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불평등 보고서] 세 살 ‘가난’이 여든까지 가는 세상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9.1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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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재단 보고서《기회불평등 2016》-③

홍영순(가명․76) 할머니는 더 이상 명절을 기다리지 않는다. 홍 할머니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 아들 가족이 명절 때 찾아오지 않은 지 벌써 5년째가 됐다. 처음에는 서운했다. 하지만 3년 전, 아들이 회사에서 해고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또 지인에게 아들 내외가 별거 중이라는 말도 들었다. "걔들도 나한테 말은 안하지만 참 어렵게 살 거야”라는 홍 할머니다. 

 

홍 할머니도 풍족하게 사는 건 아니다. 경기도 소도시의 작은 월세방에서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며 산다. 홍 할머니는 “나도 어렸을 때 정말 못 먹고 못 입고 살았는데, 그 때는 앞으로 나아지고 자식들도 나보단 잘될 거라는 생각이라도 있었지. 한 때는 장사하면서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결국엔 나도 근근이 살아. 우리 애 어렵게 사는 걸 보니까 운명이 정해져 있나 싶어”라고 말했다. 

 

© 일러스트 김세중


동그라미 재단의 《기회불평등2016》보고서를 보면 중장년․노년층에게 ‘기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중장년층이 ‘기회의 불평등’을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은 자녀를 키우며 해줄 수 있는 물적 지원에서다. 만 40~59세 중장년 층 988명을 조사한 결과, 월소득 600만원 초과의 가정은 74%가 한 달에 60만원 이상을 자녀교육비로 썼다. 반면 월소득 200만원 이하 가구는 28%만이 한 달에 60만원 이상을 자녀교육에 쓸 수 있었다. 

 

ⓒ 동그라미재단

이렇다 보니 중장년층은 자신들이 살아온 세대에서 이뤄지는 계층 이동보다 자녀 세대의 계층 이동이 더 어려울 거라 본다. 조사 결과에서 이들은 하층의 자녀가 계속 하층에 머무를 가능성은 상층의 자녀가 하층이 될 가능성의 11배로 인식했다. 

 

연구를 맡은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모-본인 간의 계층이동보다 본인-자녀 세대의 계층이동이 훨씬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중장년의 경우 삶의 만족도는 소득수준에 따라서 대단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어날 때부터 중․장년 때까지 겪은 ‘기회의 불평등’은 노년기에도 큰 영향을 준다. 세대별 삶의 만족도는 노년층에서 가장 편차가 심했다. 이 ‘차이’는 ‘불평등’에 영향을 받았다. 만 60세에서 74세까지 53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노년층이 현재 중간․상층의 재산을 가질 확률은 과거에 속했던 계층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 동그라미재단

 

 

조사에서 과거 하층이었다고 응답한 사람의 43.9%는 현재도 자신을 하층이라고 여겼다. 이들 중 노년기에 상층에 진입한 경우는 3%에 불과했다. 또 현재 중간층이나 상층에 속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부모의 직업이 관리․전문․사무직인 경우가 많았다. 상층의 노년은 하층의 노년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았다. 계층 상향 이동 경험이 있는 노인은 같은 경험이 없는 이보다 1.5배이상 “삶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노년층의 기회 불평등을 연구한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노년층은 산업화에 따른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사회적 상향이동 경험이 높은 세대“라면서 “그럼에도 아버지의 직업이나 과거 어릴 때 자신의 집안이 속한 사회계층이 현재 자신이 속한 사회계층과 비교적 뚜렷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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