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꽃놀이패, 법 위에 지은 마천루 ‘엘시티’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11.1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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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계 로비 의혹 받는 부산 해운대 엘시티 사건 총정리
ⓒ 엘시티 홍보영상 캡쳐

 

“해운대 백사장 앞에 최상류층이 사는 초고층 ‘꿈의 리조트’를 만들겠다.”

처음엔 무모해보였다. 부산 해운대 백사장 앞에 100층이 넘는 마천루를 짓겠다는 ‘엘시티 사업’ 얘기다. 이 사업은 9년 전 이영복 청안건설 회장이 주도한 ‘엘시티PVF’가 시행사로 선정되며 출발선에 섰다.

 

하지만 사업은 시작부터 ‘장밋빛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당시만 해도 해변가에 60m 이상 높이의 건물을 짓지 못하는 고도제한이 있었다. 사업성도 불투명했다. 엘시티 인근은 아파트를 지을 수 없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는 교통체증․환경오염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추가 비용이 더 들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시행사의 자금조달능력에 의문이 제기됐다. 

 

하지만 ‘우주가 도운’ 것일까. 엘시티 사업은 고비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장애물을 하나 둘 넘었다. 2008년 11월 해운대구의회가 나서서 엘시티 사업의 부지 확장을 도왔다. 구의회 측이 엘시티의 기존 사업 부지가 5만10㎡인데, 이를 늘려주자고 한 것이다. 옛 한국콘도 부지까지 포함해서 확장 개발하기로 도시계획이 바뀌었다. 사업 면적은 6만5934㎡가 됐다. 이 확장된 부지를 엘시티 시행사가 헐값에 샀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엘시티, 인허가․대출․부지 매입에 끊임없는 도움 등장해

 

엘시티 사업의 가장 큰 장애물이던 고도제한도 풀렸다. 2009년 12월 부산시는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해운대 관광특구의 ‘해안 건물 60m 고도제한’을 풀기로 했다. 부산시는 엘시티 시행사가 아파트도 지을 수 있게 해줬다. 당초 계획에 없던 주거사업 승인으로 인해 엘시티 시행사는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엘시티 시행사는 환경오염․교통혼잡 문제도 쉽게 뛰어넘었다. 일단 환경영향평가를 면제받았다. 2008년에는 단번에 교통영향평가를 통과했다. 부산시와 해운대구는 엘시티 근처 도로의 폭을 넓혀주는 공사까지 하며 도왔다. 

 

엘시티 시행사가 사업부지를 매입하고 설계비를 조달하는 과정에서도 ‘도움’이 이어졌다. 엘시티 시행사는 군인공제회에 2008년 5월 3200억원을 빌린다. 당시 엘시티 시행사는 수익을 내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군인공제회는 여기에다 엘시티 시행사에게 이자 없이 대출기한을 연장해주고, 250억원을 더 빌려주기도 했다. 또 군인공제회는 2014년 10월 대출원금에 100억원을 더한 3550억원만 상환 받았다. 이때문에 발생한 군인공제회의 이자손해는 2000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해운대 엘시티 사업 과정에 정관계 로비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은 101층짜리 주거복합단지인 해운대 엘시티 건설현장. ⓒ 연합뉴스

엘시티 시행사는 이 돈을 갚으면서 다시 부산은행에서 자금을 빌렸다. 엘시티 시행사 입장에서는 ‘군인공제회-부산은행’으로 이어지는 ‘돌려막기’를 한 셈이었다. 부산은행 역시 엘시티 시행사에 특별한 담보 없이 3800억여원을 대출해줬고 또 다시 2000억원대의 대출이자를 면제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중앙정부에서도 도움을 줬다. 법무부 차원에서 엘시티 사업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법무부가 2013년 엘시티를 ‘부동산 투자 이민구역’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이 조치에 따라 엘시티에 투자하는 외국인에게는 이민자격, 즉 영주권이 부여된다. 엘시티는 부산시에서 ‘부동산 투자이민’ 구역으로 지정된 첫 사례가 됐다. 당시 법무부 측은 "투자유치 가능성이 높고 이미 개발계획이 확정돼 난개발 우려가 없는 점을 고려해 엘시티 등을 신규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뒤늦은 엘시티 수사 본격화

 

2016년 7월이 되면서 마침내 이 ‘수상한 도움’의 미스터리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검찰이 엘시티 사업과 관련한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면서부터다. 검찰은 엘시티가 받은 ‘수상한 도움’이 정관계 로비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로비의 주체는 시행사의 실질적 주인이자 ‘마당발’로 불리는 이영복 회장이다.

 

우선 로비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부산시 고위 관계자들이다. 부산시 정기룡 경제특보의 엘시티 비리 연루가능성이 제기됐다. 정 특보는 엘시티의 인허가 담당사장을 지낸 바 있다. 검찰은 11월17일 그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아울러 전․현직 부산시장, 당시의 해운대 구청장 등도 수사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당사자들은 모두 이를 부인하고 있다. 

 

이 회장의 로비 대상으로 떠오르는 인물은 이뿐만이 아니다. 검찰이 2011년과 2012년 두 차례 엘시티 로비 의혹 수사를 했지만 이 회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한 것을 두고 ‘검찰 로비의 힘’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이 회장이 국가정보원에 로비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정원 처장을 지낸 인물이 이 회장의 페이퍼 컴퍼니 대표를 맡은 정황이 수사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검찰은 이 회장이 최순실씨 일가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검증하고 있다. 이 의혹은 이 회장이 최순실, 최순득씨와 ‘청담동 계모임’에서 함께 활동했다는 주장에서 출발했다. 검찰은 11월17일 이 계모임의 계주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울러 검찰은 이 회장이 여권 실세에 로비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단서를 포착해 수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본격 수사에 나섰지만 ‘엘시티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서는 이 회장의 진술이 필요하다. 검찰은 이 회장의 신병확보에는 성공했다. 이 회장은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올해 8월 종적을 감췄다가 11월10일 검거됐고 11월12일에는 구속됐다. 500억원대 비자금 조성, 뇌물공여 등 그가 받는 혐의다.

 

ⓒ 시사저널 디지털뉴스팀


하지만 구속된 그가 입을 열지는 미지수다. 이 회장의 별명은 ‘자물통’이다. 과거 정관계 로비사건에 연루되더라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아 얻은 별명이다. 그의 로비 원칙을 보여주는 일이 바로 2001년 다대·만덕 택지전환 특혜 사건이다. 당시 이 회장이 1993년부터 3년 간 헐값에 산 임야가 갑자기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땅으로 용도가 바뀌었고, 이 과정을 정관계 인사들이 도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배임․횡령혐의로 기소된 그는 1심에서 징역 3년, 벌금 20억원을 선고받지만, 로비 대상자를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이 회장은 결국 2002년 10월 항소심에서 상당수 혐의가 무죄판결을 받았고,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고 풀려났다. 

 

“가능한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신속 철저하게 수사하고,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해 연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

엘시티가 중심에 떠오른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다. ‘최순실 게이트’라는 국정농단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되며 검찰의 ‘대면 수사’ 대상에 올랐지만 버티기에 들어간 박 대통령이 엘시티 수사를 지시하자 검찰에서조차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자신’이 아닌 ‘엘시티’를 엄단하라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왜 엘시티를 끌고 나왔을까. 새누리당의 텃밭인 부산에서 벌어진 일인만큼 현재까지 거론되는 엘시티 연루 정치인은 주로 새누리당 소속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엄단 지시가 나왔고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은 ‘물타기’라는 비판을, 반면 국민의당은 “환영한다”는 상반된 반응을 내놨다. 

 

박 대통령이야 ‘최순실 게이트’로 집중된 시선을 분산시킬 카드로 엘시티를 끄집어 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동시에 부산에 거점을 둔 비박과 친노 정치인을 겨냥한 해석도 나온다. 당장 비박의 좌장인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엘시티 비리사건에 본인이 연루됐다는 설이 유포되는 데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일축하며 루머 유포자를 고발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유력한 잠룡인 문재인 더민주당 전 대표도 보도자료를 통해 “엘시티 비리 의혹과 관련해 인터넷상에서 근거 없는 허위 사실로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작성·게시한 관련자들을 서울중앙지검에 형사 고소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엄단 지시가 내린 직후부터 포털 연관 검색어에는 엘시티와 문재인 전 대표의 이름이 묶였고 일부 언론에서 이를 기사화하는 등 정치적 타격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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