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수업 아닌 한국학 수업이 필요해요”
  • 베트남 하노이=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11.23 09:23
  • 호수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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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한국학 현장을 가다-⑩] ‘한국어 수업’으로 쏠리는 베트남의 한국학은 지금 질적 향상을 고민 중

“≪부산행≫ 보셨어요? 정말 재미있어요.”

외상대에서 국제경제학을 전공하는 웬티용(21)은 기자를 보자마자 ≪부산행≫ 칭찬을 시작했다. “한국은 영화를 진짜 잘 만드는 것 같아요. 미국보다 더 잘 만드는 것 같아요.” 능숙하진 않지만 또박또박 뱉어내는 한국어. 알아듣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한국말 따로 공부하셨어요?”

“아니요. 그냥 드라마 보고 배웠어요.”

웬티용은 ‘코리아 디스커버리 클럽’의 회장이다. 말 그대로 한국을 들여다보고 발견하는, 한국을 좋아하는 학생들의 모임이다. 10월17일에 들른 하노이 외상대에서는 코리아 디스커버리 클럽이 리허설을 하는 날이었다. 1층의 조그만 강당. 대략 100명이 들어올 수 있는 이곳은 이미 대학생들로 꽉 차 있었다.

 

10월22일 하노이 한글날 축제 행사의 모습. 이날 공연을 위해 베트남 대학생들은 오랫동안 준비하고 리허설을 했다. © 시사저널 김회권

베트남 학생들이 준비하는 ‘한글날’ 

 

무엇을 위한 리허설인지 물어봤다. “이번 주 토요일(10월22일)에 하노이 한글날 행사가 있어요. 그날 공연을 하는데 그걸 위해서 미리 리허설을 하는 거예요.” 한글날 행사를 위해 한국 아이돌의 커버댄스 공연 리허설이 벌어진다는 얘기다. 푸른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은 클럽의 회원들이다. 그런데 이날은 입지 않은 학생들이 더 많았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 회원이라고 했다. 웬티용 회장은 뿌듯해하며 말했다. “지금 회원은 대략 100명 가까이 돼요. 30명을 올해 뽑았는데 300명 정도가 지원했어요.” 자리를 함께한 신입 회원들은 3차까지 가입 전형을 치르고 클럽에 들어오게 된, 이른바 정예멤버다. 서류전형과 면접, 그리고 실기까지 치렀다. 실기는 조를 짜 ‘런닝맨’ 게임을 했단다. 자세한 설명을 듣진 못했지만 아마 SBS 예능 프로그램인 ‘런닝맨’처럼 미션을 주고 해결했을 것 같은 그림이 그려졌다.

 

이곳에서 기자는 인기인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국적이 ‘한국’이라서다. 게다가 취재를 하러 왔다고 했는데 거꾸로 기자가 학생들에게 관찰당해야 했다. 학생들의 시선은 이쪽으로 쏠렸다. “한국인이라서 그래요.” 직전까지 클럽 회장이었던 응우엔 후안 늉(22)은 이런 시선에 익숙해지라고 했다. 늉은 서울시립대에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1년간 다녔다. 클럽의 적지 않은 학생들이 교환학생 자격으로 한국 생활을 경험했다. 바로 뒷좌석에 앉은 부 응옥 짬(22)은 이화여대를 다녔다고 했다. 외상대를 다니는 그는 “전 졸업하고 신한은행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한류’라는 걸 실감하기 어렵다.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어렵지 않다. 국적이 한국이라는 이유로 적지 않은 환대를 받을 수 있는 나라가 베트남이다. 그 친밀함 때문일까. 베트남에 들어온 한국학은 빠른 성장을 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은 외교적으로 단절과 회복의 과정을 반복했다. 1956년 5월 구(舊)월남 정부와 외교관계를 맺었다가 1975년 베트남이 사회주의로 통일되면서 양국 관계는 단절됐다. 다시 수교가 이뤄진 때는 1992년 12월. 동유럽이 몰락하고 소련이 무너진 뒤, 베트남은 개방을 위해 문을 열었다.

 

1993년 9월 하노이 인문사회과학대학교(인사대) 베트남어문과에서 처음으로 한국어 강좌가 시작됐다. 베트남 사회과학원 동북아연구소에서 한국을 연구하고 있는 응우엔 티 탐 박사가 바로 이 시기에 하노이 인사대를 다녔다. “1992년 입학해 1994년부터 한국어를 배웠다. 2년 정도 다양한 과목들을 배우고 3학년부터 자기 전공과목을 선택한다. 나는 원래 베트남어문과를 다니며 글을 쓰고 싶었는데 친한 친구가 성적이 모자라 한국어를 선택해야 한다고 해 따라갔다. 그때는 한국어가 인기가 없었다.”

 

 

‘한국 배우기’ 열풍의 뿌리는 문화 아닌 ‘경제’

 

인기는 없었지만 한국을 공부하려는 수요는 점점 증가했다. 한국말로 시작한 한국에 대한 강의는 이내 한국학으로 발전했다. 학문으로서의 한국학은 1994년 국립 호찌민대학교 인사대 동방학부에 처음 개설됐다. 1995년에는 호찌민 외국어정보대학교 한국어과와 하노이 인문사회과학대학교 한국학과가 만들어졌고 1997년 하노이 국립외국어대학교 한국어과가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정식 학과로 설치됐다. 베트남에서 한국학 전파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박경철 하노이 사무소장은 “현재 4년제 대학 기준으로 한국학과를 설치하고 있는 곳이 18군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쉽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류라는 문화적 열풍이 한국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을 수도 있겠다고. 마치 코리아 디스커버리 클럽처럼 말이다. 한류가 거센 건 맞다. 베트남 정부는 최근 ‘문화산업 국가전략’을 세웠다. 전략이 만들어진 단초는 한류였다. 베트남 정부 관계자의 얘기다. “베트남 정부는 한국이 도대체 뭘 어떻게 하고 있기에 이렇게 됐냐고 궁금해했다.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줄 모르다가 깜짝 놀랐다. 그러다가 정책 연구를 하게 됐고 연구 결과물을 내고 얼마 전에 국가전략을 세워서 통과시켰다. 문화콘텐츠 개발 부분에서 한국에 배울 건 배우자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인과관계가 성립하면 베트남의 한국학은 문화의 유행 세기가 좌우하게 된다. 학문의 연속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 쩐티흐엉 하노이국립외국어대학 한국어문화학부장은 “문화가 인기 있는 건 맞다. 하지만 한국을 공부하려는 수요가 증가한 건 본질적으로 경제 때문이다”고 말했다.

 

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5500개를 넘어섰다. 1992년 수교한 지 24년 만의 일이다. 삼성, 롯데, 포스코 등 우리가 아는 대기업은 대부분 베트남에 진출해 있다. 한국 기업의 대(對)베트남 누적 투자금액도 500억 달러(약 58조3500억원)를 넘어섰다. 호찌민 한인회 관계자는 “한국 기업이 베트남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인 현지 고용도 급증해 70여 만 명이 한국 기업에서 일한다.

 

경제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고용도 활발해진다. 시사저널 취재진이 만난 서구권의 한국학 전공자들은 “졸업 이후에 전공을 살려서 무엇인가를 하기가 어렵다”고 고백했다. 반면 베트남은 그에 비하면 천국이다. 인력 수요가 많다 보니 취업도 잘된다. 일부러 프리랜서로 뛰는 젊은이도 많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비즈니스 통역이 가능한 베트남인의 경우 1일 8시간 100~150달러 정도의 통역료를 받는다. 이 정도 통역료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베트남인 한국학 연구자들은 하나같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한 번 통역을 나가면 우리 월급보다 더 받으니까…하하.”

 

하노이 국립외대 한국어문과 4학년의 노트. 4학년 정도면 의사소통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의 한국어를 구사한다. © 시사저널 김회권

“통역을 하루 나가면 제 월급을 받아요”

 

기업의 수요가 많다 보니 지금 베트남의 한국학은 학문보다는 어학 수업, ‘한국어’ 수업으로 쏠리는 중이다. 마이 응옥 쯔(32)는 하노이 국립인사대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학부에서는 한국학을 배웠지만 석사는 인류학을 전공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연구 주제는 ‘하노이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생활공간 고찰’이다. 그는 이렇게 정의했다. “인류학의 접근 방식을 빌리는 것일 뿐, 한국학을 하고 있다”고.

 

그런 그도 자신의 연구를 하기가 쉽지 않다. 심층 면접이나 필드 조사를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 학교에서는 한국어 수업을 많이 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이 한국어가 가능한 학생들을 많이 뽑고,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한국어 수업을 원한다.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강사진은 여전히 부족한 게 현실이다.

 

경제 인력은 호황이지만, 학문 인력은 불황인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은 많지만 한국을 배우려는 사람은 적어지는 아이러니가 지금 베트남의 고민이다. 응우엔 티 탐 동북아연구소 박사는 “우리 쪽도 연구자가 없다. 학교의 강사가 되면 전공을 놔두고 한국어를 가르쳐야 된다. 한국에서 박사를 받은 한국학 전문가라도 베트남에 돌아와서 자신 있는 논문이나 보고서를 쓰지 못한다”고 말했다.

 

제대로 연구해 주는 인력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 경제 교류 속도와 문화적 친밀도만큼 한국학의 깊이가 따라주지 못하는 게 지금 베트남 한국학이 풀어야 할 난제다. 박경철 소장은 “단순 재미가 아닌 시간의 검증을 받은, 가치 체계로서의 한국학이 돼야 한다. 중국학이나 일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한국학으로 포섭하는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응우엔 티 탐 박사는 “한국어를 몰라도 다른 언어를 통해서 한국에 관한 연구가 가능하다. 한국어를 아는 사람, 한국어를 모르더라도 다른 언어를 사용해 한국의 다양한 부분을 연구하는 다른 전공자 등 한국학 연구자들의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제언이 베트남 한국학의 고민을 해결해 줄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오늘도 베트남의 한국 공부는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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