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재단법인 K스포츠 설립 추진계획’ 문건 입수...기업별 할당대로 돈 걷혀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6.09.26 08:16
  • 호수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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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문건 내용대로 설립 추진돼

역대 정권 말기마다 불거졌던 권력형 비리 의혹이 박근혜 정부에서도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다. 언론과 야당의 폭로로 드러난 재단법인 미르·K스포츠의 ‘대기업 강제모금’ 의혹이 올해 국정감사장에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정권 차원에서 재단법인을 만들고 여기에 필요한 기금을 대기업들이 갹출해 내도록 했다는 점에서 과거 5공 정권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준비했던 ‘일해재단’과 흡사하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여기에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주도설과 함께,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최근 최서원으로 개명) 개입설도 제기되고 있어 의혹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9월22일 청와대 수석 비서관회의에서 “이런 비상시국에 난무하

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의혹 확산 차단에 나섰지만, 야당은 국정감사를 단단히 벼르고 있는 모습이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치권이 대기업 돈 뜯어먹고 살던 시절이 다시 부활했다”고 했고,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도 “미르와 K스포츠재단 의혹은 창조경제 게이트”라고 규정했다.

 

 

서울 강남구 언주로에 위치한 재단법인 K스포츠 © 시사저널 박정훈

“지난해 12월 해당 기업들 사이 문건 돌아”

 

그런 가운데 시사저널은 ‘재단법인 K스포츠 설립 추진계획’이라는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 A4 용지 한 장으로 이뤄진 이 문건은 지난해 12월21일쯤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검토배경’으로 ‘체육을 통해 건강한 사회, 체육으로 하나 되는 사회 구현을 목적으로 관련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재단법인 케이스포츠 설립’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재단개요’ 항목이다. 기금 규모로 ‘총 300억원, 17개 그룹 참여’라고 적시돼 있다. 참여 17개 기업명도 나오는데, 삼성·현대자동차·SK·LG·포스코·롯데·GS·한화·KT·LS·한진·CJ·신세계·금호아시아나·두산·대림·아모레 등이다. 임원 구성은 ‘이사 3인과 감사 1인’이다. 

 

주요 사업으로는 ‘①체육을 통한 국위선양 ②종목별 인재 양성 ③남북 체육 교류 ④국제 체육 교류 ⑤한국 체육인재 국제대회 참가 지원 ⑥체육행사 주최 등’이라고 명기돼 있다. ‘향후일정’으로는 12월28일 설립서류 취합, 29일 창립총회 개최, 법인 설립 인가 신청, 30일 법인 설립 등기 신청, 2016년 1월초 창립현판식 및 대외홍보라고 나와 있다. 

 

‘협조요청사항’도 눈에 띈다. 재단 출연금 분담 확정을 12월23일까지 한(限)하는것으로 나와 있다. 또 재단 출연기관 인가 및 등기 관련 서류 준비는 24일까지로 돼 있다. 서류 제출 및 법인 인감날인은 28일까지로 돼 있다. 실제 이 문건 내용대로 K스포츠재단 설립은 추진됐다. 이 재단이 대기업들로부터 기부 받은 액수는 현재 약 2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연한 기업들도 이 문건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삼성그룹 4개사 79억원, 현대차 43억원, SK 43억원, LG 30억원, 롯데 17억원, GS 16억원, 한화 10억원, KT 7억원, LS 6억원, CJ 5억원, 신세계 5억원, 두산 4억원, 아모레퍼시픽 1억원 등이다. 문건에 올라 있는 기업 중 포스코와 한진·금호아시아나·대림 등이 빠져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미르재단에는 각각 6억~3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건에는 이름이 올라 있지 않지만, 부영주택이 K스포츠재단에 3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연말 이 문건을 최초 접한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12월에 해당 기업들 사이에서 이 문건이 돌았던 것으로 안다”며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전경련이(문건의) 출처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내용을 보면 K스포츠재단 설립을 준비하는 측에서 기금모금을 위해 작성한 문서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미 기금 마련을 위한 밑그림 작업이 다 끝난 듯 상세한 내용은 빠져 있고, 간단한 개요만 명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015년 12월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재단법인 K스포츠 설립 추진계획’ 문건

“준조세 공화국이냐” 대기업 불만도

 

위 사정기관 관계자를 비롯해 해당 대기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K스포츠와 미르의 재단법인 설립을 둘러싼 의혹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재계에 확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건에는 빠져 있지만, 지난해 12월 이 문건이 돌 당시 ‘삼성 79억, 현대차 43억, SK 43억, LG 30억, 포스코 19억, 롯데 17억, GS 16억, 한화 10억, KT 7억, LS 7억, 한진 6억, CJ 5억, 신세계 5억, 금호아시아나 4억, 두산 4억, 대림 4억, 아모레 1억을 각각 출연키로 했다’는 추가내용이 별도로 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한 대로 포스코 등 4개 기업(총 33억원)만 제외하고는 계획한 대로 정확하게 돈이 걷힌 셈이다. 당초 문건에는 300억원을 목표로 했으나, 33억원이 덜 걷힌 대신 부영이 3억원을 내면서 270억원이 된 것이다.

 

당시 재계에서는 이를 둘러싸고 불만의 목소리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준조세’ 논란이다. 준조세란 세금은 아니지만 세금처럼 납부해야 하는 기업 부담금을 뜻한다. 법령상 부담의무는 없으나 사실상 부담이 강제되는 기부금·성금 등의 비자발적 부담금이다. 17개 기업 명단에 올라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난해 기업들은 창조경제혁신센터, 평창 동계올림픽기금, 미소금융, 동반성장기금, 세월호 사고 관련 기금 등 각종 준조세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연말,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안까지 나오며 돈을 내라고 하니까 준조세 공화국이라는 말도 나왔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별로 낸 금액을 봐라. 자발적 금액이라면 서로 들쭉날쭉해야 맞다. 하지만 기업 규모별로 정확한 비율에 따른 할당액으로 짜여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 관련 의혹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였다. 재계에서 ‘5공의 일해재단 부활’이라는 수군거림이 지난 연말부터 돌았고, 사정기관에서도 관련 내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올 4월 총선으로 여소야대 정국이 되면서 국정감사를 준비하던 야당에서 관련 자료들을 집중적으로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대기업 한 관계자는 “연말 모임 때 이미 ‘미르재단은 서향희, K스포츠재단은 최순실’이란 말이 나돌았다. 대기업 돈 각출을 통해 현 정부의 퇴임 이후를 준비하는 게 5공 정권 일해재단과 뭐가 다르냐는 말도 나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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