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차은택이 흘린 악어의 눈물
  •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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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황태자’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며 흘린 차은택의 눈물
차은택 감독이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하며 눈물을 보이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박근혜 정부 들어 문화계 황태자로 군림해온 차은택 감독이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하며 보여준 첫 번째 모습은 국민들에 대한 사과와 사죄의 눈물이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은 그 눈물을 진실 되게 보지 않았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인정한 몇 안 되는 ‘진실된 사람’으로 평가 받아온 차 감독은 국민들에게 가장 진실 되지 않은 사람으로 현재 비춰지고 있다.

 

차은택 감독이 문화계에서 전횡을 일삼는다는 얘기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더 포괄적으로 말하면 문화콘텐츠 업계에서는 지난해 초부터 퍼질 대로 퍼진 상황이었다. 창조경제 기업으로 알려진 일부 기업이나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는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주요 관계자들에게 ‘차은택 감독과의 관계나 정윤회와의 관계’를 공공연하게 자랑하고 다녔다. 필자 역시 문화콘텐츠 업계 사람들을 통해 차 감독의 막강한 영향력은 이미 CJ를 넘어섰다는 얘기를 지난해에 들은 바 있다. 사실상 그는 공공연하게 ‘문화계 황태자’가 아니라 ‘문화계 대통령’으로 이미 군림한 상황이었다. 루머 중 일부는 박 대통령이 아예 문화산업은 차 감독에게 전권을 위임했다는 얘기까지 존재했으니 말이다.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자 그는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였던 그는 어느 순간 박근혜 대통령과 주요 행사를 같이 다니는 VIP급 행보를 보였으며 문화체육관광부와 청와대, 문화콘텐츠 주요 대기업을 넘나들며 자신의 힘과 명예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대기업의 전문경영인이 아닌 오너(회장)와만 상대하길 원한다는 소문까지 퍼진 걸 보면 차 감독도 달콤한 권력의 맛에 지나치게 중독된 듯하다. 권력의 최정점에 서 있는 사람들은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언제나 모른다고 하는데 차 감독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 동안 숨죽이며 머리를 조아렸던 사람들은 ‘정권 말기 때 두고 보자’라는 말을 항상 가슴속에 되새겨왔다.

 

차은택 감독은 CF․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고 그 실력을 업계에서 인정받은 역량 있는 감독이었다. 싸이․빅뱅․이효리부터 최근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는 이승환의 상당수 뮤직비디오도 그의 손을 거쳐 탄생됐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미 업계에서 한물 간 인사로 차 감독이 평가 받고 있다고 공개했으나 여전히 많은 업계 전문가들은 차 감독의 탁월한 감각과 재능을 인정하는 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재능이 없는 곳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댔으니 그 대가는 권세에서 오는 달콤함 이상으로 혹독하게 다가올 것이다.

 

놀랍게도 차 감독은 SNS 등을 통해 공공연하게 보수정당․보수정권이라고 불리는 지난 정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피력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쉽게 표현하면 현 정부의 색깔에 전혀 맞지 않은 인물이었다. 우리는 이런 점에서 한 사람이 권력이라는 거대한 보상 앞에서 얼마나 자신의 신념 또는 가치관을 쉽게 저버리는지 확인할 수 있다. 막강한 영향력을 제공하자 자신이 그간 유지해왔던 신념을 버리는 차 감독과 같은 인물이 막후 정치를 통해 문화계의 인사와 예산을 주물렀으니 이 정권의 인사체계 및 예산관리시스템을 가히 알만하다. 차 감독 뒤에 줄을 선 사람들은 지금 그의 소환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경제민주화․국민행복 등을 강조했다. 실제로 당선 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최종 보고에서도 문화 관련 얘기는 별로 오가지 않았던 점은 언론을 통해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 취임사에서 갑작스럽게 ‘문화융성’이라는 거창한(?) 키워드가 등장했다. 5년간의 국정 운영 비전을 하루아침에 세울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문화융성이란 키워드는 인수위원회 최종보고서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불과 나흘 만에 대통령의 입을 통해 등장한 것이다. 문화융성이라는 국정 키워드가 나흘 만에 나왔기에 문화산업을 육성할 장기적인 계획이 있을 리 만무하다. 결과적으로 급조된 문화융성은 차은택이라는 불행만 낳고 현재 종결돼가고 있는 느낌이다.

 

각종 행사장에 박 대통령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고 미르재단 운영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시그널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우병우 민정수석 및 검찰 출신 주요 인사들이 자신의 뒤를 봐주고 있기에 문제될 게 없다는 점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다녔다. 그런 그가 지금에 와서는 ‘우병우 수석을 알지 못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식 행사 이후 만나지 않았다’라는 태연한 거짓말을 흘리며 국민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과 독대를 한 후 주요 인사에게 해당 사실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그룹 회장들을 조롱하던 그의 모습을 업계 관계자들이 다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진실에 대해서는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그가 보인 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고 국민들이 보는 이유이다.

 

문화콘텐츠 업계 중 특정 분야에만 전문성을 지닌 이가 전횡을 휘두르면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몰상식적인 인사와 예산이 운영되는지 우리는 이번 사태를 보며 경험했다. 이와 관련, 견제되지 않은 권력은 언제나 부패를 초래한다는 점을 심리학에서는 늘 연구를 통해 우리에게 경고했다. 2007년에 인성 및 사회심리학 저널(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에 갈리어트(Gailliot)와 그의 동료들이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자신이 지닌 권력이나 권한이 안정적이고 막강하다고 느낄수록 사람들은 권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잿밥에만 더 많은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위험한 행위를 더 쉽게 벌일 수 있다는 점을 밝히 바 있다. 또 2015년에 경영 윤리 저널(Journal of Business Ethics)에 발표된 KAIST 연구팀의 논문에서도 개인의 힘(Power)이 막강할수록 비윤리적인 행위는 증폭된다는 점을 실험 연구 결과로 제시하고 있다.

 

견제되지 않은 권력이 부패한다는 점은 이미 이와 같이 최근 사회심리학 연구를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한결 같다. 권력을 소수에게 집중하지 말 것, 그리고 해당 권력을 언제나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라는 것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KAIST 연구팀의 논문에서는 권력이나 힘(Power)이 불안정할수록 비윤리적인 행위는 감소된다는 점을 연구의 시사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이 막강하고 견제 받지 않을수록 언제든지 차은택의 전횡 같은 비극은 또 다시 발생할 수 있다. 감시와 시스템에 기반해 권력 집중을 분산시킬수록 타락한 행위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은 우리가 귀 기울일 부분이다.

 

지향하는 비전이나 신념이 아닌 차은택과 같이 이해타산을 위해 사람들이 모일 때 그 끝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지금 우리는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충성을 강조하던 이들이 궁지에 몰리자 ‘그 동안 독대를 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다 시켜서 한 행동이다’라는 식으로 자기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사람과의 관계를 저버리는 배신은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을 늘 강조하며 ‘진실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관해 역설해왔다. 당신이 그토록 강조했던 진실한 사람들이 지금 다 어디 가 있는지 그리고 당신을 향해 그들이 어떤 스탠스를 현재 취하고 있는지 박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진실한 사람으로 인정받을수록 감옥으로 직행하는 이 아이러니에 대해 여전히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대국민 담화를 통해 눈물만을 글썽이고 있다. 차은택의 눈물 섞인 호소를 보며 대국민 담화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붉어진 눈시울이 다시 한 번 오버랩된 건 비단 필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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