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혼란 틈타 한·일 정보협정 얼렁뚱땅 체결하나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6.11.14 09:14
  • 호수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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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국민 반발에 무산…정부 논의 재개 ‘속전속결’

-한국에 일본 거류민이 3만7000명이다. 유사시에 거류민들의 신변에 위험이 된다고 했을 때 일본군이 한반도에 진출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일본이 우리와 협의를 해서 우리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면 입국을 허용할 것입니다.”

 

-필요성이 있다면 허용할 수 있다?

“다른 의도가 보인다 그러면 그것은 또 우리 국익에 맞게 필요한 의견을 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판단해서 필요하다면?

“판단해서 필요한 범위 안에서 부득이한 경우에 그것은 상의해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11월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반대 민족운동본부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2015년 10월14일 국회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강창일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황교안 국무총리 사이에 설전이 오갔다.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동양사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역사학 전문가인 강 의원은 안보법을 통과시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해진 일본이 자위대를 한반도에 진출시킬 가능성에 대해 집요하게 캐물었다.

 

황 총리의 답변이 논란이 됐다. ‘필요성이 인정된다면’이라는 전제를 두기는 했지만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발언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황 총리는 “기본적으로 입국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한 후 “그러나 부득이 필요한 경우에 여러 가지 정황을 참고해서 우리나라가 동의한다면 그런 경우에는 가능하다”고 밝혔다.

 

여당 일각에서는 일본통인 강 의원의 질문 공세에 황 총리가 말려들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강 의원은 2012년부터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을 맡고 있다. 논란이 일자 국무조정실은 “황 총리가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우리 정부의 동의 없이 일본 자위대의 입국이 용인되지 않는다는 정부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고 해명했다.

 

 

절차상 문제에 효용성 논란까지

 

그로부터 1년이 흐른 후 황 총리의 당시 발언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우리 정부가 일본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을 추진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군사정보보호협정(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은 국가 간 군사 기밀을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맺는 협정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과 정보의 보호·이용 방법 등을 규정한다. 한·일 간 정보협정이 체결되면 양국이 일종의 ‘군사정보 직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 현재 한·일 양국은 2014년 12월 체결된 한·미·일 군사정보공유약정에 따라 미국을 통해 군사정보를 주고받는다. 정보 유통 경로 중간에 미국이 버티고 있는 셈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냉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절차상의 문제부터 따져봐야 한다. 한·일 정보협정은 MB(이명박 대통령) 정권 시절인 2012년 6월 체결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바 있다. 우리 정부가 일본과 협상을 비밀리에 진행하다가 뒤늦게 추진 사실이 들통나 국민적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이후 4년 동안 한·일 정보협정 얘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국방부가 한·일 정보협정에 대한 논의를 재개하겠다고 밝힌 것은 10월27일이다. 국방부는 엄중해진 우리의 안보 상황을 거론하며 “일본 측과 협의를 진행하면서 추진 과정을 가능한 한 투명하게 공개할 예정”이라며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했다. 그런데 국민이 미처 이해와 협조를 고민해 볼 틈도 없이 협의는 그야말로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다. 11월1일 도쿄에서 1차, 11월9일 서울에서 2차 실무협의를 개최했다. 국방부는 11월14일 도쿄에서 3차 실무협의를 갖고 가서명을 할 계획이다. 2012년 잠정 합의된 협정 문안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협상이 마무리됐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결국 4년 전 상황과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방부는 한·일 정보협정 논의 재개 배경과 관련해 “올해 들어서만 2차례의 핵실험, 20여 발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날로 증대되고 있다”며 “이렇게 가중되고 있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기존 한·미·일 정보협력에 추가해 한·일 정보협력 체계도 향상시켜야 할 필요성이 크게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야 경계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지만 한·일 정보협정의 효용성 문제는 별개로 따져봐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응하는 데 일본의 군사정보가 어느 정도 효용성을 지니느냐가 중요하다. 정부 측은 신속성을 요하는 정보가 지금은 미국을 거쳐 오면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는데, 일본으로부터 직접 정보를 제공받으면 그만큼 효용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한이 핵·미사일 공격을 해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5분 남짓에 불과해 어떠한 군사정보도 효과를 발휘하기 쉽지 않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특히 일본의 경우 우리보다 북한과의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효용성이 더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 2012년과 올해 초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일본은 이 사실을 제때 탐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우리가 먼저 탐지했다는 것이다.

 

 

자위대 세계 진출 호시탐탐 노리는 아베 정권

 

한·일 정보협정 이면에 깔린 국제정세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보협정이 단순히 한·일 양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일 정보협정을 올해 안에 체결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정보협정을 체결한 상태다. 한·일 정보협정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이어 한·미·일 미사일방어(MD)를 완성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경우 북한뿐 아니라 중국의 반발이 거세질 수 있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한·중 관계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별로 없다. 3월29일 안보법이 시행되면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해진 아베 신조 정권은 후방 지원이라는 명목 아래 자위대의 세계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일본의 존립을 위협하는 경우라는 조건이 충족돼야 하지만 상황 판단에 따라 유사시 한반도 진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일 정보협정이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이은 또 하나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정부가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이 혼란한 틈을 타 얼렁뚱땅 넘기려고 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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