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시국집회]일주일 만에 ‘2만→20만’…“대통령 사과 말고 하야하라”
  • 유지만·이민우 기자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6.11.05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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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행진 행렬만 3km 이어져…큰 충돌 없이 2차 문화제 마무리

무려 20만여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한목소리로 박 대통령의 하야(下野)를 요구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도,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도,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도 광화문 한복판에서 구호를 외쳤다. 한 손에는 ‘박근혜 하야하라’, ‘이게 나라냐’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촛불을 들었다.

집회 열기는 1차 촛불집회보다 더 뜨거웠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 규모는 1차 촛불집회(주최측 추산 2만명) 때보다 열배로 불었다. 행사 시작 2시간 전부터 광장 근처인 광화문역과 시청역 출입구는 문화제에 참여하려는 시민들이 몰려나오면서 북새통을 이뤘다. 교통 통제도 일찌감치 이뤄졌다.

 

11월5일 광화문 광장에선 2차 시국집회가 열렸다.ⓒ시사저널 임준선​


 

경찰은 오후 6시쯤부터 참석자 집계를 포기했다. 경찰 관계자는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촛불집회보다 훨씬 많아 보인다”며 “사실상 통계를 집계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밝혔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민들이 계속 모여들어 집계가 불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오후 4시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 발언과 각계 시국연설 등이 이어졌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기 위해 정치인들은 최대한 발언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전국 69개 대학 총학생회가 모인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의 안드레 공동대표는 “일제 치하의 항일투쟁과 4·19혁명에 앞장선 대학생 정신을 이어받아 이 정권을 무너뜨리고 반드시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를 찾겠다”고 밝혔다. 최은혜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은 “민주주의 국가가 맞는 것인가 의문”이라며 “국민은 빼앗긴 권력을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 사과에 더욱 성난 민심

세 딸을 뒀다는 한 어머니는 무대에 올라 “아이들이 제게 ‘최순실이 누구냐’ ‘누가 대통령이냐’고 묻는데 대답할 수가 없었다”며 “왜 부끄러움은 우리 몫이 돼야 하는가”라고 외쳤다. 김보미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은 “대학생들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간명한 일을 시행하기 위해 계속 거리로 나갈 것이다”고 약속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눈에 띄게 늘었다. 고등학생 한아무개군(18)은 “뉴스를 보면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부끄럽게 느껴졌다”며 “아직 어리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가했다”고 밝혔다. 유모차를 끌고 남편과 함께 집회에 나온 박미영씨(38)는 “지난주 1차 촛불집회 당시에는 집에서 마음으로 응원했지만 참석하지 못해 미안한 느낌이었다”며 “아이에게 지금처럼 부끄러운 나라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대학 동창과 오랜만에 광화문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직장인 김상덕씨(31)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의미 있게 보자고 생각해 나왔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주말마다 거리로 나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석자 집계가 어려울 만큼 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큰 충돌없이 집회와 행진이 이뤄졌다. ⓒ시사저널 임준선


성난 민심은 박근혜 대통령의 두 차례 사과에 대해 진정성 없다고 평가 절하했다. 서울 도봉구에서 온 오영민씨(44)는 “1차 때와 달라진 내용도 없이 ‘미안하다’며 감정에 호소했을 뿐”이라며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은 ‘물러나겠다’는 한 마디”라고 강조했다.

 

대학생 이형우씨(25)는 “검찰 수사를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 같지만 ‘살아있는 권력’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며 “울먹이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중계한 전파 낭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다는 박대환씨(64)도 “법과 원칙을 강조하길래 그만큼 믿었다”며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를 멈추고 당장 물러나 달라”고 요구했다.


큰 충돌 없이 평화 행진…“촛불행렬 끝이 안 보일 정도”

 

서울 광화문 광장에 속속 모여든 시민들은 오후 5시40분부터 행진을 시작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광화문 광장에서 종각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데만 40여분이 소요됐다. 오후 7시를 기준으로 ‘시청-숭례문-을지로입구역-종로3가’로 이어지는 도심 3km 전차선을 참가자들이 메웠다. 일부 시민들은 청와대로 가기 위해 종각역에서 조계사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했지만 경찰의 차단에 막혔다. 이 과정에서 길을 막는 경찰과 지나가려는 집회 참가자 사이에 가벼운 실랑이도 벌어졌다.

 

경찰은 이날 일부 시민들이 행진 신고 구간을 이탈하기도 했지만 강제로 가로막지 않았다. 최대한 참가 시민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경찰은 앞서 ‘신고구간이 주요 도로’라는 이유로 행진을 불허했지만, 이후 서울행정법원의 제동으로 길을 열었다.

 

경찰은 집회에 대비해 청와대로 가는 길목을 원천 봉쇄했다. 220개 중대 1만7600여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또 시위대의 과격 시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정부서울청사와 시민열린마당, 미국대사관 일대를 가로지르는 차벽을 2중으로 쳤다. 경찰은 차벽을 끌어내는 데 대비해 차량 여러 대를 연결해놓기도 했다.

 

영상촬영·편집=시사저널 박정훈

 

 

경찰의 우려와 달리 도심 행진을 마친 참가자들은 오후 7시30분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왔다. ‘하야가’를 만들어 화제를 모았던 임한빈의 공연과 노래패 우리나라의 공연 등이 이어졌다. 촛불집회는 밤 9시쯤 사회자가 공식 행사 종료를 선언하면서 마무리됐다. 일부 시민들은 광화문광장 인근 KT빌딩 앞에 모여 자유 발언을 이어갔다.

 

한편 이날 일부 시민의 소동이 이어지기도 했다. 한 남성이 오후 7시쯤 종로3가 인근을 행진 중이던 정의당 의원단에게 흉기를 들고 길을 막아섰다. 이 남성은 시민들에게 제압된 뒤 경찰에 넘겨졌다. 보수단체인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는 오후 5시쯤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단체의 시위 장면을 사진 찍으려는 여고생의 뺨을 피켓으로 때려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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