국인으로 보였나보다. 그래서 “어머니가 중국인이다”고 대답했다. 그 이후로 아저씨는 아주 친절하게 ‘지름길’로 가시며 나를 경복궁에 내려주셨다. 비용은? 기본요금 3000원이 나왔다. 멀어져가는 택시의 뒷모습을 바라본 뒤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죄송하다”고. 

 

 

이태원에서 외국인 승객들이 택시에 승하차 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외국인 바가지 씌우는 택시 극소수

 

어느 날의 아이템 회의. 여러 취재할 만한 아이템들을 던졌는데 그중 선배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건 이거였다. 

 

“외국인에게 택시가 바가지를 씌운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직접 체험기를 써보면 어떨까?”

외국인 관광객 1400만 명 시대가 왔다고 한다. 2015년을 기준으로 삼으면 10년 새 한국에 오는 관광객 수가 120%나 늘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2018년은 아예 ‘한국 방문의 해’가 됐다. 

 

하지만 어느 나라든 외국인 관광객들이 맞는 첫 난관은? 택시다. 공항에서 내리는 순간 맞이하는 기사와의 눈치싸움,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되는 바가지요금. 이런 ‘작은 것’에 실망하고 여행 전체가 꼬이기 마련이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언론과 SNS에서는 외국인 손님을 대상으로 한 택시의 부당요금 청구가 이슈로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런 기사들이 쏟아지는데, 그럼 이게 사실인지, 얼마나 많이들 그러는지 알아보자는 이야기에 선배들은 ‘혹’했다. 그리고 곧장 어떻게 외국인처럼 보이게 할 것인지 토론이 시작됐다. “교포화장을 해야 한다” “목에 카메라 걸고 힙쌕을 차야 한다” “관광객은 민소매에 선글라스가 짱이다” 등등.

 

회의는 즐겁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막상 나는 전혀 웃을 수가 없었다. 외국인 코스프레는 내 몫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영어를 잘 할 줄 아는 인턴’이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 온 관광객’이라는 새로운 역할이 주어졌다.

 

택시를 타기로 한 날 아침, 도저히 민소매를 입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청바지에 검은 상의를 입고 평소에 잘 하지 않는 화장을 했다. 마무리로 목에 카메라를 건 채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는 첫 장소는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로 정했다. 

 

외국인 코스프레 완성의 관광지도다. DDP 안내센터에서 영어로 된 서울 관광지도와 가이드북을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혹시 몰라 안내 직원에게 물었다, “택시 바가지요금 예방에 대한 팜플렛이 있나요?” 직원은 택시 요금제 안내 팸플릿을 건네며 “바가지요금에 대한 문의는 처음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가지 요금 거의 없어요. 택시기사 아저씨들이 안 그러는데 몇 번 걸리는 게 엄청 크게 (언론에) 나오는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문득 불안해졌다. ‘바가지를 당해야 기사가 나갈 텐데...’ 

 

처음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기본요금으로 경복궁에 온 허무함을 뒤로 하고 다시 경복궁에서 덕수궁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두 번째 택시에서 만난 기사 아저씨는 “하이, 덕수궁 플리즈”라고 알려드리자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묵묵히 운전만 하시더니 덕수궁에 도착해서야 처음 입을 뗐다. “덕수궁.” 미터기에 나온 3300원을 조용히 내고 아저씨를 보내드렸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택시를 타고 내리기가 반복될수록 바가지를 씌울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기사 아저씨들을 보며 점점 당황했다. 동대문과 남대문 시장, 북촌 한옥마을, 창덕궁을 오가며 타는데, 100원이라도 더 받으려는 기사 아저씨를 만나지 못했다. 오히려 100원을 빼주는 친절을 받았다.  

 

인턴기자는 택시요금 100원을 할인받았다. ⓒ 시사저널 김헬렌

 

“사기당하면 싸우고 와라” “위험하지 않게 잘 하고 와야 한다”

선배들은 당연히 내가 바가지를 쓸 거라고 생각하며 격려해줬다. 그네들의 기대에 찬 눈빛이 떠올라 도저히 이렇게 끝낼 수가 없었다.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택시를 탔다. “김포 에어포트 플리즈!” 김포공항이 아닌 인천공항을 갔어야 했던 걸까. 2만1900원. 정직한 요금을 냈다.

 

‘그래, 이게 정말 마지막이야.’ 김포공항에서 강남역을 가기로 했다. 택시를 탔다. 에어컨을 쐬며 쾌적하게 강남에 도착했다. 미터기에 찍힌 요금은 2만2900원. 5만원을 내자 기사 아저씨가 잔돈을 두둑하게 쥐어준다. “해브 어 나이스 트립~” 말갛게 웃어주시고는 떠났다. 

 

1000원짜리가 가득한 내 손. ‘드디어 사기를 당한 걸까?’ 천천히 세어보았다. 5000원 두 장, 1000원 17장과 100원 동전 하나. 2만7100원. 정확한 잔돈에 기대감은 무너졌다. ‘이럴 거면 그냥 만원짜리로 주시지!!!’ 두둑한 돈다발이 원망스러웠다.

 

“인터넷이 잘 돼서 요즘은 외국인도 길을 다 알아”

“외국인 바가지요금? 거의 없지. 극소수야” 

다시 탄 기사 아저씨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바가지요금이 거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은 블랙박스에 녹음도 다 되고, 택시 경로도 택시회사에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부당요금을 청구하면 바로 걸려요.” 아저씨는 한탄했다. “한두 명이 꼭 그런 짓을 한단 말이야. 그러면 전체가 매도되는 거지.”

 

또 다른 택시에 올라 물었다. “공항을 전문적으로 뛰는 기사들이 있는데 그중 소수가 그런다.” 서울 시내에서는 바가지 씌우는 사람들이 없고, 설혹 있다고 해도 요즘은 카드 계산이 많아 신고하면 바로 걸린다고 했다. “인터넷이 잘 되어 있어서 요즘은 외국인도 (길을) 다 알아. 걸리면 수십만 원씩 벌금을 물어야 해.”

 

명동에 있는 관광경찰서를 찾았다. 택시 바가지요금과 관련한 사례가 많은지 물었다. 경찰관은 “바가지 요금과 관련해서는 잘 없다”라고 답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부당요금을 청구하겠다는 계획은 예상과 다른 현장 덕분에 의도대로 되지 못했다. 그러나 수확은 있었다. 기사 아저씨들은 친절했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빠른 길을 택했다. 기사 욕심은 사라졌지만 대신 따듯한 충족감이 채워졌다. ‘이 세상은 아직 아름답구나.’ 

 

한 인턴기자의 싱가포르 여행객인 척 한 체험기의 결과는 이렇게 정리된다. 

 

16번의 택시 탑승, 그리고 0번의 바가지 요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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