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PD’ 1000명을 양성하겠다”
  • 고재석 시사저널e.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28 13:58
  • 호수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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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 인터뷰 “내 인생 최고의 캐스팅은 JTBC 손석희 뉴스룸”

“한국의 PD 역사는 주철환을 기점으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구분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경수 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의 말이다. 그 주철환이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됐다.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시가 2004년 문화예술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출연 설립한 재단법인이다. 예능 PD가 펼칠 문화행정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는 본지에 처음 밝히는 내용이라며 ‘문화 PD 1000명 양성론’을 숙원사업으로 내걸었다.

 

기자는 그를 만난 김에 JTBC에 대한 평가도 물었다. 주 대표는 중앙일보 방송제작본부장으로 영입돼 JTBC에서 편성본부장과 대PD를 지냈다. 그는 “내 인생 최고의 캐스팅은 JTBC 손석희 뉴스룸”이라며 자부심을 한껏 드러냈다. 주 대표는 친정 MBC의 최근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김태호 PD가 깨어 있다면 희망이 있는 것”이라며 후배들에 대한 신뢰를 나타냈다. 인터뷰는 10월13일 서울시 용두동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실에서 진행됐다.

 

© 고재석 제공

서울시 출연 재단이니 대표로서 서울시와 협조할 일이 많을 것 같다. 경력을 본다면 처음으로 ‘당국’과 대면하게 된 건데, 어려움은 없나?

 

그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존중해 줘야지, ‘저 사람 왜 저렇게 건조하지, 딱딱하지’라고 비난할 필요 없다. 이견이 있을 순 있다. 그럴 땐 설득해야 한다. 만일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데 저쪽에서 소홀히 한다? 그럼 생각을 해 봐야 할 거다. ‘내가 여기 잘못 왔구나(웃음).’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노량진에서 컵밥 먹는 젊은이에게 문화를 권할 수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문화는 어쩔 수 없이 복지와 함께 가야 한다. 일자리가 너무 없다. 맹자가 항산항심(恒産恒心)을 말하지 않았나. 어느 정도 경제기반이 있어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거다. 노량진에서 컵밥 먹는 청년에게 “저기 버스킹하고 있으니 음악 들으세요”라고 그러면 “저 지금 공무원시험 11월1일이거든요?” 이렇게 대답하지 않겠나. (물론) 노량진에서 공부하는 청년들이 문화적인 혜택을 원한다는 걸 (재단에서) 알면, 그들을 위한 음악회를 열 수도 있다. 혹은 그들에게 자신들이 겪은 ‘사회문제’에 대해 희곡을 써보라고 권할 수 있다. 그게 어젠다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가서 ‘여러분 어떤 문화 혜택을 받고 싶으세요?’라고 한다면 아마 그들은 화낼 거다. 즉 맥락을 짚어야 한다.

 

 

2009년 음반을 내고 가수로 깜짝 데뷔했다. 가수는 은퇴한 건가?

 

나는 가수가 아니라 생활음악인이다. 주말마다 동네 축구하는 아저씨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도전하는 건 아니지 않나. 거기서 건강과 친목, 자기 보람을 찾는 거다. 그런 걸 문화적으로 활성화시키고 싶다. 노량진수산시장에 있는 분들도 그들의 삶을 담은 뮤지컬을 만드는 거다. 얼마나 멋진가. 그럴 때 PD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래서) 1000명의 문화 PD를 양성하고 싶다. 가령 노량진수산시장에 PD 재능 갖춘 사람이 가서 취재와 연출을 하는 거다. 그 작품으로 ‘서울문화영상제’를 할 수도 있다. PD들이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전달하는 통신원이 될 수도 있다. PD는 본래 Producer Director의 약자다. 나는 Programer Designer라고 덧붙인다. 즉 문화 PD를 통해 문화 프로그래머, 디자이너를 만들겠단 거다. 은퇴 노인·고등학생·청년 모두 할 수 있다. 서울시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시키고 싶다. 이율곡은 ‘10만 양병설’을 주창했지만, 이루지 못했다(웃음). 임기동안 최소한 1000명을 양성할 거다.

 

(2013년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가 JTBC 보도담당 사장으로 내정되자 다수 매체는 ‘매형 주철환 PD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JTBC는 시사저널 ‘2016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조사에서 처음으로 매체신뢰도 1위를 차지했다. 손 사장은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부문에서 75.8%의 압도적 지목률로 1위를 12년째 지켰다.)

 

 

JTBC의 5년을 어떻게 보나?

 

만일 고 기자가 나에게 ‘PD로서 적재적소에 최고의 캐스팅을 했다고 생각한 인물이 누구냐’고 질문했다고 가정해 보자. 나의 대답은 ‘내 인생 최고의 캐스팅은 JTBC 손석희 뉴스룸’이다. 손 사장은 MBC에 1984년 1월1일 입사했다. 나는 그 직전 해에 들어갔다. 그가 내 처남이니 30년 동안 형제처럼 지낸 사이다. 나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그가 왔을까? 나는 그에게 JTBC에서 뜻을 펼칠 수 있다는 신뢰를 줬다. JTBC가 시사저널이 선정한 매체신뢰도 1위에 올랐다는 건 손석희의 영향력이다. 종편 개국 당시 ‘종편 5적’이라는 말이 돌았다. 그 안에 내 이름도 있었다. 나는 정치적인 의도를 1%도 갖지 않았다. 어릴 때 가장 재미있었던 채널이 TBC다. TBC를 부활한다는 플랜이 맘에 들었다. 지금은 (내 진정성을) 알아주는 거 아닌가. JTBC가 언론사로서 입지를 굳혔다고 본다. 뉴스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내가 일조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방송사 콘텐츠사업부 역할이 커졌다. 이 같은 변화가 PD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PD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된다. KBS에 정규 PD로 입사해서 자격을 갖춘 사람이니까 꼭 그가 해야 한다? 이제는 실력 있는 사람이 전문가지, 자격증 딴 사람이 전문가가 아니다. 다만 실력이 살아남기 위해서만 쓰인다면 정치논리·산업논리에 휘말리게 될 거다. 그게 철학의 부재다. PPL(간접광고) 많이 해서 수익을 올리는 게 목표라면 선정성·스타마케팅·폭력성 혐의를 다 뒤집어쓸 거다. 드라마에도 시대에 대한 문제제기와 어젠다 세팅을 담아낼 수 있다. (드라마 《프로듀사》를 예로 들면) 김수현 대사나 차태현과 김수현의 관계, 공효진의 작업환경을 그리며 사람들에게 문제의식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PD다. 그 사람이 실종됐다? 그러면 세상이 막 굴러가는 거다.

 

 

친정 MBC의 최근 모습은 어떻게 보나?

 

여전히 아쉽다. 《무한도전》 김태호 PD는 이제 문화권력자가 돼 있다. 김태호 PD가 깨어 있다면 희망은 있는 거다. 또 《라디오스타》 《복면가왕》 PD가 깨어 있으면 된다. 지금 MBC가 전체적으로 무너지거나 흐트러지는 느낌을 주더라도 말이다. 지진이 나도 복구하지 않나. 희망은 결국 사람이다. 거기 있는 사람이 PD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면 된다.

 

 

KBS가 제작사 ‘몬스터 유니온’을 만들었다. 독립제작사 측에서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와 같다”고도 날을 세웠다.

 

KBS라는 기득권 덕에 기회를 독점·선점한다? 그건 정의사회가 아니다. (그럼) KBS가 지금 왜 그렇게 할까 생각해 보자. 최근 재방송이 너무 많더라. 예전에는 《용의눈물》 등 정통사극에 돈을 많이 썼다. 요새는 ‘팩션(faction) 드라마’라면서 말은 그럴듯하게 한다. (하지만) 결론은 돈을 적게 쓰겠다는 거다. 제일 ‘KBS스럽지’ 않은 게 ‘일일드라마’다. 너무 저예산이다. 저예산이어도 얼마든지 아이디어 넣어서 연출할 수 있다. 그런데 제목만 바뀌지 항상 똑같은 얘기다. 삼각관계·신데렐라·출생의 비밀, 조금 식상하다 할 때는 시한부 생명(탄식). 일일드라마는 10년 동안 동어반복을 하고 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생활정보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전파는 국민 재산인데 저렇게 쓰여도 되나. KBS만의 문제가 아니라 MBC·SBS 다 마찬가지다. 안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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