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들은 피해자? 공소장에 빠진 대통령의 뇌물죄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11.2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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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 중간 발표에 빠진 것

검찰의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중간 수사결과를 본 재벌들은 어떤 분위기였을까. 기업들을 사실상 미르․K스프츠재단 강제모금에 의한 ‘피해자’로 규정한 공소장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진 않았을까.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지검장)가 11월 20일 ‘비선실세’ 최순실씨·​안종범 전 청와대정책조정수석·​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각각 구속기소했다. 하지만 공소내용엔 재벌과 박근혜 대통령의 뒷거래 의혹, 이에 대한 뇌물죄 성립 여부가 빠져 있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이 직권남용․강요죄의 공범 또는 주범 피의자라는 사실을 공소장에 적었다. 검찰에 따르면 안 전 수석과 최씨는 미르․K스프츠재단 강제모금을 종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53개 대기업이 도합 774억원을 냈으며, 검찰은 이 작업을 박 대통령이 최씨 등과 공모하거나 사실상 주도한 것으로 봤다. 

 

이외에도 검찰은 박 대통령이 최씨와 함께 여러 강요·직권남용행위에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포스코에 펜싱팀 창단 종용 ▲KT에 임원 채용ㆍ68억원 광고일감 제공 강요▲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 스포츠단 창단 강요 ▲현대차그룹에 11억원 납품계약 및 70억원 광고일감 제공 강요한 점 등이다. 정 전 비서관이 2013년1월~2016년4월 총180건의 청와대 문건을 최씨에게 유출한 것도 ‘박 대통령의 지시’로 조사됐다.

 

© 시사저널 이종현·청와대제공

뇌물죄 적용 여부에 따라 처벌의 무게 달라진다

 

이 같은 중간 수사 발표를 두고 ‘핵심이 빠졌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비판이 이는 대목은 ‘재벌=피해자’ 구도다. 검찰은 대기업을 박 대통령과 안 전 수석, 최씨에게 피해를 본 대상으로 인식했다. 기업이 출연금을 낸 것이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 납부했다’라고 판단한 셈이다. 이런 점을 들어 검찰은 박 대통령과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는 최씨와 안 전 수석에게도 직권남용죄를 적용했다. 

 

‘재벌=피해자’ 구도로 수사가 진행될 경우 박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성립이 배제된다. 다만 직권남용․강요죄만 적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뇌물죄는 직무관련성․대가성이 있는 ‘검은 거래’가 있을 때 주로 적용된다. 하지만 재벌을 단순 피해자로 분류하면 뇌물죄 성립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재벌을 뇌물공여자로 처벌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줄어든다.

 

뇌물죄가 적용되지 않으면 뭐가 달라질까? 크게 달라지는 것이 처벌의 무게다. 직권남용죄는 5년 이하 징역형으로 처벌된다. 법관의 재량에 따라 집행유예도 가능한 죄목이다. 반면 뇌물죄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뇌물로 받은 금액이 1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될 수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박근혜 정권 퇴진 특위’는 “본 사건은 정경유착 사안이므로 뇌물죄를 적용하여야 하나, 검찰은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고 직권남용죄와 강요죄만을 적용했다”면서 “직권남용만 적용되면 돈을 낸 재벌들은 일방적으로 출연을 강요를 당한 피해자가 되어 뇌물죄를 적용하기 어렵게 된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의견은 어떨까. 법조계에선 중간 수사 결과와 달리 검찰이 수집한 증거만으로도 박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해야 마땅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뇌물죄 성립요건인 ‘직무관련성․대가성’이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안 전 수석의 메모를 보면 대통령이 삼성, SK, 한화 등 대기업의 민원을 보고받아 해결해준 정황이 있다”면서 “출연금의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있다고 봐야할 증거다. 이런 자료들을 볼 때 재단이 법적으로 대통령과 구별되는 제3자라고 해도 제3자뇌물제공죄에 해당하는 등 전반적으로 뇌물죄 적용에는 무리가 없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안 전 수석의 메모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나온 증거를 말한다.

 

검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출연금을 갹출하기 전인 2015년 7월24일 삼성, SK, CJ, 현대자동차 등 재벌 그룹 회장과 독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은 각 그룹에 민원을 보고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 해결’을, CJ와 SK는 ‘총수 부재’, 현대자동차는 ‘노사문제’를 적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사례 비춰봐도 朴뇌물죄 인정돼야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사례를 비춰볼 때에도 박 대통령에게 뇌물죄가 인정돼야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두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에 대해 당시 대법원은 “뇌물은 대통령의 직무에 관하여 공여되거나 수수된 것으로 족하고 개개의 직무행위와 대가적 관계에 있을 필요가 없으며, 그 직무행위가 특정된 것일 필요도 없다”라는 포괄적 법리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민변은 박근혜 정권 퇴진 특위는 박 대통령에게도 마찬가지로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검찰의 중간수사 단계에서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본 뒤 "직권남용 강요죄 등을 적용한 것은 당연하나, 제3자 뇌물 수수를 적용하지 못한 것은 공모한 대통령이 수사에 응하지 않고 방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검찰도 발표 당시 “99% 입증가능한 내용만 공소장에 적시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에서 뇌물죄가 추가될지 주목된다. 검찰은 우선 “증거가 부족했기에 박 대통령에게 제3자 뇌물혐의를 적용하지 못했다”면서 “수사를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삼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법정치팀장은 “검찰 측에서는 대통령을 조사하지 못해서 한계도 있었다”면서 “검찰의 적극적 의지가 있다면 뇌물죄 등을 입증해 공소장 변경할 여지도 있다”고 분석했다.   

 

검찰이 중간 수사 발표에 빠진 박 대통령의 강요․직권남용 혐의도 추가로 밝힐지도 관심거리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2013년 말 손경식 CJ그룹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미경 CJ 부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조 전 수석의 강요가 박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또 김종 전 문화체육부 차관이 문화․체육 전반에 있어 부당한 외압을 행사하고 이권을 챙긴 의혹과 관련해 박 대통령과 연결고리가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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