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검찰
  • 최재경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30 17:35
  • 호수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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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분 (秋分)이었던 지난 9월22일이 지나면서 완연한 가을이 됐다. 끝없이 계속될 것 같던 올여름 무더위가 불과 며칠 사이에 사라져버리고 선선한 바람이 가득하다. 예로부터 추분에는 벼락이 사라지고 벌레가 땅속으로 숨으며 물이 마르기 시작한다고 했다. 이제부터는 점차 낮보다 밤이 길어질 것이다.

 

검찰은 추관(秋官), 즉 가을의 관청이다. 과거 우리 역사에서 검찰 업무를 수행했던 기관은 형조(刑曹)와 사헌부(司憲府)다. 중국 고대 주나라 때부터 행정조직을 6조로 나눠 하늘과 땅,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에 상응해서 호칭했다.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이조(吏曹)는 천관(天官), 재정 업무를 맡은 호조는 지관(地官), 외교·교육 등을 맡은 예조는 춘관(春官), 국방의 병조는 하관(夏官), 형조는 추관(秋官), 공사와 국토 관리를 담당하는 공조는 동관(冬官)이라 했다. 

 

형조를 추관이라 한 것은 형벌의 엄정성이 가을의 차가움과 상응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리라. 사헌부는 상대(霜臺)라고 불렀다. ‘서리 내린 관청’이란 뜻이니 역시 가을의 차가운 서릿발같이 기세가 매섭고 준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얼음은 차가워야 하고, 고추는 매워야 한다. 검찰은 가을 관청이란 별칭에 걸맞게 매섭고 준엄해야 할 것이다. 조선 초기 대사헌을 지낸 양촌 권근(權近·1352〜1409)은 사헌부 관리들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이를 기리는 상대별곡(霜臺別曲)을 지었다. 그 중 사헌부 청사의 엄숙한 기상을 묘사한 1장과 관원들의 출근 장면을 노래한 2장을 약간의 의역으로 소개한다.

 

‘화산 남쪽 한수 북쪽 천년 승지 서울. 청계천 광통교를 건너 종로 운종가로 들어가면, 가지 축축 늘어진 멋진 소나무와 우뚝 솟은 늙은 측백나무에 에워싸인 추상같은 위엄이 서린 사헌부. 아! 오랜 세월을 두고 청렴결백한 바람이 감도는 광경 어떻습니까? 모인 관원들은 모두 영웅호걸과 당대의 인재들, 아! 나까지 보태서 몇 분이나 됩니까?’ 

 

‘닭이 울고 하늘이 밝아 새벽이 오면, 서울의 길게 쭉쭉 뻗은 길로, 대사헌과 늙은 집의(執義), 어사(御使)들이 학 무늬 가마와 난새 무늬 수레를 타고 출근하는데, 앞에서 소리치고 뒤에서 옹위하며 좌우로 잡인들의 접근을 막으면서, 아! 사헌부 관원들이 등청하는 모습! 어떻습니까? 그 모습 엄숙하구나, 사헌부 관원들이여. 퇴폐한 기강을 다시 떨쳐 일으키는 광경 멋지지 않습니까?’ 

ⓒ 시사저널 최준필


요즘 검찰의 형편이 어려운 것 같다. 몇몇 전·현직 검사가 대형 비위에 연루돼 국민들의 질책이 따갑다. 가을 관청이 가을 추위에 떠는 모습이니 안타깝다. 하지만 가을이 꼭 필요하듯, 검찰 기능을 마냥 없애거나 줄일 수는 없다. 물론, 가을의 위엄을 되찾기 위해서는 검찰 스스로 추관(秋官), 상대(霜臺)의 서릿발같은 자기 정화가 필요하다. 문제 있는 사람은 가차 없이 제거하고 잘못된 부분은 과감하게 고쳐야 할 것이다. 때 이른 가을 추위도 당당하게 견뎌내서, 검사들이 멋진 모습으로 상대별곡을 부르며 법 집행에 매진하고, 우리 국민들도 공감해서 박수 치는 시절을 기대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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