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직접 운전하는 일왕(日王)
  • 이규석 일본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06 13:55
  • 호수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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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위 발언’ 아키히토 일왕 인기 비결…“무욕의 소탈한 모습”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지난 8월8일 생전퇴위 의사를 밝힌 후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일본 국민 대다수는 일왕의 생전 퇴위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도 9월 들어 이런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의식해, 아키히토 일왕 일대에 한해 퇴위를 허용하는 쪽으로 특별법을 제정할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쇼와(昭和) 연호를 쓴 히로히토(裕仁·1901~1989) 일왕의 장남으로 태어나 1989년 1월7일 왕위를 계승했고, 퇴위 의사를 표명하기까지 수십 년간 온후한 성품과 진지한 태도로 일본 국민을 대해 존경을 한 몸에 받아온 인물이다.

 

아키히토는 1952년 18세 성년으로서 왕세자가 됐고, 1959년 쇼다 미치코(正田美智子)와 결혼해 슬하에 2남1녀(나루히토(德仁), 후미히토(文仁), 사야코(清子))를 두고 있다. 재산가(財産家) 쇼다 히데사부로(正田英三郎)의 장녀 쇼다 미치코와는 1957년 가루이자와(輕井澤)의 테니스 코트에서 만나 연정을 불태웠고, 왕족이나 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왕실의 반대에 부딪혔으나, 2년의 교제 끝에 자기 고집을 관철시켜 왕족으로서 민간인과의 결혼에 성공했다.

 

 

아키히토 일왕이 8월8일 영상 메시지를 통해 생전 퇴위 의사를 밝히고 있다. © AP 연합

 

일왕, 시대 흐름에 유연하게 대응

 

일왕은 소탈한 면모로 사랑을 받았다. 1995년 1월17일 한신(阪神) 대지진(고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지진발생 2주일 후 현지에 들어가 슬리퍼도 신지 않고 피난소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피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자, 일본뿐 아니라 해외의 매스컴에도 크게 소개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01년 미국 동시다발테러 사건(9·11 테러)이 발생하자, 아키히토는 하워드 베이커 주일대사를 통해 부시 대통령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일왕이 천재지변 이외의 일로 외국에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은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이 일은 당시 전통을 중시하는 왕실에 일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유연하게 대응한 일왕의 자세는 일본 국민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2005년 사이판을 방문했을 때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하며 묵념까지 했다. 사실 이 아키히토 일왕은 전쟁(제2차 세계대전)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 부친 히로히토가 남긴 어둡고 우울한 유산을 씻어 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전쟁 피해 당사국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자, 같이 아파하며 피해자 및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3월16일 방송했다. 일왕이 국민들에게 직접 방송을 한 것은 1945년 종전(終戰) 때 히로히토 일왕이 직접 방송을 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황거(皇居)가 있는 지요다구(千代田區)는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계획 정전(停電)’의 대상 외 지역이었지만, 국민과 함께 고통을 나누겠다는 일왕의 의향에 따라 황거는 정전시간에 맞춰 전원을 껐다. 계획 정전이 종료되고 나서도 황거는 자주적으로 정전을 계속했다고 한다.

 

일왕은 가까운 곳에 갈 때 스스로 운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7월 공개된 유튜브 동영상에는, 아키히토 일왕이 주말에 고쇼(御所·일왕의 거처)를 나오면서 궁내청 직원용 테니스 코트에 갈 때, 조수석에 왕비를, 뒷좌석에는 시종들을 태우고 직접 운전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 승용차의 차종은 1991년 제작된 회색의 혼다 인테그라(Integra)로 구형 중의 구형이었다. 일왕의 무욕의 소탈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영상이다.

 

 

‘퇴위 발언’에 일본 우익세력 ‘당혹’

 

2016년 9월 현재 82세로 고령이지만, 공무와 궁중제사 등을 아주 왕성하게 치러 왔고, 국왕 활동도 아주 근면하고 의욕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연간 1000건 이상의 서류를 읽고 서명·날인하며, 200회 이상의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아키히토 일왕의 입에서 느닷없이 “생전 퇴위(양위)”가 나온 것이다. 일왕이 고령에다 지병(폐렴과 부정맥 등)으로 체력에 한계를 느꼈을 법도 하지만, 일본 국민도 그리고 이웃나라 국민까지도 처음엔 놀랐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왕의 평소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떠올리는 일본 국민은, 국왕이 아닌 ‘보통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듯한 그를 그대로 보내주려고 하는 것 같다. 9월초 여론조사에서는 일본 국민 84%가 생전 퇴위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당황한 쪽은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우익 정치인이었다. 일본 우익의 전통은 유럽식 입헌군주제를 선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상징 천황’을 ‘국가원수’로 올려놓으려는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다. 일본 우익의 개헌 프로그램에도 유럽식 입헌군주제로 가자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일본의 ‘상징 천황’이나 유럽식 입헌군주제하의 군주가 실권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현재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에게도 통치를 위한 실권은 없다. 그런데 왜 일본 우익은 이러한 시도를 중단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일본 우익이 일왕을 ‘국가원수’로 하는 것이 일본 통합과 단결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 우익 인사들이 ‘상징 천황’을 ‘국가원수’로 바꾸려고 하는 이유는 또 한 가지 민법상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징 천황제 아래서는 국왕의 지위와 자산을 승계할 때 일반 국민과 똑같이 높은 세율(55%)로 상속세를 내야 한다. 이 세율로 2세, 3세로 두세 번 상속되다 보면 왕실의 재산은 거의 바닥이 날 수도 있다. 실제로 지금의 아키히토 일왕은 1989년 1월 부친 히로히토의 사망으로 왕위를 승계했을 때 상속세로 4억2800만 엔을 낸 적이 있다. 또한 황거가 있는 지요다구에는 주민세를 꼬박꼬박 내고 있다. 그러나 ‘상징 천황’을 국가원수로 해 왕실을 국가기관으로 만들면 그렇게 많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왕실 재산은 그대로 국가 재산이 되기 때문이다. 합법적으로 ‘절세’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보수 우익들의 생각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아키히토 일왕은 정작 그런 정치적 문제나 재산 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냥 소박한 실버 에이지, ‘보통 할아버지’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뿐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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