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식자로 군림하는 예술계의 ‘절대甲’들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01 11:13
  • 호수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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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들의 성추문 시한폭탄 결국 터져… ‘예술가는 원래 일탈하는 존재’ 낭만적 예술관도 한몫

예술계가 희대의 연쇄 성추문에 휩싸였다. 출발은 《은교》로 유명한 박범신 작가였다. 전직 출판사 편집자라는 여성이 SNS를 통해, 과거 술자리에서 박범신이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고 폭로했다. 출판사 관계자와 방송작가·팬 등이 함께한 술자리였는데, 박범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박 작가가 성희롱 발언을 하고 신체접촉까지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석했던 방송작가와 팬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자신들은 박 작가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그날도 오랜만에 만나 반가움의 표시로 포옹 등을 하고 편하게 대화한 것인데, 일방의 시각으로 성범죄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진실공방이 시작됐다.

© 일러스트 김세중

 

한예종 교수들 성희롱성 발언 폭로까지

 

 

여기까지만 해도 각 사건의 사실관계와는 별도로 추문이 터졌다는 그 자체만으로 충격적이었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바로 연이어 일민미술관 함영준 큐레이터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이 등장했다. 그 여성은 피해자들이 더 있다고 주장했다. 함씨가 평소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문화 지식인이었기 때문에 더욱 파장이 컸다. 바로 이어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가 기획전 참여를 미끼로 성추행을 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문학계에서 시작한 성추문이 미술계까지 이어진 것에 사람들이 충격을 받을 즈음,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들이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는 폭로가 터지며 학교로까지 추문이 번져갔다. 여학생에게 ‘남자친구랑 잤느냐’는 등의 성적인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술계 종사자라는 사람이 ‘여러 공공기관에서 일했던 몇몇 큐레이터’들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했고, 여성 디자이너와 디자인 전공 학생 150여 명은 ‘그래픽 디자인업계 종사자들께 묻습니다’라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하며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추행이 비일비재하다’고 주장했다. 곧이어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의 배용제 시인, 문학 강좌 수강생에게 ‘너 섹시하다. 나랑 자서 네 시가 좋아진다면 나랑 잘래?’라고 했다는 이준규 시인 등 20여 명의 문인들, 그리고 A씨·B씨 등 다수 미술인들에 대한 폭로가 나오며 혼돈 국면으로 진입했다.

 

통상적으로 이런 종류의 사건은 크게 이슈가 되면서 제보들이 잇따라 사건의 거대한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엔 사태 초기에 잠깐 이슈가 됐을 뿐, 현재 나라 전체를 대혼돈에 몰아넣은 ‘최순실 게이트’에 묻혀 곧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쏟아진 폭로가 이 정도다. 최순실 게이트만 아니었다면 문화계 성추문이 크게 조명을 받으면서 엄청난 양의 제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현재까지 나타난 것만으로도 그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분량이고, 이것은 각각의 사건 진상과는 별개로 우리 예술계에 큰 문제가 있다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우리 문단에 ‘시민’ 이하의 일들 자주 벌어져”

 

예술계에서는 터질 일이 터지고 말았다는 반응이다. 성추문을 비롯한 온갖 ‘갑(甲)질’ 문제가 언젠가는 터질 시한폭탄이었다는 것이다. 갑질은 갑의 권력이 강할수록, 그리고 그렇게 강한 갑의 권력을 감시하거나 견제할 힘이 약할수록 크게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문화예술계야말로 갑질이 크게 나타날 최적의 토양이었다는 지적이다. 유명 작가, 예술계 교수, 큐레이터 등이 우리 사회에서 대단한 권력자는 아니다. 사실 유명 시인이라고 해봐야 문화예술계를 벗어나면 문화센터 강사 정도나 할 영향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권력자 등 이른바 ‘슈퍼갑’들에 비해 감시의 시선이 별로 따르지 않는다. 운신이 자유로운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활동하는 문화예술계라는 좁은 세계 안에서 이들은 절대갑이다. 이 세계는 학생이나 작가 지망생, 신인 작가, 유명 작가를 섭외해야 하는 출판사 등의 직원, 작가의 팬 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유명 작가·교수·큐레이터 등이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특히 지망생과 신인의 입장에선 높은 사람들에게 밉보일 경우 자신의 장래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에 힘 있는 사람 앞에서 절대적 약자의 처지가 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유명 작가·교수·큐레이터 등이 감시나 견제를 받지 않는 절대강자·포식자로 군림하는 것이다. 최근 성추문이 터지기 이전에 김현 시인이 우리 문학계에 성폭력과 여성혐오가 빈번하다고 하자, 한 문학 평론가가 “우리 문단에 ‘시민’ 이하의 일들이 자주 벌어졌다”고 말했었다. 봉건적 권력관계 속에서 시민사회의 기준으론 용납될 수 없는 부당행위가 범람해 왔다는 뜻이다.

 

이런 일들이 그동안 문제가 되지 않은 건 모두가 침묵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장래를 망칠까봐, 그리고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낼 창구가 없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엄격해지고, 피해자를 지지해 줄 여성 커뮤니티가 활성화됐다. 결정적으로 피해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SNS가 생겨났다. 이렇기 때문에 고발이 잇따르는 것이다. 피해자가 아닌 동료나 제3자가 침묵했던 건 성폭력과 갑질에 대한 둔감함과 함께 예술가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원래 일탈(逸脫)하는 존재’라는 낭만적 예술관이다. 조선시대부터 예인들은 당연히 일탈해 왔고, 현대에 들어와선 성적 일탈이 사회적 억압에 대한 저항이라는 의식까지 생겨났다. 예술은 일종의 치외법권지대로 모든 규범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욕망을 드러내야 한다는 의식도 생겨났다. 예술가의 일탈에 관대한 시선 때문에, 한 예술계 교수가 대학원 여학생에게 술자리에서 뽀뽀를 하는데도 주위에서 예술인의 기행(奇行) 정도로 치부하고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구조가 SNS 폭로로 깨지는 것이다. SNS와 시민의식의 각성, 그리고 여성 커뮤니티의 발달로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달라진 세상에서도 ‘예술귀족’들이 과거의 행태를 버리지 않는다면 더욱 많은 폭로가 이어질 것이란 게 문화예술인들의 우려다. 다만, 폭로가 ‘묻지마 여론재판’으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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