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욕망보다 앞서는 상식의 세상으로
  • 남인숙 작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18 10:39
  • 호수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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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9일 오후, 강의를 마치고 택시에 오른 필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미 대선 소식을 듣고, 들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거의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언론에서 클린턴 우세 소식을 워낙 많이 접했던 데다, 설마 미국인들이 ‘그런 사람’을 대통령 자리에 앉힐 정도로 양식 없는 사람들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마가 사람 잡는 일이 정말로 벌어지고 말았다. 곧바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에게서 ‘미국이 제정신이냐’는 성토 글들이 날아왔다.

 

예상외의 이변. 트럼프의 승리에 그의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 EPA 연합

지지 여부를 떠나서 트럼프가 ‘그런 사람’이라고 표현된 데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는 공직에 어울리지 않는 막말을 마구 내뱉었고, 사회적 약자를 대놓고 비하하고 공격했으며, 성추행 혐의마저 짙은 인사였다. 아무리 후대의 평가가 박한 대통령이라도 그처럼 무례하고 품위 없는 사람은 없었다. 남의 나라 대통령선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건, 지금까지 옳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관념의 해체, 상식의 붕괴 때문이었다. 아메리칸 스탠더드가 곧 글로벌 스탠더드로 통하는 세상에서 그들이 대선을 통해 보인 욕망이 보편적인 그것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다.

 

사실 인간의 본성은 그리 아름답지 않아서 이질적인 것을 혐오하고, 약한 자를 더욱 폄하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런 본성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문명인의 품성으로 의식을 전환하는 데에 성공한 곳을 선진사회라고 한다. 흑인 대통령에게 두 번이나 기회를 준 미국은 그동안 선진국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름 답답한 삶을 사는 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트럼프의 행보도 일종의 ‘쇼’로서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처럼 선거 예측이 빗나간 주 이유로 ‘shy Trump’라는 지지층을 드는 분석들이 있다. 트럼프를 지지하면서도 그 사실이 부끄러워 몰래 표를 던진 이들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번 표심은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욕망에 부응하는 이의 편에 섰다는 의미가 된다. 유색인종이 싫고, 새로운 이민자가 싫고, 여자들이 남자와 맞먹는 게 싫고, 동성애자들이 당당한 게 싫은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게 트럼프였기에 은밀한 지지를 보낸 것이다.

 

이미 당선된 사람이기에 언론은 여느 때처럼 밀월 기간을 두어 새 대통령에게 관대하게 힘을 실어줄 것이다. 그가 의외로 국정운영을 잘할 수도 있다. 더구나 외부인의 입장에서 더 이상 왈가왈부할 일은 없다. 다만, 내년 대선을 앞둔 우리에게 오랜 롤모델인 미국의 선례가 나쁜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원초적인 욕망을 최소한의 포장조차 하지 않은 채 드러내는 저열함, 한 수 앞의 정의마저 발밑의 욕망으로 묻어버리는 것을 전략 삼는 이들이 득세하는 선거판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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