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박근혜 대통령은 왜 공공의 적이 됐나
  •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0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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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점점 증폭되고 있다. 국가 기밀문서 유출과 비선 실세라는 논란을 떠나 대통령으로서 자격과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이 지난 4년간 우리나라를 이끌어온 사실을 국민들은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1997년 국가부도를 몰고 온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IMF 사태와 2005년 전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태를 넘어선 느낌이다. 이미 대학가와 시민단체에서는 시국선언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여전히 이번 사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대선에서 치열하게 대립했을 때 새누리당에서 강조한 프레임은 ‘안정 세력 대 불안정 세력’의 대결이었다. 지난 10년간 대통령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박근혜 후보와 참여정부 시절 5년간 국민에게 끊임없이 불안정한 모습만 보여준 문재인 후보 중 누구를 선택하겠느냐는 것이 당시 대선의 프레임이었다. 그리고 이 프레임은 결과적으로 중장년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내는 기폭제가 됐다. 그러나 대통령은 1998년 보궐선거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20년 가까이 자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가장 불안정한 리더라는 점을 결국 전 국민 앞에 보여주고 말았다. 국민들이 ‘최순실 게이트’라고 부르지 않고 ‘박근혜 게이트’라고 이 사건의 본질을 규정하는 이유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비선 파문은 이미 수많은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역대 정권에서도 매번 반복됐던 사례였다. 청탁을 하면 패가망신을 시키겠다고 공언해서 중산층과 서민의 높은 지지를 받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결국 형의 지속된 청탁과 이권 개입을 막지 못해 참여정부 시절 초라한 마침표를 찍고 말았다. 재계도 비선 논란에서 결코 예외는 아니다. 모 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 곡선을 이어 나가자 그룹 기획실을 통해 새로운 신사옥 건설을 모색했으나 알 수 없는 비선에 의해 설득 당한 회장이 신사옥 이주를 갑자기 포기한 적도 있다. 아울러 모 제약사의 회장은 성과가 계속 부진을 거듭하자 수많은 컨설팅 보고서와 내부 문제 분석 보고서를 뿌리치고 자신이 평소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 역술인에게 해당 문제를 의뢰해서 회사 사명(社名)이 문제라는 조언을 듣고 회사 업무 프로세스가 아닌 회사 이름만 뜯어고쳐 직원들로부터 원성을 들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처럼 비선 실세 파동에 의해 국민들의 공개적인 비판과 비난에 시달렸던 기업도 있다. 바로 동양그룹이다. 3년 전 동양그룹은 그룹 전략기획본부의 보고서를 토대로 의사결정을 진행했던 현재현 회장과 비선 조직을 통해 보고 받는 이혜경 부회장의 의견 충돌로 매번 수많은 문제를 낳았고 이혜경 부회장 뒤에 그림자 실세라고 불리는 사람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서 그룹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소문을 낳았다. 나중에 밝혀진 사람은 동양그룹 내 그림자 실세, 이른바 비선이라고 알려진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였다. 그 역시도 지금의 최순실과 같이 불분명한 경력과 전문성이 부재한데도 불구하고 오너 일가의 최측근이자 숨은 실세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결국 검찰에 의해 구속됐다.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의 장남 멘토까지 담당했기에 30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50대 이상의 사장급들을 종종 무시해왔다.

 

이처럼 비선 실세에 휘둘리는 경우는 주로 재계에서 오너라고 불리는 회장들에게서 종종 발생한다. 박근혜 대통령처럼 주변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측면이 강하고 공식적 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떠날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자신에게 보여주고 있는 충성심을 깊이 신뢰하지 않는 면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직 구성원들과 수평적인 토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감히 네 따위가 어디 내게 조언하느냐’는 식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자신과 오랜 기간 가깝게 지냈던 역술인, 전문성은 부재하지만 화려한 언변의 소유자에게 쉽게 흔들린다. 인간관계 자체가 협소하다 보니 의외로 그들의 달콤한 속삭임에 현혹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와 같이 전문성이 부족한 비선에 의해 조종당했으면서도 지금까지 일체의 사과를 국민들에게 구하지 않고 있다. 최순실이라는 여성에게 기본적인 도움을 받았다고 했을 뿐 정치 현안에서 최순실 일가가 어디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그리고 최순실이 살펴본 주요 국가 기밀문서는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서 알려진 바와 같이 최순실은 국가 주요 공직자 인사 개입, 차기 포스코 회장 인선 개입, 국가의 무기사업 개입 의혹까지 받고 있다. 심지어 영어나 한자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은 새누리라는 당명 확정에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루머까지 인터넷에 퍼진 상황이다. ‘새누리’라는 말을 일본에서는 ‘신천지’라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바지 사장이 아니라 바지 대통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과 주요 기업에서 가장 강조하는 교육 중 하나는 바로 ‘리더십’이다. 그리고 리더십 교육을 통해서 교수․강사들은 다양한 이론과 사례를 가르치지만 언제나 리더십의 끝은 바로 ‘책임’에 있다고 강조한다. 일본의 다나카 전 수상은 ‘나는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천하가 알아주는 수재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들을 격려하되 발생된 모든 사항에 대해서는 오직 책임만 지겠다’고 얘기한 바 있다. 즉, 리더는 해당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다른 사안을 핑계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건, 국가적 위기의 시대에 여전히 대통령은 책임을 회피하고 인적 쇄신이라는 두루뭉술한 해법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특유의 유체이탈식 회피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4년 전, 국민적 열망을 받았던 안철수 당시 서울대 교수는 왜 대선 출마를 선언하지 않느냐는 기자들과 여론의 압박에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는지, 그리고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스스로 자문하고 있다’라고 답변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당시 많은 사람들은 답답함을 토로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정부를 이끌기 위해서 대통령이 될 사람은 자신의 역량과 자격에 대해 항상 진지하게 성찰하고 자문해야 한다. 그리고 역량과 자격이 안 되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기회를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결국, 부족한 역량으로 인해 다가온 기회가 불행과 파국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볼 때 박근혜 대통령의 자격과 역량은 국정을 수행하기엔 너무나 부족하다. 국가의 최고 리더가 무능하고 책임을 회피할수록 충신은 떠나고 간신배들만 모인다는 건 동서양 역사에서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통령에게 대다수 국민이 바라는 건 딱 한 가지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과오를 인정하고 총리에게 내치든 외치든 모든 권한을 넘겨줘야 한다. 이번 비선 실세 논란은 이미 전 세계에 보도됐다. 특히, 일본에서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패널들이 공개적으로 ‘한국의 대통령은 전문성도 전혀 없는 일개 아주머니에게 자문을 구하고 다녔다’며 냉소와 조롱을 퍼부었다. 사태가 이러한데, 과연 박근혜 대통령을 자격과 역량을 갖춘 국가의 지도자로 외국 정상들이 바라볼 수 있을까. 대통령이 오직 지금 할 수 있는 건 총리에게 국정 전반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넘기고 수사에 협조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국민들에게 공개 사과를 하는 것뿐이다. 지금처럼 장막에 숨어서 국면전환용 총리․부총리 등의 개각을 진행하면 더 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리더십과 관련된 지난 100년간의 연구에서 밝혀진 성공하는 리더의 특성을 살펴보면 지능․자신감․결단력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을 여기에 대입해보자. 국정 전반을 이끌 지능과 자신감, 그리고 결단력이 있다고 과연 누가 인정할까. 정치권에서조차 최순실이 구속되고 문고리 3인방이 사퇴했기에 대통령이 앞으로 어떻게 의사결정을 해나갈지 고민이라는 의견을 토로하고 있다. 줄 오르몽(Jules Ormont)은 리더에 대해 ‘리더는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라고 짧게 정의한 바 있다. 그녀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은 이미 끝났다. 대통령 임기 역시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더 이상 자신이 맡은 권한과 자리에 연연하면 곤란하다. 겸허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역사에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불행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지만, 선택은 이제 대통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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