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불모지 독일 한류 거름 삼아 새싹 틔웠다
  • 독일 베를린·본=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6.11.10 13:18
  • 호수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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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한국학 현장을 가다-⑥] 베를린자유대학과 본대학의 ‘한국학’, 단기간에 급성장
베를린 서남부 달렘의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연구소(한국학과 사무실) © 시사저널 송응철

 

독일은 불과 10년여 전만 하더라도 한국학(韓國學)의 불모지였다. 같은 분단국가였던 독일에 대한 한국의 관심은 높았지만, 독일은 그렇지 않았다. ‘짝사랑’에 그쳐온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한류(韓流)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한국에 눈을 돌리는 독일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런 관심은 독일 내 한국학의 싹을 틔우는 계기가 됐다. 이후 성장세는 괄목할 정도였다. 학계 안팎에선 이런 현상이 한국과 독일 간 공공외교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독일 내 한국학의 현주소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10월29일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중도 포기 학생, 일본·중국학 비해 적어

 

먼저 찾은 곳은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 위치한 베를린자유대학이다. 독일 아이비리그에 포함된 명문대로, 독일 내에서도 한국학이 가장 왕성하게 전개되고 있는 곳이다. 대학이 위치한 베를린 서남부의 달렘(Dahlem) 지역에 도착했지만, 캠퍼스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독립된 캠퍼스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의 대학과 달리 독일은 ‘빌리지’ 형태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을 전체에 각 학과별 건물들이 산발적으로 분포돼 있는 식이다. 학교 본관과 지하철역 인근에 위치한 한국학과 사무실을 찾았다.

 

한국학과 관계자에 따르면,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처음 한국학과의 설립 움직임이 감지된 것은 2001년이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결과다. 학교 측은 이때부터 교수를 모집해 왔다. 그러나 적당한 인력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국학에 대한 조예는 물론, 독일어도 유창한 인물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국학과 출범은 계속해서 지연돼 왔다. 2004년 한국학 관련 수업이 개설됐지만, 선택과목 형태로만 존재해 왔다. 이런 가운데 이은정 한국학과 교수가 2008년 영입됐다. 그해 한국학연구소가 개소됐고, 한국학과도 정식으로 간판을 내걸게 됐다.

 

시작은 미약했다. 전 학년을 통틀어 한국학과 학생 수는 20여 명에 불과했다. 여전히 중국학과와 일본학과가 동아시아 지역학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해 왔다. 그러나 한국학과 입학생 수는 매년 꾸준히 늘었다. 이로 인해 2010년 이후부터는 입학정원제(Cut Off)를 도입해야 했다. 지난해에도 67명의 신입생이 들어왔다. 2013년부터는 학교 내 도서관에 학국학과 소속 사서직이 설치됐다. 학국학 관련 장서를 모으고, 이를 전산 체계화하는 역할이다. 전임 사서직의 존재 여부는 해당 학과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라는 설명이다.

 

한국학과는 특히 동아시아 내 다른 지역 학과에 비해 학생들의 ‘충성도’가 높다. 중국학과와 일본학과의 경우,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20%에서 최대 50%에 달한다. 그러나 한국학과의 경우 10% 안팎에 불과하다. 그만큼 한국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확고하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학과 교수들의 역할이 상당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네스 벤야민 모슬러 교수는 “학생들의 중도 포기를 방지하기 위해 개개인에 대한 집중 대면 관리를 진행하는 등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 내에서 한국학의 위상이 이처럼 급상승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케이팝(K-POP)이나 드라마·영화 등 한류 문화 콘텐츠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에 대한 질문에 ‘한류’라고 답한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나 한류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인식하게 된 계기일 뿐, 한국학과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라고 학생들은 입을 모은다. 학국학과에 재학 중인 한 독일인 학생은 “빅뱅과 엑소(EXO)로 인해 한국을 인식하게 됐다”며 “그 이후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이것이 한국학과 진학 결정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하네스 벤야민 모슬러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과 교수(왼쪽 사진)가 한국학과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한국학 전공생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 시사저널 송응철

한국학 공부의 가장 큰 어려움은 ‘한국어’

 

한국학은 말 그대로 한국이라는 국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한국어를 비롯해, 정치·사회·경제 등 한국의 모든 부분을 망라한다. 이 가운데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주로 어느 분야일까. 학생들의 답변은 제각각이었다. ‘산업화로 인한 급격한 경제발전’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 ‘한국의 높은 학생 자살률’ ‘근대화 시기 주변국에서 받은 영향’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었다. 분단 및 통일, 북한의 핵 문제 등이 주된 관심사일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한국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무엇일까. 역시 현지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어를 1순위로 꼽았다. 유럽권에서는 언어들 사이에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어 배우기가 어렵지 않은 반면, 한국어는 전혀 새로운 언어다. 어순도 발음체계도 다르다. 무엇보다 표현이 다양해 외워야 할 단어가 많다는 점도 부담이다. 또 한자 공부에 대한 부담도 상당하다고 했다. 한글이 탄생하기 이전의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한자를 익혀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학을 공부하기 위해선 해당 국가의 언어는 필수다. 언어를 알아야 해당 국가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가능하다. 한국학과가 한국어 교육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학년과 2학년 2년 동안 한 주에 2시간씩 4차례, 총 8시간의 한국어 교육을 진행한다. 2학년을 마치면 한국의 연세대와 서강대, 이화여대 등 연계된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1년간 머물 기회도 제공한다. 한국어 강의를 진행하는 김은희 한국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한국어를 어려워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1·2학년 한국어 수업을 모두 마치고 나면 일상 대화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고,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다녀오면 중상급 이상의 한국어 실력을 갖추게 된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베를린자유대학에 이어 찾은 곳은 통일 전 서독의 수도이던 본의 본대학이었다. 이곳 역시 별도의 캠퍼스 없이 370여 개 대학 건물이 도시 전체에 흩어져 있는 형태로 돼 있었다. 본대학 내 한국학의 역사는 베를린자유대학보다 더 짧다. 한국학과가 처음 생겨난 것은 2013년이다. 독일 내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일본학과장의 주도로 한국학과가 생겨났다. 이후 박희석 교수가 임용돼 지금까지 한국학과를 이끌어 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학과는 온전한 학과로 존재하지 않았다. 기존 일본학과를 일본-한국학과로 확장한 것에 불과했다. 한국학과는 출범 초기만 하더라도 일본학과 내의 곁다리 정도로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7개월여가 흐른 지금, 상황은 반전됐다. 학생 수를 기준으로 중국학과는 이미 넘어섰고, ‘큰집’ 격인 일본학과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본대학 내 한국학이 이처럼 빠른 시간 내에 자리 잡을 수 있던 배경은 1972년부터 한국어 강좌가 진행돼 왔다는 점이 지목됐다. 지역학의 기본이 되는 언어 교육에 대한 노하우가 쌓여 있는 상황이어서, 역사나 문화 등 전공수업 강의가 수월했다는 것이다.

 

일본-한국학과 사무실이 있는 독일 본의 본대학 본관

교수 인력 부족으로 성장세 주춤 “도움 절실”

 

이처럼 두 대학의 한국학은 짧은 시간 내 급속도로 성장하는 결실을 이뤄냈다. 이는 공공외교 차원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독일 내 지한파(知韓派)가 늘어나면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각인될 것이고, 이는 우호적인 양국 외교 관계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그러나 현재 두 대학의 성장세는 주춤한 상황이다. 두 대학이 모두 교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그렇다고 교수직을 늘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독일이 현재 대학별 학과 통폐합 작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학과를 폐지하고, 학부 내 비인기 학과를 다른 학과에 통합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학과 교수직을 늘리기 위해선 학부 내 다른 학과의 교수직을 줄여야 한다. 한국학이 세를 키우려 하면 다른 지역학과의 견제와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인력난에 대한 대학의 자체적인 해법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박희석 교수는 “현재로선 구조적으로 한국학과 교수를 충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인력난 해소를 위해선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은정 교수는 “정교수직은 아니더라도 외부 자금 수혈을 통해 석좌교수를 임용하는 등의 방법이 지금으로선 최선책”이라고 전했다.

 

학생들의 졸업 후 취업 문제도 걱정거리다. 지금까지는 한국 내 독일 기업이나 독일 내 한국 기업, 그리고 외교부, 학계 등 전공에 따라 진로를 정한 학생들이 상당수다. 그러나 지역학의 특성상 취업처는 한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향후 계속해서 졸업생이 배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공에 따라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독일 내 한국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학을 지원하는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KF)도 이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KF 측은 그 대안으로 한국학을 유럽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KF는 유럽 전역에서 베를린사무소가 유일하다. 유럽의 중심에 있다는 지리적인 여건 외에 독일인의 경우 영어에도 능통하다는 이점도 있다. 이곳을 거점으로 유럽 전역의 대학에 한국학과를 만들어 독일에서 길러낸 신진학자들이 교수로 임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박지영 KF 베를린사무소장은 “학국학 관련 신진학자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독일 내 한국학과 출신들을 유럽 내 대학으로 보낼 경우 취업과 유럽 내 한국학 확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한국학 현장을 가다-⑥] 한국학 불모지 독일 한류 거름 삼아 새싹 틔웠다

[세계 한국학 현장을 가다-⑦] “인력난으로 한국학 성장세 주춤, 외부 도움 필요”

[세계 한국학 현장을 가다-⑧] “후학 양성이 한국학 발전 위한 최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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