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의 몰락 최순실 심기 건드린 탓?
  • 박성의 시사저널e.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07 16:30
  • 호수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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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경제사절단 불참·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사퇴 배경 두고 ‘최순실 관련說’ 줄 이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왼쪽)이 최순실씨(오른쪽)의 한진해운 법정관리 개입 의혹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가 한진해운 법정관리 사태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치권 일각에서 나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최순실이 주도한 K스포츠재단에 기금을 내놓지 않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사퇴했다”는 주장이 시발점이 됐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한진해운 채권단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허무맹랑한 낭설’이라며 선을 긋고 나섰다. 그러나 그동안 ‘소설’로 받아들여지던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점차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조양호 회장이 관련 의혹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1위 해운사 추락에 청와대 비선라인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조양호 회장의 4월, 그때 무슨 일 있었나 

 

지난 4월27일, 산업통상자원부는 5월1일부터 사흘간 이뤄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에 동행할 경제사절단 236개사 명단을 발표했다. 사절단은 대기업 38개사, 중소·중견기업 146개사, 공공기관·단체 50개사, 병원 2개사 등으로 구성됐다. 경제사절단 명단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등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 수뇌부가 대거 포함됐다. 이란 경제사절단 내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기업은 한진그룹이었다. 한진그룹은 이란 경제제재 해제 이후 이란 관련 사업을 꾸준히 강화해 왔다. 실제 한진그룹 주력 사업부문인 대한항공은 인천~이란 주 4회 운수권을 모두 배분받기도 했다. 그런데 정부 발표 이틀 뒤인 4월29일, 돌연 조양호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경제사절단 불참을 발표한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 사태 수습을 이유로 밝혔다. 한진해운 자율협약 신청과 관련해 숙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진그룹은 조 회장 대신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을 참가시켰지만, 업계에서는 한진그룹이 굳이 ‘급(級)’을 떨어뜨린 이유에 물음표를 붙였다. 대통령 방문 일정 자체가 사흘로 짧은 데다, 대통령과의 동행으로 얻게 될 실리적·상징적 이익이 워낙 크게 평가됐던 탓이다. 박 대통령이 이란 방문 일정을 마친 뒤, 조 회장은 또다시 ‘깜짝 발표’를 한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장애인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장을 전격 사퇴한 것이다. 당시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이 647일 앞으로 바짝 다가온 시점이었고, 조 회장 후임자 역시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조 회장 사임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자,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조양호 위원장이 한진그룹의 긴급한 현안 수습을 위해 그룹 경영에 복귀하려고 위원장직 사의를 표명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조 회장 개인 사정’으로 사임 이유를 돌렸다. 조 회장이 박근혜 정부 핵심 행사로 꼽혔던 이란 경제사절단과 평창동계올림픽 수뇌부에서 연이어 낙마하자, 재계에서는 “조 회장이 한진해운에 발목을 잡혔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해운사 경영난 탓에 조 회장 개인사까지 꼬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분석을 뒤집는 발언이 나왔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지난 10월2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양호 회장이 권력형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K스포츠재단에 출연을 거부해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났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에게 “모 재벌 회장이 ‘내가 정부 프로젝트에 1000억원 이상, 미르재단에 10억원을 썼는데, K스포츠재단에 10억을 더 내야 하느냐’고 하니까, 안 수석이 김종덕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전화해 (그 회장을) 평창올림픽위원장에서 해임시켰다는 소리까지 나온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 회장’은 당연히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의미했다.

 

 이에 대해 안 전 수석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당시 내용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밝혔다. 앞서 10월12일 박영선 민주당 의원도 같은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박 의원이 제시한 미르재단 공시자료에 따르면, 삼성·SK·롯데·한화는 미르재단에 각각 125억원, 68억원, 28억원, 15억원의 출연금을 냈지만, 대한항공은 이들보다 적은 10억원을 미르재단에 출연했다.

 

10월3일 조양호 회장은 서울 대한항공 서소문 사옥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 전 장관을 만난 것은 맞다”며 “당시 담당자였으니까. 그래서 만난 것이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김 전 장관이 물러나라는 말을 했느냐’는 질문에는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어렵다)”라고 얼버무렸다. ‘한진해운 법정관리행에도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말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고 차에 올랐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둘러싼 의혹 관련 주요 일지

“9월 한진해운 법정관리도 최순실이 영향”

 

재계에서는 한진그룹이 실제 최순실씨로부터 상당한 압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씨가 SK와 롯데 같은 이른바 ‘위기의 재벌’들을 상대로 집요하게 자금 지원을 요청했던 전력이 있다며, 법정관리를 코앞에 뒀던 한진해운 역시 같은 압박을 받았을 수 있다는 추측이다. 한진해운 법정관리가 결정된 후 2주가 지난 9월13일,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당시 박 대통령은 청와대 국무회의 중 “한진해운 식 기업운영 방식은 결코 묵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진해운 경영진을 공개 비판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특정 그룹 수뇌부를 겨냥해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한진해운 육상노조도 10월27일 최순실씨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결정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노조는 “한진해운을 살리는 것이 유리하다는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얼라이언스 가입에 성공했고 용선료 협상도 마무리 중이었던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갔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던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한진해운 채권단 관계자는 “어이없는 낭설이다. 오히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피했다면 그게 외압”이라면서 “숫자로 판단하는 법정관리에 비선 실세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고 해명했다.

 

해운업계에서는 이른바 ‘최순실 스캔들’이 의혹을 넘어 수사단계까지 넘어간 가운데, 한진해운과 최순실 간 연결고리 역시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씨가 한진해운 법정관리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도, 비선 실세가 조 회장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로 한진해운 법정관리 결정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새누리당 의원은 “한진해운 위기가 특정 시점에서 발발된 것은 아니기에 특정 인물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도 “다만 제기된 의혹과 증언들의 신빙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시국이 엄정한 만큼 검찰이 수사에 나설 정황은 충분해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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