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오후 6시쯤부터 참석자 집계를 포기했다. 경찰 관계자는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촛불집회보다 훨씬 많아 보인다”며 “사실상 통계를 집계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밝혔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민들이 계속 모여들어 집계가 불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성난 민심은 박근혜 대통령의 두 차례 사과에 대해 진정성 없다고 평가 절하했다. 서울 도봉구에서 온 오영민씨(44)는 “1차 때와 달라진 내용도 없이 ‘미안하다’며 감정에 호소했을 뿐”이라며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은 ‘물러나겠다’는 한 마디”라고 강조했다.
대학생 이형우씨(25)는 “검찰 수사를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 같지만 ‘살아있는 권력’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며 “울먹이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중계한 전파 낭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다는 박대환씨(64)도 “법과 원칙을 강조하길래 그만큼 믿었다”며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를 멈추고 당장 물러나 달라”고 요구했다.
큰 충돌 없이 평화 행진…“촛불행렬 끝이 안 보일 정도”
서울 광화문 광장에 속속 모여든 시민들은 오후 5시40분부터 행진을 시작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광화문 광장에서 종각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데만 40여분이 소요됐다. 오후 7시를 기준으로 ‘시청-숭례문-을지로입구역-종로3가’로 이어지는 도심 3km 전차선을 참가자들이 메웠다. 일부 시민들은 청와대로 가기 위해 종각역에서 조계사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했지만 경찰의 차단에 막혔다. 이 과정에서 길을 막는 경찰과 지나가려는 집회 참가자 사이에 가벼운 실랑이도 벌어졌다.
경찰은 이날 일부 시민들이 행진 신고 구간을 이탈하기도 했지만 강제로 가로막지 않았다. 최대한 참가 시민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경찰은 앞서 ‘신고구간이 주요 도로’라는 이유로 행진을 불허했지만, 이후 서울행정법원의 제동으로 길을 열었다.
경찰은 집회에 대비해 청와대로 가는 길목을 원천 봉쇄했다. 220개 중대 1만7600여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또 시위대의 과격 시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정부서울청사와 시민열린마당, 미국대사관 일대를 가로지르는 차벽을 2중으로 쳤다. 경찰은 차벽을 끌어내는 데 대비해 차량 여러 대를 연결해놓기도 했다.
경찰의 우려와 달리 도심 행진을 마친 참가자들은 오후 7시30분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왔다. ‘하야가’를 만들어 화제를 모았던 임한빈의 공연과 노래패 우리나라의 공연 등이 이어졌다. 촛불집회는 밤 9시쯤 사회자가 공식 행사 종료를 선언하면서 마무리됐다. 일부 시민들은 광화문광장 인근 KT빌딩 앞에 모여 자유 발언을 이어갔다.
한편 이날 일부 시민의 소동이 이어지기도 했다. 한 남성이 오후 7시쯤 종로3가 인근을 행진 중이던 정의당 의원단에게 흉기를 들고 길을 막아섰다. 이 남성은 시민들에게 제압된 뒤 경찰에 넘겨졌다. 보수단체인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는 오후 5시쯤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단체의 시위 장면을 사진 찍으려는 여고생의 뺨을 피켓으로 때려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