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용산 개발 신기루 남겨진 도심 한복판 흉물
  • 배동주 시사저널e. 기자 (ju@sisajournal-e.com)
  • 승인 2016.10.26 17:07
  • 호수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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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이촌1구역 단독주택 노후도 92% 넘어…주민들 ‘안전 사각지대’에 방치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이촌동 203번지 일대) 재건축 예정 구역이 위험하다. 노후화된 건물마다 붕괴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재건축 연한 30년을 훌쩍 넘긴 노후주택이 국제업무지구 통합개발 사업 무산으로 방치된 이후, 다시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이곳 주민들은 인접 연립주택에 등을 맞댄 채 기울어진 건물과 마감재가 떨어져 속을 훤히 드러난 벽을 마주하는 게 일상이 돼 버렸다.

 

지난 1월 서울시가 용산 지구단위계획 결정안을 발표하면서 답보 상태에 놓였던 서부이촌동 재건축 논의는 재차 시동을 거는 모양새지만, 세월의 등에 올라탄 낡고 위험한 건물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당초 111층에 달하는 초고층 빌딩을 비롯해 주상복합아파트와 녹지공원을 조성하고 남산과 한강을 연결하는 통합경관축을 구축한다는 서울시의 계획이 수포가 되면서 주민들은 건물을 개·보수할 여력조차 잃었다. 2007년 개발 논의가 한창이던 시절 올랐던 집값이 도시개발구역 해제로 돌연 빚이 되어 돌아온 탓이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있는 한 건물의 벽면이 기울어져 옆 건물과 맞닿아 있어 위태로워 보인다. 오른쪽 사진은 재난위험시설 D등급 지정 안내 표지판 © 시사저널e. 이용우 기자

재개발 보상 계획만 믿고 빚내서 생활

 

2008년 서부이촌동 주민 중 다수는 서울시와 시행사가 제시한 재개발 보상계획을 믿고 대출을 받아 생활비로 사용했다. 또 몇몇은 사업계획 발표 이후 단독주택 기준 평당 거래가가 2억원으로 치솟자 집을 담보로 빚을 내 사업하는 자식들에게 건넸다. 서부이촌동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당시에는 자고 나면 집값이 올라 빚이 빚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촌시범아파트 59㎡는 2007년 2월 3억1000만원에서 같은 해 8월 6억원으로 무려 2배 가까이 뛰었다.

 

하지만 2013년 토지보상 문제에 따른 사업지체로 시행사인 드림허브PFV가 파산을 맞으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같은 해 10월 용산국제업무지구 도시개발구역도 해제됐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던 집이 손도 대기 싫은 흉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용산개발사업 시행사인 드림허브PFV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3년 당시 서부이촌동 2300가구 중 절반이 넘는 1250가구(54%)가 평균 3억5000만원의 빚을 진 것으로 집계됐다.

 

한때 8억원을 호가하던 단독주택 가격은 3억원 초반으로 내렸다. 아파트 매매가 역시 용산역세권개발 발표 전으로 돌아갔다. 주택담보대출 수억원을 받아 서부이촌동에 집을 산 투자자들은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손해를 감수하면서 집을 팔고 떠났다. 그리고 이곳엔 희망의 얼룩으로 너덜너덜해진 건물과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기가 버거운 고령의 주민만 남았다. 재건축 추진 구역 중 이촌1 특별계획구역에 거주하는 김아무개씨(여·81)는 “비가 오면 물이 새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지만, 이젠 참고 사는 수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서 “늙고 돈 없는 게 죄”라고 말했다.

 

서부이촌동 재건축 특별계획구역 중 중산시범에 해당하는 중산시범아파트는 단지 전체가 건물 안전도 검사에서 재난위험시설인 D등급 판정을 받았다. 이촌1구역 단독주택지역도 노후 건물 비중이 전체 건물의 92%에 달한다. 외벽에 금이 간 곳, 건물 옥상 난관이 도로 쪽으로 비스듬한 곳은 허다하다. 중산시범아파트에서 관리인으로 일하는 이정희씨(82)는 “외벽이 떨어져 내리거나 갈라지면 그때그때 서울시에서 나와 시멘트로 발라주지만 그뿐”이라며 “투자 목적으로 집을 샀다가 세를 준 곳은 더 엉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산시범아파트에서 세를 사는 한아무개씨(82)는 얼마 전 자비를 들여 배수관을 수리했다. 한씨는 “집주인이 집수리는 전혀 관심 밖”이라며 “살면 또 살아지니까 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촌1구역 초입에 있는 199-4번지 건물은 상층부가 옆 건물과 맞닿았다. 건물과 건물 간 이격이 90㎝가 넘는 하층부와 달리 아래에선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건물 내부로 향하는 초입엔 구조물 안전등급 D급 시설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이 시설물은 재난위험시설입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었다. 건축물 안전등급 D급 판정을 받은 시설은 신속히 보수·보강하면 기능을 회복할 수 있으나 결함이 지속되면 안전조치가 필요한 시설을 말한다.

 

용산구 서부이촌동의 한 주민이 좁아진 건물 간 이격을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e. 배동주 기자

용산구청, 오히려 재난위험시설 지정 해제

 

서울시는 노후주택지 일대를 준주거지역으로 상향하고 주민 스스로 일대 정비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했다. 준주거지역은 기존 일반주거지역보다 용적률 상한선이 높아 사업성을 개선할 수 있으니 이제부터 주민들이 주민 간 협의를 통해 재건축에 나서라는 뜻이다. 신축은 고사하고 매몰비용이 될 게 빤한 건물 보수나 보강은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199-4번지 건물의 소유주인 이아무개씨는 “기울어진 건물을 보수할 돈이 어디서 나겠냐”면서 “지금으로선 건물이 기울어지는 정도를 매일 눈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용산구청은 최근 해당 건물에 대해 재난위험시설 지정을 건물주에게 통보 없이 해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5월21일 ‘건물의 기울어짐에 따른 붕괴 위험’이라는 판정을 내린 이후 3년 만이다. 용산구청 건축디자인과 담당자는 “건물 안전이 개선돼 해제했다”며 “부착한 경고문을 미처 제거하지 못했을 뿐 건물은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건물 보수나 보강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3년 전보다 기울어짐이 더 악화했다는 주민 의견과 대조된다. 건물주인 이씨는 “2013년 11월 통합개발 무산 이후 박원순 시장이 찾아와 조속히 해결하겠다고 말해 줬다”며 “박 시장 말만 믿었지, 안전등급이 상향된 건 알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주민들은 건물이 붕괴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이촌1구역에 거주하는 홍주표씨(82)는 “이곳 건물 대부분이 1970년 붕괴한 마포 와우아파트 건설 시점과 맞물린다”면서 “당시 건축기술이 뛰어나지 않은 데다 무허가 주택 난립에 대한 대책으로 지어진 주택들이다 보니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는 건물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서부이촌동은 서울시가 1970년대 서울로 밀려드는 인구로 무허가 주택이 난립하자 이에 대한 대책으로 서민용 아파트를 지어 주택 공급에 나서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재건축 특별계획구역에 포함된 이촌시범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이촌시범아파트는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만들어졌다. 문성권 대구한의대 소방방재안전학부 교수는 “건물 안전은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는 사항”이라며 “건물이 기울어질 정도라면 사실 철거를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 될지도 모르는 재건축을 해결책으로 믿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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