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로 나온 KDB생명, 값 떨어지는 소리만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09.28 13:11
  • 호수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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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정착수수료 환수 조치에 반발한 전직 지점장들 소송 잇달아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 생각이 다르다’는 속담이 있다. 산업은행 계열인 KDB생명보험의 최근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 산업은행은 2010년 1월 금호생명(현 KDB생명)을 인수했다. 당시 회사의 경영 상황은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황이었다. 2008년 3조1997억원이던 영업수익은 2010년 2조7833억원으로 감소했다. 보험계약자들이 납입한 보험료를 운용해 수익을 내는 보험료수익 역시 2조1806억원에서 2조668억원으로 하락 추세였다. 영업력 강화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시급했다.

 

 

1심은 전직 지점장, 2심은 회사 각각 승소

 

KDB생명은 영업 능력이 있는 ‘보험맨’을 외부에서 스카우트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우수 인력을 수혈하기가 쉽지 않았다. 회사의 낮은 인지도 때문에 KDB생명으로 옮기기를 꺼려했다. 당근책으로 제시한 것이 정착수수료였다. 판매 수당과 별도로 매월 500만~800만원의 고정급을 18개월 동안 조건 없이 지급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70여 명을 외부에서 수혈했고, 서울과 경기도의 사업가형 지점장(PBM)에 위촉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날개 없이 추락만 거듭하던 KDB생명의 경영 상황이 서서히 호전되기 시작했다. 2012년 KDB생명의 영업수익과 보험료수익은 각각 3조6417억원과 2조9395억원을 기록했다. 2010년 대비 영업수익은 30.8% 증가했고, 보험료수익은 42.2%나 늘어났다. 회사를 옮겨온 영업 인력들이 실적 달성을 위해 밤낮없이 뛴 결과였다고 내부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그러나 이후 KDB생명이 입장을 바꿨다. 새로 영입한 인사들에게 새로운 계약서 체결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앞으로 2년 이내에 PBM에서 해임될 경우 정착수수료 중 절반을 환수한다는 내용이었다. 18개월의 정착수수료를 준다는 약속을 믿고 KDB생명으로 옮겼던 지점장들이 반발했다. 기자가 만난 한 전직 지점장은 “회사를 관둬도 정착수수료를 토해 내야 했다”며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전직 KDB생명 지점장들이 최근 회사를 상대로 잇달아 소송을 벌이고 있어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KDB생명 본사 건물 © 시사저널 고성준 © 시사저널 박정훈


우려했던 대로 상당수 인사들이 PBM에서 SM(부지점장)으로 신분이 강등됐다. SM으로 신분이 바뀌어도 해임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들은 또다시 회사와 변경된 2차 계약을 체결했다. 지정된 실적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해임 조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상당수가 정해진 실적을 달성하지 못해 해임됐고, PBM 시 지급됐던 정착수수료의 절반을 토해 내야 했다. KDB생명의 한 지점장은 “적게는 1500만원, 많게는 6000만원대를 회사에 환수당하면서 내부적으로 반발이 심했다”고 말했다.  

 

참다못한 지점장 안아무개씨가 지난해 11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양측은 치열한 법적 다툼을 벌였다. 안씨는 “회사가 환수해 간 4000만원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안씨의 법적 대리인 김명종 법무법인 지킴 변호사는 “처음 입사 때만 해도 계약서에 수수료 반환 조항이 없었다”며 “사실상 회사의 강요로 바뀐 계약서를 체결했고, 수수료까지 환수된 만큼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SM 때 체결한 계약으로 PBM 때 받은 수수료까지 환수한 것은 너무 지나친 처사라는 게 전직 지점장들의 입장이다. 회사 측의 입장은 달랐다. KDB생명의 한 관계자는 “바뀐 계약서에 환수 규정이 있었다. 회사는 계약서에 나와 있는 절차대로 진행한 만큼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1심 판결이 나왔고, 법원은 안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KDB생명과 안씨가 체결한 계약서에 환수조항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SM 해임 시 이미 지급된 PBM 정착수수료를 환수하는 부분은 민법 제103조 소정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해 무효라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후 KDB생명을 상대로 추가 소송이 잇따랐다. 비슷한 피해를 입은 지점장들이 회사를 상대로 환수금 반환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금액이나 시기가 안씨와 다를 뿐, 피해 유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재까지 확인된 소송만 3건이다. 소송 결과에 따라 추가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KDB생명은 1심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다. 지난 7월 2심 판결이 나왔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결과를 뒤집고 KDB생명의 손을 들어줬다. 이전에 설계사를 해고해 정착수수료 일부를 환수할 수 있었음에도 6개월 연장했다는 회사 측 입장을 수용한 것이다. 안씨는 상고했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KDB생명이 승소할 경우 회사는 설계사에 대한 정착수수료 환수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회사를 상대로 진행된 추가 소송 역시 기각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안씨가 승소할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현재 소송 중인 지점장들의 수수료를 회사가 물어줘야 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 경우 상황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나머지 지점장들의 추가 소송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양수 KDB생명 대표는 최근 실적 부진 및 전직 설계사들과의 법적 다툼으로 힘겨운 2년 차를 보내고 있다. © 연합뉴스


매수자 나서지 않아 중국에 매각설도

 

무엇보다 KDB생명은 현재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다. 산업은행은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KDB생명의 매각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가격차를 좁히지 못해 매각이 무산됐다. 산업은행은 조만간 KDB생명에 대한 3차 매각 공고를 낼 예정이다. 매각 작업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무 건전성지표의 척도인 지급여력비율(RBC)은 현재 156.1%에 불과하다. 금융 당국의 권고 수준(150%)은 겨우 넘겼지만, 생명보험사 권장 RBC 비율인 200%에는 한참 못 미친다. 때문에 정상적으로 매각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거액의 수수료까지 물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경우 KDB생명의 경영 악화와 더불어 대외적인 신인도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매수자가 없어 중국 기업에 매각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만약 KDB생명이 패소할 경우 줄소송과 함께 매각에도 차질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2014년 공정위 개선책 발표됐지만 보험사-설계사 간 분쟁 여전

 

보험회사와 소속 설계사 간의 환수금 분쟁은 KDB생명만의 사례는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4년 삼성·한화·동부·교보생명 등 국내 26개 보험사의 설계사 위촉 계약서와 수수료 지급 규정 등을 조사했다. 보험회사의 ‘갑질’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요컨대 보험사들은 그동안 보험이 해지되거나 취소될 경우 설계사에게 지급한 수당을 모두 환수해 갔다. 단순히 고객의 민원 등으로 해지된 계약 건까지 설계사에게 책임을 돌려 환수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 돈이 매년 2000억원에 육박했고, 환수된 돈은 고스란히 회사의 이익으로 돌아가게 됐다. 

 

보험사가 설계사와 맺은 불공정 계약이 문제로 지적됐다. 약관이 지나치게 회사에 유리하게 돼 있다 보니 설계사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참다못한 일부 설계사들이 금감원 등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참고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민원을 제기했던 설계사들 역시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 

 

© 시사저널 임준선

2014년 진행된 공정위 실태조사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소속 설계사를 상대로 한 불공정 행위가 적지 않게 드러났다. 공정위는 수수료 환수 조항 등을 시정한 대책안을 마련했다. 설계사의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 계약이 해지된다고 해도 환수하지 못하도록 예외 조항도 마련한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보험회사와 설계사 간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보험사와 설계사 간 환수금 분쟁은 줄어들지 않았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만 50여 건에 달하고 있다. 국내 보험사들이 공정위의 제재를 피해 편법으로 설계사의 수당을 환수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일례로 AIA생명의 전직 설계사 A씨는 최근 금감원과 공정위에 민원을 제기했다.  2014년 발표된 설계사 위촉계약서 개선안을 피하기 위해 편법으로 수당을 환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AIA생명이 이미 지급한 수당을 환수하지 말라는 조항을 피하기 위해 서울보증보험사를 이용했다”며 “보험설계사에게 수당이행보증보험을 가입하도록 강제해 수당을 환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DGB금융그룹 계열인 DGB생명보험(옛 우리아비바생명) 역시 무리하게 수당을 환수하다 금융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됐다. 전직 설계사 B씨에 따르면, DGB생명보험은 현재 12개월 차 근무자까지 조기 해촉 수수료를 돌려받고 있다. A씨의 경우 13개월 차 때 회사를 퇴직했다. 환수 규정상 수당을 환수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1개월 차 때 기본급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12개월 차로 보고 수당을 환수했고, B씨가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착수수료를 노리고 철새처럼 회사를 옮겨 다니는 설계사 못지않게 보험사의 횡포도 여전하다”며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환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해당 업체들은 현재 “조사 당국에 민원이 접수된 것은 맞지만, 설계사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피하고 있어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이들에게 전화와 문자 등으로 여러 차례 답변을 요구했지만, 9월23일 현재까지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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