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곧은소리] 권력형 비리와 사이비 종교의 끔찍한 만남
  •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01 09:45
  • 호수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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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 철저히 진상 규명하고 책임자 엄벌해야

나는 최순실씨가 한국 국민에게 큰 깨달음과 지혜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최씨로 인해 우리의 대통령이 얼마나 한심하고 본질적으로 멍청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우리는 한국 대통령이 바보가 되어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됐다. 최씨의 태블릿 파일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진실은 우리의 얼굴에 펀치를 날린다. 그 힘은 학자의 논문과 언론인의 칼럼을 훨씬 뛰어넘는다.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의 말이 맞다. 우리는 ‘봉건시대’에 살고 있다. 최씨가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 지 나흘 만에 사실로 드러났다. 그 후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JTBC는 최씨가 사용하던 태블릿에서 박 대통령의 연설문 44개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선출되지 않은 비선 실세가 국정운영을 좌우하면서 민주주의와 공화국의 가치를 짓밟았다.

 

최씨의 측근 고영태씨는 “최씨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연설문 고치는 일”이라는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대통령의 옷을 골라주고 선물을 바치는 수준이 아니었다. 국무회의 안건, 정부 인사, 경제정책, 외교안보정책까지 개입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났다. 대북 비밀 접촉 등 국가기밀을 미리 알고 있을 정도이니 국기문란에 해당된다. 더욱이 최씨의 막대한 재산 형성과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특혜 입학에 대한 의혹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에 근무했던 박관천 전 경정의 발언이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박 전 경정은 “우리나라 권력 서열은 최순실씨가 1위, 정윤회씨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최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는 박 대통령 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청와대의 ‘문고리 3인방’을 추천한 사람이다. 박 전 경정은 방송 인터뷰에서 “박지만 회장이 ‘누나가 최순실과 정윤회 이야기만 나오면 최면이 걸린다’고 토로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회원들이 10월28일 청와대 부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독립적 특별검사와 거국중립내각 필요

 

박 대통령은 “최씨는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줬던 사람”이라며 95초 사과문을 읽고 쫓기듯 사라졌다. 그것마저 생방송이 아니라 녹화방송으로 보여주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다른 한편 최씨는 독일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하며 “박 대통령의 심정 표현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최씨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회에서 “박 대통령도 피해자”라는 황당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최씨 감싸기’는 도를 넘어섰다. 박 대통령은 최씨가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미르·K스포츠재단은 “재계 주도로 설립된 재단”이라며 “의미 있는 사업에 도가 지나친 인신공격성 논란”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명백히 검찰에게 수사 가이드라인을 명령한 것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이 이틀 만에 800여억원의 기금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재벌 대기업에 직접 전화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박 대통령과 최씨의 태도에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거리에 나오고 있다. 대학교수들도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가두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다. ‘최순실 게이트’는 대형 권력형 부정비리 사건이 되었으며 사실상 국정마비 사태를 초래했다. 청와대는 자체 조사조차 하지 않고 민정수석실은 손을 놓고 있다. 박 대통령은 공식 회의를 소집하지 않으며, 황교안 국무총리는 “공직자는 신중하고 자중해야 한다”는 허공에 쏟아내는 독백 같은 말을 늘어놓았다.

 

검찰은 초기에 미르·K스포츠재단 사건을 특수부가 아닌 형사8부에 맡겼다.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 개인 비리 사건으로 다룬 것이다. 검찰의 늑장 수사로 최순실·정유라·차은택 등 주요 수사 대상자들은 해외로 도주했다. 증거물은 텅 빈 사무실에 남은 곰탕·김·커피믹스뿐이다. 최근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설치는 뒷북을 치는 격이다. 이제 검찰이 수사를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는 무너졌다.

 

국회가 나서야 한다. 여당과 야당은 하루빨리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정조사와 특검 발동에 합의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해서는 안 된다. 현행 상설특검법 대신 개별 입법으로 대통령은 배제한 채 특검을 임명해야 한다. 박 대통령도 국회의 국정조사와 특검에 성실하게 응답해야 한다. 국회의 국정조사와 특검은 권력형 비리와 불법 행위에 대해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벌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이 아니다. 한국 헌법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유치하고 황당한 쿠데타에 의해 전복됐다. 박 대통령의 공식 사과는 사실상 자신의 행위가 헌법과 법률에 위반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권력형 비리의 책임을 지고 청와대 비서실장과 ‘십상시’는 모두 사퇴해야 한다. 국무총리와 모든 장관도 사퇴해야 한다. 비리 의혹 제기에 “유언비어 의법 조치”로 협박했던 황교안 국무총리는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새로운 총리는 국회의 공동 추천을 받아 임명하고,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조속히 국회 3당은 거국중립내각 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

 

 

러시아 괴승 라스푸틴의 한국판이 만든 비극

 

러시아 제정 말기 수도승 라스푸틴은 나라를 흔들었다. 신비주의적 최면요법으로 러시아의 차르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 비선 실세가 됐다. 라스푸틴은 황태자의 혈우병을 기도로 치료했다고 주장했다. 라스푸틴을 몰아내려던 스톨리핀 총리는 의문의 암살을 당했다. 그는 무단으로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해 러시아 제국의 몰락을 촉진했다.

 

박 대통령과 최씨의 부친 최태민 영생교 교주의 관계에 대한 논란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일제 순사 출신 최태민은 불교·기독교·천도교를 통합한 영생교를 창립하고 ‘영혼합일법’이라는 최면술도 활용했다. 그 후 최태민은 어머니를 잃은 박 대통령에게 접근했다. 최태민은 스스로 대한구국선교회 총재가 되고 박 대통령을 명예총재로 추대했다. 최태민은 더욱 대담해졌다. 자신이 만든 새마음봉사단 총재를 박 대통령에게 맡겼다. 단국대 청강생이었던 최씨의 딸 최순실을 전국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장에 앉혔다. 최씨 가족은 독재 권력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재했다.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가 ‘신정정치’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최태민의 영적 후계자인 최순실과 ‘심령대화’를 했다는 말도 나온다. 박 대통령 취임식 때 광화문 광장에 오방색 주머니가 등장한 것도 최씨의 작품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갑자기 ‘북한 붕괴론’을 주장한 것도 최씨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까지 나온다. 최씨가 “2년 안에 북한이 붕괴한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만약 대통령이 종교적 예언에 현혹돼 외교와 안보정책을 결정했다면 정말 끔찍하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정치권과 언론이 모두 ‘최순실 게이트’로 휩쓸리면서 정말 중요한 국정 의제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위기·청년실업·비정규직·노인빈곤·아동보육·빈부격차 등 국민의 관심사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권력형 비리에 국민이 실망하는 동안 국민의 고통을 돌보는 사람이 없는 상황은 안타까운 일이다. 괴승 라스푸틴이 제정 러시아를 망칠 때 민란과 혁명이 일어났다는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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