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주유소보다 리터당 400원 비싼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의 비밀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11.01 10:42
  • 호수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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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전국 주유소 1만1840개 전수조사 ‘유가 안정화’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 오히려 기름 값 더 비싸

“저래도 장사가 될까?”

서울 성북구에 사는 구성모씨(36)는 매일 출근길에 위치한 주유소를 보면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서대문구 방면으로 북악터널을 지나자마자 오른쪽 길가에 보이는 두 주유소는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 그런데 두 곳의 휘발유 값은 무려 리터당 400원 가까이 차이가 났다. 두 곳 모두 자동세차를 제공하는 등 서비스 면에서도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불과 몇 십원이라도 더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가는 마당에 400원가량 더 비싼 기름을 넣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지나갈 때마다 비싼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사람이 있는지 쳐다보는 것도 습관이 됐다.

 

매일 지켜보다 보니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을 발견했다. 어느 날 깔끔해 보이는 입간판이 생겼다. 빨간색 바탕의 입간판에는 ‘공공기관 유류공급 지정 주유소’라고 적혀 있었다. 구씨는 충격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비싼 기름 값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고 여겨졌다. 가끔 비싼 주유소를 이용하던 검은색 고급 승용차들이 고위직 공무원의 차량일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구씨는 저런 비싼 주유소에서 국민의 혈세가 펑펑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때부터였다. 구씨는 운전을 하고 갈 때마다 주유소의 빨간색 입간판을 찾았다. 가끔 등장하는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들은 어김없이 주변 주유소보다 기름 값이 비쌌다. 인터넷을 뒤져봤다. 인터넷 블로그에는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의 비싼 기름 값에 의문을 갖는 글이 넘쳐났지만 그 이유를 찾아볼 순 없었다. 구씨는 시사저널에 이 같은 현상의 문제를 파악해 달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 일러스트 정찬동


리터당 평균 54.4원 더 비싸

 

시사저널은 1차적으로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주유소 중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의 휘발유 값을 조사해 봤다. 용산구에는 9곳의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가 있었다. 9곳의 리터당 평균 휘발유 값은 무려 1921원. 용산구에 위치한 다른 주유소들의 평균 휘발유 값(1801원)보다 120원 비쌌다. 같은 날 서울 평균 휘발유 값(1530원)과는 400원 가까이 차이가 났다.

 

곧바로 전국 주유소 1만1840개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매일 기름 값이 변한다는 점을 감안해 10월24일 오전 9시를 기준으로 잡았다. 한국석유공사에서 운영하는 기름 값 정보사이트 ‘오피넷’의 도움을 받았다. 이후 1857개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를 하나씩 체크해 가며 통계를 냈다.

 

전수조사 결과,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의 리터당 평균 휘발유 값은 1463.97원이었다. 비지정 주유소(1409.57원)보다 54.4원 더 비쌌다. 제주특별자치도를 제외한 전국 16개 광역시·도에서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의 휘발유 값이 비지정 주유소에 비해 비쌌다. 기름 값이 제일 비싼 서울에서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와 비지정 주유소 간 리터당 가격 차이가 87.11원으로 가장 컸다. 이어 대전(70.37원)·울산(66.59원)·부산(59.49원) 순이었다. 공공기관이 밀집한 도시 지역이 상대적으로 농촌 지역보다 가격 차이는 더욱 큰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는 통계의 함정도 숨어 있다. 농촌 지역이 가격 차이를 상쇄하는 역할을 했다. 공공기관이 없는 농촌 지역에선 공공기관 지정 여부와 상관없이 비슷한 가격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광역시·도별로 휘발유 값 상위 100개 주유소를 산정한 뒤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의 비율을 분석했다. 주유소가 많지 않은 제주와 세종시를 제외한 전국 15개 광역시·도의 기름 값을 비교해 보니 휘발유 값 상위 100위 주유소 가운데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의 비율은 평균 39%로 나타났다. 특히 전라북도와 강원도에선 100곳 가운데 61곳이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였다. 전국 주유소 가운데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 비율이 15.7%인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상대적으로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들이 비싼 가격을 산정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공공기관이 밀집한 지역에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극심하게 벌어졌다. 한국방송공사·증권거래소·금융감독원·산업은행 등 다수의 공공기관이 밀집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는 5개의 주유소가 위치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비싼 휘발유 값을 받는 곳은 Y주유소였다. SK네트웍스 직영으로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였다. 한때 전국 최고가를 자랑했던 국회 정문 앞의 K주유소보다 리터당 휘발유 값이 250원가량 더 비쌌다.

 

육군·해군·공군 등 3군 본부가 위치한 충남 계룡시에는 7개의 주유소가 있다. 이 가운데 유일한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인 S주유소의 리터당 휘발유 값은 1607원이었다. 나머지 6곳의 주유소 휘발유 값이 1300원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극명히 대비됐다. S주유소의 경유 값 또한 1467원으로, 다른 주유소 평균값(1193원)보다 274원 높았다.

 


지정 제도로 기름 값 오히려 올라

 

왜 정부는 공공기관에 더 비싼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라고 하는 것일까. 정부는 2012년부터 ‘차량용 유류 공동구매’ 제도를 도입했다. 주유업계의 경쟁을 촉진해 기름 값을 안정화시키겠다는 취지였다. 2012년 GS칼텍스와 계약을 맺었다가 2015년 SK네트웍스로부터 공급을 받고 있다. 2015년 12월부터 3년간 약 4억5000만 리터, 5300억원 규모의 유류를 구매하기로 했다.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자신이 조달청장으로 재직할 당시 도입한 제도라며 예산 절감에 기여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문제는 정책 목표와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 제도는 당초 ‘유가 안정화’라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기름 값을 올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유류는 조달청에서 공급하는 다른 물자와 달리 매일 시세가 변한다. 때문에 조달청이 계약을 맺은 이후 각 주유소마다 시세를 조정할 수 있다. 특정 시점에 일정량을 구매해 보관하다가 공급하는 석유 비축제도와는 차이가 있다. 한마디로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로 등록한 뒤 가격을 올려 비싼 값에 파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정부가 비싼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다고 해서 더 많은 세금이 들어가진 않는다. 현장 할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SK네트웍스로 공급자를 바꾸면서 현장 할인율을 3.99%에서 5.74%로 끌어올렸다. 서울을 기준으로 분석해 보면,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의 휘발유 리터당 평균값 1596원을 적용해도 92원 정도 할인된다. 비지정 주유소의 평균값 1509원과 거의 비슷한 셈이다.

 

다만 정부가 기대한 할인폭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는 유종별로 리터당 53원에서 87원까지 할인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통해 수백억원의 세금을 아낄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분석 결과, 기대 효과는 크지 않았다.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와 비지정 주유소 간 휘발유 값 차이가 리터당 평균 54.4원인 점을 감안하면 약 30원 할인받는 수준에 불과했다. SK주유소와 제휴를 맺은 신용카드를 이용했을 때 50~150원가량 할인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할인 효과는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다르다. 해당 주유소를 이용한 시민들은 더 많은 돈을 내고 기름을 넣게 된다. 정부가 기름 값을 낮추려고 도입한 제도 때문에 오히려 더 비싼 값에 사게 된 셈이다. 제도가 도입될 당시 정유사들이 공공부문에서 줄어든 마진을 민간부문에서 되찾으려 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에 대해 조달청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유류 이용 실적은 전체 주유소 소비물량의 0.3%에 불과하다”며 “공공기관 이용 실적 때문에 가격을 올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존 가격 유지하면 손해 보는 구조”

 

협약을 맺은 주유소들은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라는 점이 고객에게 신뢰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 관계자는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가 다른 일반 주유소와 크게 품질 차이는 없겠지만 적어도 공공기관이 이용하는 곳에서 가짜 석유나 정량을 속이지 않을 것이란 신뢰를 줄 수 있다”며 “가격이 차이 나는 것은 주유소 입지나 셀프 주유소, 직영 여부 등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주유소의 기름 값은 입지나 직원 수, 임대료, 서비스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 임대료가 비쌀수록, 자동세차 등 서비스가 많을수록 기름 값은 올라간다. 반대로 셀프 주유소 등은 인건비가 줄어 기름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하지만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로 협약을 맺는다고 해서 원가가 올라가진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바로 5.74%의 할인율에 있다. 주유소 마진보다 더 많이 할인해 줘야 하는 구조다. 가격을 유지하면 손해를 보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휘발유의 가격 구조를 분석해 보면 정유사에서 공급받는 원가는 563원이다. 여기에 교육세·교육세·주행세 등 875원가량의 세금이 붙는다. 대리점이나 주유소의 판매마진은 112원에 불과하다. 통상 주유소는 여기에서 시설 감가상각비, 운영비 등을 제외하면 리터당 50~70원의 마진을 남긴다. 이 같은 상황에서 80~90원을 할인해서 팔 경우 손해를 보는 시스템이다.

 

서울의 한 공공기관 주유소 관계자는 “계속 (정유사 측에서) 요청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긴 했지만 기존 가격을 유지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1월에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로 협약을 맺은 다음에 가격을 50원가량 올렸다”고 밝혔다. 그는 “가격을 올린 뒤 주변 주유소에 비해 가격이 비싸 항의도 많고 손님도 줄었다. 손해를 보고 팔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10월20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주유소 두 곳의 휘발유 값이 리터당 379원이나 차이 났다. © 시사저널고성준

10월20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주유소 두 곳의 휘발유 값이 리터당 379원이나 차이 났다. © 시사저널고성준

 

정부 “대책 마련하겠다” 약속

 

때문에 주유소들조차 공공기관 유류공급 지정 주유소로 협약 맺기를 꺼리고 있다. 공공기관 유류공급 제도를 담당하고 있는 조달청은 2015년 SK네트웍스와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를 올해 상반기까지 3000개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10월 현재 1800여 개 주유소만 협약을 맺은 상태다. SK에너지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는 주유소가 3700여 개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절반 이상이 협약을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공공기관 유류공동구매 제도는 과거 이명박 대통령의 불호령에서 시작됐다. 이 대통령은 장관들 앞에서 기름 값을 잡을 구체적인 방도를 찾으라고 요구했다. 이에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기름 값 인하 대책을 내놓을 때 포함됐던 방안이다. 이후 전국 4만4000개 공공기관에 지정 주유소에서 유류를 구매하도록 강요했다. 이용 실적을 높이기 위해 지정 주유소에서 유류를 많이 구매한 공공기관이나 직원에게는 반기별 포상도 줬다.

 

하지만 당시와 상황이 달라졌다. 국제적인 저유가 행진 속에 기름 값은 하한선까지 내려왔다. 900원 가까운 유류세를 고려하면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었다. 주유소들은 출혈 경쟁을 벌였다. 정부에서 내놓은 알뜰주유소는 인하 경쟁을 부추겼다. 이후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간 2886곳의 주유소가 휴·폐업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더 이상 인하할 여력이 없어진 셈이다.

 

다행인 점은 정부도 이 같은 상황 변화에 적극적인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언급한 점이다. 유류공동구매 제도를 담당하는 조달청 관계자는 주유소 유가 전수조사 결과를 설명한 뒤 해명을 요구하자 “애초 기름 값을 낮추겠다는 좋은 취지로 만들었지만 상황 변화 등으로 공공기관 지정 주유소가 더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며 “지정 주유소가 아니더라도 더 싼 주유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에 권고할 계획”이라고 답변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SK네트웍스와 맺은 계약을 일방적으로 철회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추후 계약 만료 시점이 다가올 경우 다각적인 평가를 통해 제도를 유지할지 재검토하겠다”며 “국민의 혈세가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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