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킹도 중요하지만 내실을 다지는 게 우선이다”
  • 미국 워싱턴DC=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11.02 10:12
  • 호수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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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한국학 현장을 가다-④] 인터뷰│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한국석좌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한국을 다루는 정책연구소는 각국 정부에 ‘로비(lobby)’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역할이 있다. 바로 한국을 제대로 이해시키는 것이다.”

학문으로서의 한국학만큼이나 중요한 게 정책적 차원에서의 한국학이다. 정책적 측면에서 세계인에게 한국에 대한 이해를 고취시키고 세계 속에 한국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곳이 정책연구소다. 9월 미국 워싱턴DC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프레스룸에서 만난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한국학을 다루는 정책연구소의 역할은 한국의 국익을 위해 로비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근본적으로 세계 속에 한국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빅터 차 교수는 미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국장이었으며, 부시 행정부 때 백악관에서 대북 정책을 담당하며 대북 문제에 대해 부시 대통령에게 가장 최측근에서 조언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고 알려졌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한국석좌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 시사저널 김경민

 

정책연구소의 가장 큰 역할은 무엇인가.

 

국제전략문제연구소와 같은 지정학에 기반한 정책연구소에는 지역전문가들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다루는 국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국제 안보, 방위 정책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 이를 토대로 정책적 제언까지 하는 것이 목표다.

 

각국 정책 결정자 및 언론 일반에 한국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와 분석을 제시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이해를 고취시키려는 게 제1의 목표다. 정책연구소는 각국 정부와 학계 사이의 통로 역할을 하기도 하며 때론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럼 한국학을 다루는 정책연구소는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한다고 볼 수 있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미국에 있는 정책연구소는 기본적으로 미국 기관이다. 미국의 정책연구소에서 나온 결과물은 미국 정부 또는 의회에서 한반도 및 동아시아와 관련된 정책 결정이 이뤄질 때 참고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이런 정책연구자들을 특정 국가를 위해 활동하는 ‘로비스트’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책입안자들의 해당 국가에 대한 정책 결정 과정에 개입하고 이것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편향된 연구결과를 생산하거나 여론을 조성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시각이다.

 

하지만 로비는 결코 정책연구소의 목적이 될 수 없다. 한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를 고취시키기 위함이 크다. 미국 대중들은 한국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가 낮다. 한국이란 국가를 알고는 있을지 몰라도 남한과 북한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이런 인식의 수준은 미 의회의 관료라고 다를 바 없다. 따라서 한반도와 관련된 미국의 정책을 결정할 때엔 이에 대한 전문가의 조언과 분석 자료가 필요하다. 그것을 제공해 주는 게 정책연구소다.

 

 

미국 대중들과 관료들이 한국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게 왜 중요한가.

 

한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의 깊이가 얕다는 것은 곧 해당 국가에 대한 미국의 판단이 상황에 따라 급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케이팝 스타의 공연을 보면서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호감을 가지다가도 뉴스에서 한국 시민들이 격하게 길거리 시위를 하는 장면을 보면 빠르게 돌아설 수 있다. 한국의 대외인지도, 나아가 신뢰도가 외부 요인에 따라 손쉽게 휩쓸릴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외이해도를 높이는 것 이외에 정책연구소가 수행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한국에 관심이 있는 외국의 정치인·기업가 그 밖의 행위주체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미국의 회사들이 한국에 투자를 하고자 할 때 신빙성 있게 물어볼 곳이 필요할 테니까. 과거에 비하면 미국의 대학과 연구기관에 한국학을 접할 수 있는 인프라가 많이 조성됐다.

 

 

주요 정책연구소들은 한 국가의 수도나 주요 도시에 있는 경우가 많다. 정책연구소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다하기 위해 인적 네트워킹이 중요하기 때문인가.

 

물론 어느 영역에서나 네트워킹은 중요하다. CSIS와 같은 정책연구소처럼 수도에 위치해 있으면 좋은 점이 많다. 주요 인사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시간적·공간적으로 세이브 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또 정보를 구하는 데 있어서도 장점이 있다. 어느 나라나 수도에 가장 많은 최신 정보가 모이지 않나.

 

다만 네트워킹이 전부는 아니다. 그보다 선행돼야 할 것이 내용이다. 내가 운 좋게도 정책연구 영역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네크워크가 훌륭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연구자로서 쓰고 적은 논문과 칼럼 때문이었다. 그게 주요 정책결정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한·중·일 동아시아 3국 가운데 한국 정부의 정책 전문가 육성 노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한국 정부는 KF(한국국제교류재단) 설립 이후 정책연구소 지원 분야에 많은 노력을 쏟아왔다. 해외 한국학 사업 예산 가운데 일부를 꾸준히 이 분야에 투자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규모 면에서 중국과 일본에 밀리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경제력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3국 가운데 일본이 가장 먼저 워싱턴DC에 정책연구소를 세워 관리해 왔다. 그만큼 일본학에 대한 투자의 역사가 길다. 중국은 비교적 최근부터 이 영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워낙 자금의 규모가 크다.

 

 

정책적 측면에서 한국학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차세대 리더를 육성하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과업을 이어갈 인적 풀(pool)을 확보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시급하다. CSIS도 KF와 손잡고 차세대 정책전문가 네트워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학자들과 정책연구자들 사이에 교류의 창을 열어주고 학자들 스스로 자신의 연구 성과를 정책적 함의(含意)와 연결시키는 훈련을 한다. 이와 더불어 미디어 대응방법 등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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