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검역증 없이 수입된 호주産 소고기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11.29 11:15
  • 호수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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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격 판정받은 10건 중 1건…정부, 호주에 아무런 대응 못해

국내 검역 과정에서 불합격 판정(수입 불가)을 받은 호주산 소고기 10건 가운데 1건은 검역증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호주 정부의 검역에 구멍이 뚫린 셈인데, 우리 정부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외국에서 수출한 식재료가 항공기나 배를 이용해 한국에 도착하면 검역을 거쳐야 정식 수입이 허가된다. 검역 과정에서 위생 문제나 제품의 하자가 발견되면 불합격 판정을 내린다. 불합격 처분을 받은 식재료는 소각하거나 수출국으로 반송된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국내 검역 당국으로부터 불합격 판정을 받은 호주산 소고기 사례는 모두 986건으로 집계됐다.

 

시사저널이 단독으로 입수한 ‘호주산 소고기 및 부산물 불합격 내역’ 문건을 보면, 표시 기준 위반, 포장 상태 불량, 변질, 유통기한 경과 등 다양한 불합격 사유가 있는데 호주산 소고기에서 유독 ‘검역증 미첨부’ 사유가 많다. 약 8년 동안 986건의 검역 불합격 판정을 받은 호주산 소고기 가운데 검역증이 없는 것은 112건으로 전체의 11.3%를 차지했다. 불합격 판정을 받은 호주산 소고기 10건 중 1건 이상은 검역증 없이 한국 땅에 도착한 셈이다.

 

11월1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정육코너에서 직원이 호주산 소고기를 진열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정부, 검역증 없는 이유 파악 못해

 

검역증이란 식재료를 수출하는 국가의 검역 당국이 수출 전에 제품의 위생 상태 점검 등을 마쳤다는 일종의 증명서다. 이 검역증을 토대로 수입국의 검역 당국은 식재료의 검역을 시행한다. 특히 소고기는 사람이 섭취하는 식품이므로 수출국과 수입국 모두 검역을 통해 위생 상태를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따라서 검역증 없는 소고기는 현지에서 수출되지 않아야 정상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국제통상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기호 변호사는 “검역증이 없는 소고기는 호주에서 검역을 받지 않았다는 것인데 어떻게 이런 식품이 국내로 수입됐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검역증이 첨부되지 않은 이유는 다양하다. 무엇보다 수출국인 호주의 검역 체계에 허점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현지의 소고기 수출업체가 검역 과정을 생략한 채 한국으로 제품을 보냈을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통상적으로 수출업체가 제품을 수출하려면 검역 당국으로부터 검역을 받은 후 검역증을 운송업체에 제출해야 한다. 그래야 제품을 비행기나 배에 실을 수 있다. 현지에서 검역증 없이 소고기를 비행기나 배에 실을 수 있었다면 수출업체가 검역을 받지 않은 채 운송업체와 짜고 제품을 실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 검역 당국은 검역증이 첨부되지 않은 소고기가 호주를 떠나 한국으로 오게 된 경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질병관리부 동물검역과 관계자는 “일부 호주산 소고기에 검역증이 없는 이유는 잘 모르지만, (수출업체가) 호주 현지에서 소고기에 대한 검역을 받지 않았거나, 검역은 마쳤지만 중간에 검역증을 분실했거나, 초과 물량에 대한 추가 검역을 받지 않은 경우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초과 물량이란 본래 검역을 받은 물량 외에 추가된 물량을 말하는데, 이 역시 검역을 따로 받은 검역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추가 물량에 대한 검역을 받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다”며 “검역증이 없는 소고기는 불합격 판정을 내리고 반송 또는 폐기 처분하므로 국내에 유통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 시사저널

‘검역증 미첨부’ 호주산 소고기 건수(112건)는 미국산 소고기의 사례와 비교된다. 2009년부터 2016년 6월까지 국내로 수입된 미국산 소고기 중에 국내 검역 불합격 판정을 받은 사례는 430건이고 이 가운데 검역증 미첨부 건수는 11건에 불과했다.

 

유독 호주산 소고기에서 검역증 미첨부 사례가 많은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호주 정부에 알리고 재발 방지를 요청했을까. 검역 당국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시사저널의 취재가 시작되자 정부는 호주 검역 당국에 검역증 미첨부 건을 통보하는 등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호주산 소고기의 검역 불합격 내역을 매달 주한 호주대사관에 전달하지만 검역증 미첨부 사유와 재발 방지를 위해 따로 조처를 하지는 않았다”면서 “검역증 미첨부가 불합격 사유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이를 호주 정부 측에 알리고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를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수입금지 지역’ 경유한 사례도 확인

 

검역 불합격 판정을 받은 호주산 소고기에서 발견된 또 다른 특이점이 있다. 호주에서 출발한 소고기가 ‘수입금지 지역’을 경유한 사례가 발견된 것이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과정에서는 없던 일이다. 수입금지 지역이란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와 같은 가축전염병이 발생했거나 우리나라와 무역을 위해 위생조건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를 말한다. 미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상당수 국가가 수입금지 지역에 해당한다. 특히 호주산 소고기가 한국까지 운송되는 부근에 있는 홍콩·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일본이 수입금지 지역이다. 한동안 가금류(家禽類)를 거래해 온 헝가리도 최근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해 수입금지 지역으로 묶였다. 이런 국가들은 농림축산부가 수입금지 지역으로 고시한다.

 

이와 같은 수입금지 지역을 경유한 호주산 소고기가 국내에서 불합격되는 이유는 오염 때문이다. 비행기나 배에 실었던 제품에는 봉인이 돼 있는데 수입금지 지역에서 하역했다가 다시 싣는 과정에서 봉인이 해제되면 오염된 것으로 간주한다. 봉인이 해제된 경우는 수입국 검역 과정에서 불합격 판정을 내린다. 다만 항공기나 배가 비상 급유만을 위해 수입금지 지역을 잠시 들른 경우는 제외된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검역 불합격 판정을 받은 호주산 소고기에서 4건의 ‘수입금지 지역 경유’ 사례가 발생했다. 호주에서 출발한 비행기나 배에 한국을 목적지로 한 품목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제품이 같이 실린 경우 특정 국가를 경유하기도 한다”면서 “원론적으로 항공기나 배의 비상 급유가 아닌 이상 수입금지 지역을 거친 소고기는 국내 반입이 금지된다”고 설명했다.

 

2008~15년 호주산 소고기 검역 불합격 내역 문건 © 시사저널 고성준

호주산 소고기 불합격 건수 미국산의 2배

 

호주산 소고기가 검역 불합격 판정을 받은 이유 중에는 ‘유통기한 경과’ 사례도 27건이나 됐다. 제품의 ‘변질’로 불합격 판정을 받은 사례 30건까지 합하면 모두 57건은 소고기가 식품으로서 가치를 잃은 셈이다. 검역 불합격 판정을 받은 미국산 소고기 가운데 유통기한이 경과한 사례는 7건이었다.

 

검역 불합격 사유만큼이나 호주산 소고기의 검역 불합격 건수는 최근 미국산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호주산 소고기의 국내 검역 불합격 건수는 미국산보다 적었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의 검역 불합격 건수는 호주산보다 6배 이상 많았다. 당시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의원이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그해 1년 동안 국내 검역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수입산 소고기 사례 79건 중 60건(75.9%)은 미국산이었고 호주산은 11건에 불과했다. 미국산 소고기의 검역 불합격 건수는 계속 증가해 2010년 호주산보다 약 7.5배 많았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호주산 소고기의 검역 불합격 사례가 매년 증가하면서 미국산을 앞질렀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호주산 소고기의 검역 불합격 판정 건수(986건)는 비슷한 시기에 미국산 소고기가 검역 불합격 판정을 받은 건수(430건)의 2배가 넘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소고기 수입량은 29만7266톤이다. 이 가운데 호주산 소고기는 약 55%를 점유했고 미국산 소고기는 약 38%를 차지했다. 올해 호주산 소고기가 수입산 소고기 물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50%로 줄었고 미국산 소고기가 약 40%로 증가했지만 여전히 호주산 소고기 수입량이 시장에서 1위다. 

 

 

미국산 소고기는?

 

2009~16년 6월까지 국내 검역 당국으로부터 불합격 판정을 받은 미국산 소고기 사례는 430건이다. 미국산 소고기에서는 접착제, 작업용 청색 장갑, 금속 재질의 못 등이 발견돼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시사저널 10월18일자(1408호) 보도 참고) 이외에도 검역증 미첨부, 위생조건 위반, 현물과 검역증의 내용상이, 변질 등이 적발돼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미국산 쇠고기의 검역 불합격 사례에서 가장 많은 것은 ‘검역증에 기재되지 않은 부위 발견’이다. 미국 농무부가 작성한 검역증에 기재된 쇠고기 부위와 실제 수출한 부위가 다른 것이 적발된 경우로 모두 179건에 이른다. ‘현물과 검역증 상이’ 36건과 합하면 전체의 43.4%에 달한다.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개선 요청’과 ‘수출 작업 중단’과 같은 강도 높은 조치를 한 것은 8건에 불과하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소각’ 또는 ‘반송’ 후 검역 불합격 판정 결과를 미국에 통보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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