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실체 없는 北 공작원...무리한 공안 수사 논란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11.0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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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모의했다”던 北공작원 신분증 위조 정황
수사당국이 북한 공작원의 것이라며 제시한 북한 운전면허증(왼쪽).하지만 이는 같은 시기 한 외국인이 발급받은 북한 운전면허증(오른쪽)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북한 정찰총국 공작원 연계 활동 내국인 2명 구속 기소.’

2016년 8월12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김재옥)는 이런 제목의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피고인 한아무개(59)씨와 김아무개(47)씨는 북한 정찰총국 공작원과 회합해 타이어 반출․미군용 장비 자료 입수 등을 협의했다. 또 군용으로 전용 가능한 대형타이어 등을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반출하려 했다. 중국 세관의 단속에 적발되어 미수에 그쳤다.(국가보안법상 회합 및 편의제공 미수 등 혐의로 구속기소)’ 

 

하지만 이 사건에 등장하는 ‘북한 정찰총국 공작원’은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수사과정에서 증거로 제출된 ‘북한 공작원’의 신분증이 위조된 정황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군용 장비 및 자료 등을 북한으로 밀반출하기 위해 ‘북한 공작원’과 모의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피고인들. 이들이 접촉해 일을 꾸민 북한 공작원이 ‘진짜’ 북한 공작원이었는지에 대한 근거가 부족해진 셈이다.

 

시사저널은 이 사건의 제보인과 수사당국이 ‘북한 정찰 총국 간부 윤 아무개씨의 것’이라며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신분증을 확보했다. 확인 결과, 제출된 북한 운전면허증에선 공식기관에서 발급됐다고 보기엔 중대한 오류가 발견됐다. 바로 ‘주체연호(主體年號)’ 부분이다.

 

‘주체’란 용어는 북한에서 주체연호, 즉 주체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주체력’은 김일성의 출생연도인 1912년이 ‘주체 1년’이다. 

 

그런데 검찰 수사 증거가 된 이 신분증의 주체연호를 살펴보자. 증거로 사용된 면허증의 앞면 우측 상단에는 면허취득자가 태어난 날이 적혀 있었다. ‘주체 1956년 8월15일’이라고 돼 있다. 1956년을 주체력에 따라 표기하려면 ‘주체 45년’이라고 해야 맞다. ‘주체 1956년’은 서기 3867년을 뜻한다. 

 

우측 하단의 발급일이 적힌 부분엔 ‘주체 1996년 4월17일’이라 적혀 있다. 역시 1996년을 주체력에 따라 표기하려면 ‘주체 85년’이라고 해야 맞다. ‘주체 1996년’은 서기 3907년이다. 

 

오류는 이 뿐만이 아니다. 윤씨(검찰이 북한 공작원으로 판단한 인물)의 신분증이 발급된 1996년은 주체연호가 도입되기도 전이다. ‘주체력’은 북한에서 김일성이 사망한 지 만 3년째인 1997년 9월 그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런데도 신분증에 ‘주체’가 적혀 있다. 1997년 7월9일에 한 캐나다인이 북한에서 발급받은 운전면허증에는 주체 연호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게다가 한씨와 김씨 기소의 근거가 된 이 신분증에는 발급기관으로 ‘인민보안성’이 적혀 있다. 하지만 이 면허증이 발급됐다고 적힌 1996년에 북한 운전면허 발급기관의 명칭은 ‘사회안전부’였다. 또 이 면허증의 운전면허 시험 합격날짜는 운전면허 등록날짜보다 뒤다.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해야 면허증을 발급 받는 게 상식적인데 선후관계가 맞지 않다. 모두 이 사건에 등장하는 이가 실제로 북한 정찰총국 간부가 맞는지 의문을 키우는 대목이다.

 

 

오류투성이 ‘신분증’ 근거로 ‘북한 공작원’일 것이라 판단한 수사당국

 

현재로서는 이 사건을 수사당국에 제보한 사람과 제한된 증인의 진술 외에 사건에 등장하는 윤씨가 북한 정찰총국 간부임을 확인해줄 이는 없다. 이 사건을 맡은 장경욱 변호사 등 변호인 측은 “해당 운전면허증은 명백히 위조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변호인 측은 ”제보자가 신분증 위조에 관여했다면 위법 및 함정수사에 해당하며, 위조된 게 아니라면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했다는 주장을 충족하지 못 한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씨가 신분증을 위조한 범죄자일지언정 북한 공작원이라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사건을 맡은 검찰 관계자는 “공판 중인 사건이라 말씀 드리기가 그렇다”면서 “공판과정에서 관련 증거를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공작원은 신분을 감추기 위해 신분증을 위조하는 경우도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제보자의 말대로 수사를 한 것”이라면서 “위조 여부를 확인했다. 위조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해당 사건의 제보자도 ‘신분증이 위조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수사기관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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