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을 두 번 죽이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6.09.2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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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 부검영장 발부…각계각층 인사들 ‘국가폭력 규탄’ 시국선언 열어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이 살수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9월25일 결국 세상을 떠났다. 사고가 일어난지 317일 만이었다. 300일이 넘는 긴 시간동안 정부와 경찰의 사과는 없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 이후 그들이 내민 것은 부검영장이었다. 서울중앙지법은 9월28일 백남기 농민 시신 부검을 위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공식 사망 판정을 받은 다음날 “부검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던 법원이었다. 검찰이 부검영장을 재청구한 뒤 유족들이 법원에 ‘부검 불필요’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법원은 이틀 만에 입장을 바꿨다. 

 

유족과 각계 인사들은 부검시도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9월29일 오전 11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서 4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백남기 농민 사만 국가폭력 규탄 시국선언’ 행사가 열렸다. 시국선언에는 유족들을 비롯해 야당 의원 114명과 종교계 인사 500여명, 시민사회단체 인사들 1000여명, 민변과 민주법연 소속 변호사 등 350명의 법조계 인사들, 농민, 빈민, 여성, 청년, 학생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함께 참여했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자리에 참석했다. 이들은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공권력에 의한 명백한 타살”이라며 정부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물대포 사용 중단 등을 요구했다.

 

 

 “유족이 원하지 않는 부검, 검경이 강행하려 한다”

 

선언자들은 부검시도를 규탄했다. “사인이 명백하고 유족이 부검을 원치 않고 있는데도 검찰과 경찰, 법원은 기어이 부검을 강행하려 한다”며 “이는 법률적으로도, 의학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행위다. 사인을 은폐∙왜곡하려는 시도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장정숙 국민의당 원내 대변인은 “고인의 마지막을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문제의 핵심은 부검 영장 신청을 했고, 영장이 발부됐다는 것”이라며 “고인의 억울함을 풀어드리는 마지막의 조치가 부검이다. 이 부검이 가해자들의 화풀이 수단이 되고 있다. 물대포에 맞아 돌아가신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백남기 농민의 둘째 딸인 백민주화씨는 “그간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조사도 안하고 있다가 결국 부검 영장을 발부했다. 어찌 살인자가 피해자를 진상규명하겠다는 것인가”라며 부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국선언을 제안한 가톨릭농민회 정현찬 의장은 “부검 영장 발부는 고 백남기 농민을 두 번 죽이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했다. 정 의장은 “판사의 양심을 믿고 기대했지만 그 기대마저 실망으로 변했다. 물대포에 의한 사망원인이 분명하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결국 영장은 발부됐다”고 말했다. 또 “정권과 검찰과 경찰은 만행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이 땅의 정의와 인권이 사라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민주노총도 행동을 함께 했다.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5년을 선고받고 서울 구치소에 수감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옥중 서신을 보내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애통해했다. 최종진 민주노총 수석위원장은 “9월28일부터 공공부문 노동자 파업이 시작됐지만 여당은 국감도 무시하고 집권하고 있다. 고 백남기씨는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것을 317일 동안 보여준 것”이라며 “불편을 감수하면서라도 힘을 보태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는 입장을 밝혔다.

 

참여연대 공동대표인 법인스님은 “죽음을 밝히는 공동의 증언자들이 있다. 어찌 불법시위라는 정치적 수사를 동원해 자연과 모든 생명의 근원인 농민에게 물대포를 직사하는가”라며 “잘못을 참회, 회개하고 무지한 행동을 중단하라”고 호소했다. 민변의 정연순 변호사는 “당연히 처리해야 할 일이 미뤄진 지 300일이 넘었다. 300일이 지나도 조사도 수사도 없었다. 책임자들이 오히려 우리를 비웃고 범죄혐의를 입증하겠다고 부검을 한다고 한다”며 “끝내 발부된, 정치권 압력에 발부된 알 수 없는 영장을 보고 변호사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허울 좋은 법치주의라는 이름 아래 국민들을 욕보이는 일은 중단하라”고 말했다.

 

9월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사망 국가폭력 규탄 시국선언'에서 고 백남기 농민 유가족들과 정치·종교·시민사회·법조계 등 각계 인사들이 정부의 사죄, 부검 시도 즉각 중단, 국가폭력 종식과 물대포 추방 등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시민사회연대회의 “백남기 농민 추모 공간 마련할 것”

 

야당에서도 목소리를 보탰다. 백남기 농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인 정재호 민주당 의원은 “30년 전을 데자뷰하는 것 같다. 지금 정부와 새누리당은 무능하고, 역사적으로도 상식적이거나 정의롭지 않다. 무엇을 해달라는 단계는 지났다. 야당과 시민사회, 온 국민이 뭉쳐 할 일은 자명하다”며 “더민주당은 ‘빈소지키기 국회의원 당번제’를 시행할 것”이라 밝혔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왜 이렇게 (백남기 농민을) 두 번 죽이는 것인가. 범행 은폐와 조작을 위한 영장 발부”라며 “새롭게 진실을 밝혀내는 작업에 들어서야 한다. 여소야대가 만들어진 의의를 살펴 모든 힘을 동원해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훈 무소속 의원도 “또 다른 죄인이 되지 않게 지켜드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며 “끝까지 함께 해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연대회의는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는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승훈 시민단체연대회의 사무국장은 “서울시와 추모 공간 마련에 대해 협의 중이다. 원래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곳을 생각했으나, 보신각 앞에 추모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10월1일 오후 4시부터는 대학로에서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는 ‘범추모대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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