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②] 오랜 처벌의 역사, 조금씩 보이는 변화의 조짐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10.2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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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대한민국 사람도 아닌데 왜 밥을 먹냐고 하면서 밥도 잘 안 주고 기합도 더 주고… 아예 인간취급도 안 했습니다. 그에 대한 구타는 수시로 벌어졌어요.”

-고 이춘길씨 폭행 사건 목격자 증언(대통령소속 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결정문) 

1976년 이춘길씨가 유치장에서 구타를 당하다 숨졌다. 고 이춘길씨가 유치장에서 당한 폭행을 목격한 수감자의 증언 속 이씨의 모습은 비참했다. 

 

2009년에서야 국가는 그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인정했다. 군 의문사위는 “종교적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과정에서 군 및 국가의 반인권적 폭력으로 사망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씨가 폭행 끝에 사망 한 지 33년이 지난 뒤였다.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였다.

 

 

일제강점기 최초의 병역거부자 처벌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오래 전부터 처벌 대상이다. 최초의 병역거부 처벌 사례는 77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1939년 6월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는 조선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 38명을 체포한 기록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병역 거부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사례가 있다. 

 

간간히 이어지던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은 군사 정권 이후 강해졌다. 1973년 1월 ‘병역법 위반 등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된 탓이 컸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입영 및 소집기피자로 분류돼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방식으로 1973~1993년까지 모두 4311명이 수감됐다. 

 

이때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다른 시기에 처벌받은 이보다 장기간 수감되기도 했다. 특별조치법 아래 ‘반복처벌’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법은 실형을 선고받은 이에게도 같은 혐의로 영장을 발부한 뒤 또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정춘국씨와 같은 피해자들이 발생했다. 정씨는 1969년부터 10개월 간 징역형을 살고, 다시 1974년부터 3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또 그 형기를 마치고 출소 하던 날, 다시 징집돼 징역 4년 형을 살았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총 7년 10개월 간 수감된 것이다. 

 

이 시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반인권적인 가혹행위도 이어졌다. 군 의문사위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김아무개씨 등 4명은 입대 이후 종교적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겠다고 밝힌 뒤 군 상급자의 구타와 물고문을 당해 숨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군은 이들이 훈련 중 졸도하거나, 단순히 자살했다며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1990년대, 권위주의 정권은 끝났으나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강한 처벌은 여전했다. 1994~2000년까지 7년 간 4058명에게 평균 징역 3년 이상이 선고됐다.

 

ⓒ 연합뉴스

 

2000년대 사회적 논의 활발해졌지만 처벌은 여전

 

2000년대 초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진다. 시발점은 2001년 12월 오태양씨가 ‘평화주의’를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공식 선언하면서다. 오씨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이 줄을 이었고, 2008년에는 의경 소속으로 복무하던 이길준씨가 경찰의 촛불집회 강제진압에 반대해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하며 또다시 언론의 재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법적 처벌은 여전했다. 오씨와 이씨도 각각 징역 1년 6개월씩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했다. 

 

최근에 와서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감옥행’만 제시했던 사법부에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2004년 서울남부지법에서 처음으로 무죄 판결이 나왔다. 최근 1년 간 각 지방법원에서 9번이나 무죄판결이 나왔다. 10월18일에는 항소심에서 첫 무죄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입장은 쉽사리 바뀌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2004년과 2007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유죄판결을 했다. 헌재도 2004년, 2011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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