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정국’에 대처하는 야당의 자세
  • 김현 뉴스1 기자·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6.11.08 11:09
  • 호수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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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국민의당, 대선까지 염두에 둔 주도권 다툼 치열…정파적 고려 지나칠 때 역풍 맞을 가능성도
우상호 더불어민주당·박지원 국민의당·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왼쪽부터)가 11월1일 국회에서 야 3당 ‘최순실 사태’ 관련 회동을 가졌다. © 시사저널 박은숙

 

11월4일 박근혜 대통령이 두 번째 대국민사과를 통해 검찰 조사 및 특검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에 대해 다시 한 번 수습에 나섰다. 울먹이는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 모습에 여당은 ‘진정성 있는 사과’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반면 야당은 여전히 이 난국을 타개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윤관영 수석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대통령 개인의 반성문 수준”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윤 대변인은 “1차 회견에서 부족했던 진솔한 사과와 수사를 받겠다는 정도가 추가됐을 뿐, 국정수행 지지율 5%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서 국정 농단, 국정 마비의 총책임자가 대통령이라는 점이 담화에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을 위해 추진한 일’이라고 한 것은 또 다른 세 번째의 사과를 요구하는 단초를 제공했다”면서도 “지금까지 대통령이 해 오던 검찰수사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성은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대통령의 담화는 책임회피”라며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대통령 담화에 대한 여야 각당의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것이지만, 눈길을 끄는 것은 야당 중 원내 1당인 민주당과 3당인 국민의당 간 미묘한 입장차였다. 두 야당 모두 정국을 수습하기에는 모자라다는 입장을 나타내면서도 국민의당은 사과의 진정성은 받아들이는 모양새였다. 두 야당의 이러한 미묘한 입장 차이는 이번 사태가 수습되면 본격적으로 시작될 대권 경쟁에 대한 주도권 싸움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조기대선’설까지 나오는 마당에 여기서 정국 주도권을 놓칠 경우 다시는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위기감이 두 야당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난국에서 누가 더 국민들이 수긍할 만한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느냐에 따라 주도권의 향방도 갈릴 전망이다. 이에 민주당은 현 정부와 더 각을 세우는 선명성으로, 국민의당은 다소 중도적 입장을 내세우는 ‘포용성’으로 맞서고 있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김철근 동국대 사회과학대 교수는 11월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차기 대선까지 바라보는 있는 야당 간의 주도권 다툼”이라고 규정했다.

 

 

공조와 균열이 반복되는 흐름

 

두 당이 전체적으로는 비슷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결정적 순간에는 입장이 엇갈리던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두 당은 지난 9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당시 탄탄한 공조로 헌정사상 6번째 해임건의안 본회의 통과를 이끌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죽이 척척 맞던 두 야당 사이에 파열음이 나기 시작한 것은 10월26일부터다.

 

청와대 문건유출 의혹 보도로 파문이 확산되던 이날 민주당이 긴급 의원총회에서 특별검사제 도입을 당론으로 채택한 것이 불씨가 됐다. 당시 박 위원장은 민주당이 주장한 특검을 새누리당이 곧바로 수용하고 나서자, “새누리당에서 특검을 수용한 것은 다분히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정략적인 호도책”이라며 “민주당의 특검 제안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국민의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0월27일 ‘별도특검법에 따른 특검 도입’을 위한 여야 3당 간 협상에 나섰다가 새누리당이 특검후보추천위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특검을 임명하는 ‘상설특검법에 따른 특검’을 고수하자, 이튿날인 28일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민주당은 그러면서 협상 재개를 위한 선결 조건으로 △새누리당의 대국민 석고대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퇴 △최순실 부역자의 전원 사퇴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민주당이 당시 특검 협상을 중단한 것은 여야가 특검 형태에 대한 합의점을 쉽사리 찾지 못하는 상태에서 협상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될 경우 오히려 정쟁으로 비쳐지면서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이라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우상호 원내대표는 여당의 상설특검 주장을 ‘셀프특검’으로 규정, “탄핵이나 하야 요청은 안 하지만 여권이 어떻게 이런 식으로 나오느냐에 대해 야당이 강하게 항의해야 한다는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최준필

 

국민의당은 민주당이 특검 협상 중단을 선언하자 “만시지탄이지만 잘 결정했다”(박지원 비대위원장)고 밝히면서도 “민주당이 섣부른 대응이었음을 자인한 것”(손금주 수석대변인)이라고 견제구를 날렸다.

 

양당은 정국 수습책의 하나로 제시됐던 ‘거국내각 구성’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문재인 전 대표를 필두로 민주당 내에선 정국 수습을 위해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쏟아졌다. 문 전 대표는 10월2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당적(새누리당)을 버리고 국회와 협의해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10월30일 새누리당이 ‘거국내각’을 전격 수용하고 나서자 민주당은 “새누리당이 거국내각을 주도하는 것은 최순실 게이트를 덮자는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이를 두고 박 위원장은 10월31일 페이스북을 통해 “다행히 민주당에서 거국중립내각 제안을 취소했지만, 참 요즘 민주당이 너무 헤맨다”고 꼬집었다. 문 전 대표에 대해서는 “마치 자기가 대통령이라도 된 것처럼 월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도 “문 전 대표께서 거국내각을 말씀하셨을 때 저는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제가 그 다음 날 제안한 게 여야 합의 총리”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역시 국민의당이 정국 해법으로 박 대통령의 탈당과 영수회동을 제안한 데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며 제동을 걸었다. 우 원내대표는 박 위원장의 영수회담 제안에 대해 “우리와 얘기된 것은 없다. 때가 되면 봐야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혐의자랑 만나서 뭘 얘기하느냐. 정리가 좀 돼야 한다”라고 선을 그었다.

 

 

총리 지명 놓고 드러난 복잡한 셈법

 

두 당 사이의 복잡한 속내가 가장 잘 드러난 것은 박 대통령의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 지명을 두고서였다. 두 당은 김 내정자를 지명하는 과정에서 야당과 사전협의 없이 진행된 ‘불소통 인선’이라는 데는 인식을 같이하고, ‘인사청문회 보이콧’으로 공동 전선을 펴면서 다시 손을 잡았다. 다만, ‘참여정부 출신’ 인사인 김 내정자가 여야와 협의해 거국내각을 구성하겠다고 밝히고 나서면서 김 내정자에 대한 공세에 있어 민주당과 국민의당 간 온도차도 감지된다. 특히 김 내정자가 국민의당이 영입하려 했던 인사라는 점에서 국민의당은 ‘과정이 문제일 뿐 인물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평이다. 반면 민주당은 “야권 인사를 내세웠다고 하는데, 김병준 총리 내정자가 야권 인사인지 불분명하다”며 인물과 인선 과정 모두를 문제 삼고 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불통 대통령께서 문자로 내려보낸 불통 총리 아니냐”고 평가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게다가 김 내정자가 문 전 대표와 사이가 그렇게 원만하지 않다는 점도 민주당 입장에서는 개운치 못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내정자가 참여정부 시절 문 전 대표의 ‘실정’(失政)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말도 있는데, 이 때문에 그가 제2의 송민순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당원들이 11월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검찰조사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이처럼 두 당 공조의 균열과 복원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거국중립내각 구성 등에 대한 입장차를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의당까지 포함해 진행된 야 3당 원내대표 간 회동에서 거국중립내각에 대한 입장차로 합의문에 반영되지 못했다. 민주당은 “거국중립내각의 전제조건은 성역 없는 진상규명과 대통령의 2선 후퇴”라고 주장했지만, 국민의당은 “기본적으로 (거국내각을 위해선) 대통령의 탈당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박 대통령이 야당의 요구를 수용해 거국중립내각 구성에 나서더라도 양당은 거국중립내각 구성에 있어 주도권을 쥐기 위한 샅바싸움을 벌일 것으로 점쳐진다.

 

야권 내 대권 주자들의 입장차도 두 당 간 불협화음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문 전 대표는 현재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주장하고 있는 반면, 안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현재 대선 지지율 1위로 올라선 문 전 대표는 ‘외연 확장’을 목적으로 다소 신중한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는 반면, 뒤쫓아가는 안 전 대표로선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야권 지지층의 민심에 가까운 선명한 주장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민의당 한 초선 의원은 “양당 간 신경전은 결국 차기 대선을 겨냥한 싸움”이라며 “앞으로 사안별로 공조는 하겠지만, 서로 간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은 다르게 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와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두 당이 지나치게 정치적 유불리만을 따질 경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은 두 당 모두의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두 당 중 어느 하나라도 국민이 생각하는 임계점을 넘을 경우 회복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정치권 주변의 대체적인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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