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먹는 것만이라도 좀 안심하고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press.com)
  • 승인 2016.10.14 23:06
  • 호수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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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7일 오전에 급히 커버스토리를 바꿨습니다.

주간지 조금만 아는 분이라면 마감날 아침에 커버를 바꾼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아실 겁니다.

한마디로 호떡집에 불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발단은 노진섭 기자가 인터넷판용으로 부른 기사였습니다. 미국산 쇠고기에서 금속 재질의 못, 공업용 접착제, 작업용 장갑 등 이물질이 발견됐다는 게 골자(骨子)였습니다. 미국 검역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사사저널에는 크든 작든 단독기사가 항상 몇 건 매호 나갑니다. 이번 호(1408호)에도 멋진 단독기사를 커버스토리로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기사 원고를 본 순간 머리가 띵해졌습니다. ‘커버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당기자에게 기사를 더 키울 수 있는지 연구해보라고 지시하고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커버 가능할 것 같습니다”는 기자의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제가 제일 중시하는 기사는 ‘안전한 먹을거리’입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기준은 여럿이고 사람에 따라 제각각입니다. 제 경우는 ‘음식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나라’가 선진국입니다. 그래서 이런 선진국에 가면 안심하고 먹고 마실 수 있어 좋고 그 나라 사람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요즘 한창 취업 시즌입니다. “어디가 좋은 직장일까요?” 하고 묻는 후배들에게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구내식당 밥 맛있는 데 취직해라.” 의아해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설명합니다. “구내식당 밥이 맛있는 직장은 좋은 식자재를 쓸 수 있을 만큼 돈도 잘 벌고 직원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곳이거든.” 이러면 대개 납득이 되는지 고개를 끄덕입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미국산 쇠고기는 호주산과 더불어 국내 수입 쇠고기 시장을 양분(兩分)하는 먹을거리입니다. 한우가 비싸고 가짜가 많아 주저하는 일반인들이 애호하는 아이템이기도 합니다. 이런 고기가 이물질 범벅이라니 기함할 노릇입니다.

 

음식에 대한 불신은 인간과 사회,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집니다. 식욕은 인간의 모든 욕구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욕망입니다. 재료 갖고 장난치고 저울을 속이는 곳에서는 신뢰가 없습니다. 한국 사회가 불신사회인 것은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엄청난 불신사회입니다. 저는 천성이 남의 말을 잘 믿는 편인데, 이 나라에서 제법 살다보니 인간에 대한 신뢰를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다들 말로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하지만 글쎄요? 저부터도 자신 없네요.

 

백남기씨 사망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이 사건의 바탕에도 지독한 불신이 깔려 있습니다. 이 나라 풍토가 하루아침에 바뀔 것도 아니니 이번에도 서로 각자 하고 싶은 대로 믿겠죠. 제 소망은 이렇습니다. “먹는 것만이라도 좀 안심하고 살자!” 너무 거창한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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