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손가락 잘렸는데 2000만원 부담하라니…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10.04 18:19
  • 호수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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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보험 신청 막는 비급여 항목들 “절단·화상 환자 본인 부담 비율만 30~40%”

지난 9월10일 경기 김포의 한 주상복합 건물 공사현장에서 불이 나 지하에서 작업하던 근로자 4명이 맹독성 가스에 질식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흘 후인 9월13일 경북 김천시 김천역 인근에선 KTX 선로보수 작업에 나섰던 협력업체 직원 2명이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진 뉴스들이다. 그만큼 산업재해(산재)가 일상에 만연해 있다는 의미다. 산재는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을 얻는 것을 말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산해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하루 평균 247명이 산재를 당하고 있다. 그중 5명은 목숨을 잃는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사람들 가운데 50여 명은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산재공화국’이라는 오명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거다.

 

이 같은 산재 위험으로부터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있다. 4대 보험 가운데 하나인 산재보험이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보다 먼저 도입된 한국 최초의 사회보험 제도이기도 하다. 산재를 당한 근로자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회사는 소정의 보험료를 내고, 그 기금으로 산재 예방 사업을 벌이거나 산재 근로자들에게 치료비를 보상해 준다. 하지만 산재보험 제도의 허점 때문에 산재 신청을 꺼리는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공장에서 사고를 당한 뒤 산재를 신청했다가 후회하고 있는 한 근로자의 사례를 통해 산재보험의 제도적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2015년 산업재해로 죽거나 다친 사람은 9만129명에 달했다. 사진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4월28일 서울 보신각 앞에 조형물을 설치한 뒤 산재 사망자를 추모하는 모습 © 연합뉴스


“차라리 산재 신청하지 말걸…” 

 

충남의 한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던 정상필씨(가명·31)는 지난 1월 작업 도중 손가락 4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철제 케이블을 꼬는 기계에 순간적으로 손가락이 빨려 들어간 것이다. 다행히 정씨 옆에 근무하던 동료가 기계 작동을 중단해 더 큰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한 정씨는 회사 차에 실려 약 60km 떨어진 산재 지정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후 가족들이 도착한 뒤 전문적인 치료를 위해 정씨를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현재까지 6차례의 수술을 받았고, 오는 12월 또 한 차례 수술을 앞두고 있다.

 

8개월의 치료기간 동안 발생한 병원비만 5000여만원에 이른다. 사고를 당한 지 2주가량 지났을 무렵 회사 관계자가 찾아와 산재보험으로 처리할지, 공상으로 처리할지 물었다. 산재 신청을 하지 않고 공상으로 처리할 경우 병원비를 전액 지원하겠다는 얘기도 했다. 정씨는 고민 끝에 산재를 신청하기로 했다. 워낙 큰 부상인 데다 추후 장애, 후유증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씨는 최근 산재로 처리한 결정을 후회하고 있다. 산재로 보장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으로 인해 본인 부담 비용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전체 치료비 5000만원 가운데 산재 보험으로 처리된 비용은 3100만원에 불과했다. 치료 도중 병원비를 중간 정산해야 할 때마다 수백만원의 본인 부담금이 나왔다. 신용카드 결제 한도는 이내 꽉 찼다. 부모님은 물론 주변 지인들에게 손을 벌려야만 했다. 치료비 걱정 때문에 수술을 받지 않겠다는 생각도 수차례 들었다.

 

정씨는 조심스럽게 회사 관계자에게 상황을 털어놓았다. 자신이 부담한 치료비 가운데 일부라도 지원해 줄 수 없느냐는 말이었다. 하지만 회사 측에선 “치료가 끝난 뒤 이야기하자”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그렇다고 정씨가 직접적으로 따지거나 소송을 걸 수도 없는 상황이다. 비록 손가락 접합 수술을 받았어도 신경 회복이 더뎌 손가락은 굽혀지지 않는다. 이런 처지에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치료가 끝난 뒤 회사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입장에서 2000만원에 가까운 치료비를 내달라고 강하게 요구할 수는 없었다.

 

이는 정씨만의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지난 6월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에서 근무하다 염산이 튀어 화상을 입은 최영국씨(가명·38)도 비슷한 처지다. 사고 직후 산재로 인정받았지만 9월까지 본인 부담금이 1000만원 넘게 쌓여 있다. 회사 측에선 6~7월 본인 부담금을 부담했지만 9월초 갑자기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8월분부터 지원을 중단했다. 가족들은 회사와 근로복지공단 측에 수차례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최씨는 자신이 부담해야 할 치료비 8월분 700만원과 9월분 350만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비급여 항목, ‘산재 은폐’ 수단으로

 

흔히 일하는 도중 사고를 당해 산재보험을 신청할 경우 모든 치료비용이 보상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잘못된 상식이다. 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일부 비용은 환자 스스로 부담하는 비급여 항목이 존재한다. 대부분 건강보험수가 기준을 차용하고 있지만, 근로자의 입장을 반영해 진료에 필요한 일부 비급여 항목을 별도로 보장해 주기도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부터 병원에 다인실이 없을 경우 발생한 상급 병실료를 7일 이내의 범위에서 지원해 주는 등 의료 현실을 반영하려고 제도를 손보고 있다.

 

문제는 의료기술의 발달로 치료법은 날로 향상되고 있지만 행정력은 이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비급여 항목들은 해마다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절단 환자나 화상 환자의 경우 비급여 비율이 높은 편이다.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절단이나 화상 환자의 비급여 비율은 30~40% 정도에 달한다. 극심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맞는 무통(無痛)주사 등이 비급여 항목에 해당된다. 절단·화상 환자의 경우 외형을 복원하는 수술을 받게 되면 성형으로 포함돼 보장을 받지 못한다. 때문에 수백만~수천만원의 본인 부담금이 발생하게 된다.

 

사고를 당한 근로자들은 산재 은폐 유혹에 휩싸인다. 회사 측에서는 산재 사고 발생으로 인한 보험료율 인상 등의 불이익을 우려해 원만한 합의를 유도하기도 한다. 흔히 공상 처리라고 부른다. 물론 공상이란 용어는 법적인 개념이 아닐뿐더러, 이를 유도하는 행위는 엄연히 불법이다. 하지만 근로자들은 대부분 사고 직후 산재를 신청할 경우 불이익을 우려한다. 산재로 처리할 경우 본인 부담금이 발생하지만 공상으로 신청하면 치료비 전액을 회사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는 점도 산재 처리를 기피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공상 처리를 하게 되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고 곧바로 회사에 나가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병이 악화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산재 근로자들은 치료 이후에도 후유증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이때 회사의 경우 공상 처리 당시 합의서를 근거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보상도 받지 못하는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근로복지공단 측은 “건강보험수가 기준 및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하는 산재보험 요양급여 산정기준에 따라 급여가 지급되며, 상급병실료·선택진료비 등의 항목에 대해선 본인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며 “본인이 부담한 금액에 대해서도 요양비를 청구할 경우 심사를 거쳐 환자에게 꼭 필요한 치료의 경우 최대한 보장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단 측은 “회사와 재해 근로자의 개인적인 합의를 통해 산재를 신청하지 않을 경우 추후 치료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산재가 발생할 경우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본인 부담금을 대체하는 방법은 제도적으로 갖춰져 있다. 치료 과정에서 발생한 본인 부담금에 대해 별도로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을 하면 심사를 통해 일부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고를 당한 근로자들은 대부분 이 점을 알지 못한다. 본인 부담금에 대해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도 있지만, 다시 복귀해야 하는 근로자 입장에선 선택할 수 없는 카드나 마찬가지다.

 

최상필씨(가명)가 산재 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돼 접합 수술을 받은 모습(위 사진)과 진료비영수증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모습 © 시사저널 이민우

제도 개선·근재보험 확대 필요

 

이를 대체하기 위해 만든 것이 근로자재해보장보험(근재보험)이다. 산재보험금의 청구가 종료된 후 본인 부담금에 대해 추가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대형 회사들은 대부분 근재보험에 가입해 사고를 당한 근로자에게 적정한 보상을 하고 있다. 문제는 소규모 회사들이다. 지난해 산업재해자 수는 9만 명을 약간 웃돈다. 전체 산재의 81.6%가 5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산재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사고 혹은 질병의 위험에 놓여 있다. 산재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64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 재해자 수는 460만 명이 넘고, 사망자는 8만9000여 명에 이른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산재 원인에 대해 “안전의식이 산업현장에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아직도 많은 현장에서 산업재해를 ‘운이 없어서’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산재보험의 비급여 항목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치료 부담이 근로자들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며 “산재 예방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과 함께 산재 보장성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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