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기획①] 무하마드 알리는 ‘무죄’였다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10.1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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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미국은 권리 확대

2만명. 이제껏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택해 감옥에 간 이들의 추정치다. 그들은 수감기간이 끝난 뒤에도 ‘전과자’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간다. 

 

이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10월18일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양심적 병역거부자 김아무개씨 등 3명이 항소심(2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것이다. 최근 각 지역 법원 1심 재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무죄를 선고받은 적은 있었지만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이 판결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희망을 갖기에는 이르다. 지금까지 한국에선 이런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는 '처벌'만을 고집해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법원이 최종심에서 무죄를 확정한 사례도 없다. 헌법재판소도 과거 두 차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처벌이 정당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이 ‘당연한’ 것은 한국에서만 유효하다. 처벌이 아예 없는 국가가 대다수다. 2015년 국제사면위원회(AI) 한국지부에 따르면, 유엔 193개 국가 중 57개국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헌법과 법률에 명시했다. 12개 국가는 법적으로 혹은 관행적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한다. 나머지 88개국은 군대가 없거나 모병제가 도입된 곳이다. 한국처럼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36개국뿐이다. 이 중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로 처벌받는 이가 가장 많은 곳은 한국으로, 전체의 93%가량을 차지한다. 한국 외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이 남아 있는 국가는 터키, 이스라엘 정도다. 이 중 이스라엘은 '양심위원회'에서 병역거부자를 심사하도록 법에 규정해 양심적 병역거부의 길이 아예 닫힌 것은 아니다. 터키는 약 700만원의 ‘국방세’를 내면 병역이 면제되기에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2015년 12월 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시민단체들이 '양심적 병역거부'퍼포면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특히 유럽에서는 압도적인 다수 국가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고 있다. 영국은 징병제가 시행됐던 세계 2차 대전 당시부터 이미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했다. 대신 이들에게 일정기간 의무적으로 비전투직과 민간업무에 종사할 수 있게 했다. 독일은 1949년 아예 헌법에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명시했다. 이외에도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벨기에, 핀란드 등 유럽 대다수 국가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하여야 하며, 제한행위가 절실한 사회적 필요가 있는 것임을 증명해야 한다. 압도적 다수 유럽국가의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갈등관계를 해소할 효과적이고도 현실적인 대안(대체복무)이 존재하였다”

- 유럽인권재판소 2011년 판결

유럽인권재판소는 위와 같은 판결에서 “유럽평의회의 회원국 대부분이 대체복무를 도입했다“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처벌받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아시아에서는 2017년 완전모병제로 전환하는 대만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대표적 국가다. 대만은 2016년까지 징병제를 유지하며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를 대체복무제도로 해결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1년10개월을 복무하는 현역병에 비해 4개월 더 복무한다. 이들의 복무분야는 사회서비스 분야로 한정된다.  

 

미국도 ‘양심적 병역거부권’ 확대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나라다. 징병제 초기 ‘종교적 신념’에 의해서만 양심적 병역 거부가 인정됐다. 하지만 1965년 미 연방대법원은 ‘종교적 신념에 비견될 의미 있는 신념’에 따른다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미 연방대법원은 5년 뒤인 1970년에 종교적 신념 외에 윤리적․도덕적 신념도 모두 병역거부의 정당한 이유로 인정했다. 이로 인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였던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도 1971년 무죄를 최종 선고받고 감옥에 가지 않았다. 알리는 “나는 베트콩에게 아무런 원망도 없다. 그들은 나를 (흑인비하 표현인) ‘니거’라고 부른 적이 없다”면서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존 F. 케네디는 1960년대 초 대통령 재임 시기에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오늘날 전쟁 영웅들이 누리는 명성과 명예를 누릴 때, 비로소 전쟁은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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